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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살이] 코로나 시대, 뜻밖의 좋은 일: 품질좋은 고기를 저렴하게 집앞까지!

옥포동 몽실언니 2020. 10. 8. 08:05
바야흐로 코로나 시대.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위기가 기회라 하였던가.  이 어려운 시기에도 다들 나름의 방법으로 생존하기 위해 애를 쓰노라니.  그런 노력 덕분에 우리 같은 평범한 이들이 혜택을 보는 일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근 지역 정육점의 무료 배달 서비스이다. 
우리가 사는 작은 타운 아빙던은 인구가 3만이 조금 더 되는 정말 작은 도시이다.  그러다 보니 큰 마트는 시내에 하나 있는 것이 전부이고, 시내에서 벗어난 외곽에 대형 마트가 하나 더 있다.  시내에 옷 가게도 서너곳이 전부이니, 한국의 왠만한 대학가 앞보다 더 단촐한 시내이다.  그나마 이 작은 타운에도 시내에 작지만 멋진 서점이 하나 있는데, 그 서점은 우리 동네의 보물같은 곳이다.  시내에 수 없이 많은 것이라고는 흥미롭게도 미용실과 이발소 뿐.  이 작은 동네에 미용실과 이발소는 왜 그리 많은지. 
동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장 보러 가기가 참 마땅치가 않다. 시내에 있는 마트는 영국에서 제일 비싼 브랜드, 웨이트로즈이고, 외곽쪽에 있는 테스코를 가려면 차로 10분 이상이 걸린다.  한국 기준에서, 특히 서울이나 기타 대도시에 살다 보면 마트 가기 위해 10분이면 가깝다고 하겠지만, 영국의 일반적 주택가에는 "집 앞 슈퍼" 혹은 "동네 편의점" 같은 것이 아예 없기 때문에 급하게 우유 한 팩을 사려 해도 차로 10분 이상 가야 하는 것이다.  동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빙던으로 이사오고 나서는 모든 것들이 옥스퍼드에 살 때 보다 제한적이다.  뭘 하든 선택의 여지가 매우 적다.  
그러던 중 올해 코로나가 터졌고, 모든 온라인 식료품 배달 서비스가 마비되다시피 하면서 지역내 오프라인으로만 판매하던 여러 가게들이 온라인 배송을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옥스퍼드에 소재한 크고 유명한 정육점, MeatMaster 이다.  고기마스터.  이름에서도 포스가 뿜어져 나온다.  이 정육점은 옥스퍼드 내 여러 레스토랑과 칼리지 식당에도 고기를 납품할 뿐만 아니라, 시내의 커버드 마켓 (Covered Market)에도 작은 분점을 내어 운영하는 규모있는 정육점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정육점은 고기만 파는 게 아니라 다소 제한적이지만 생선도 판다는 것.  좀 이상하게 들리지만 그렇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판매를 시작하면서는 고기와 생선 뿐만 아니라 이 곳에서 모든 기본 식재료 구입이 가능하도록 야채꾸러미와 과일꾸러미도 함께 팔기 시작하면서 포장된 완제품을 제외하고는 왠만한 신선재료는 모두 이 곳을 통해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 이후 이 정육점의 서비스 확장 덕에 우리는 옥스퍼드까지 가지 않고도 옥스퍼드에 가야만 살 수 있었던 고기와 생선을 온라인으로 주문해서 받아 먹을 수 있는 호재를 누리게 된 것.  냉장고와 냉동실의 공간이 제한적이다 보니 한번 고기장을 봤다 하면 어쩔 수 없이 연일 고기파티가 이어진다.  과일과 야채도 어찌나 실한지, 역시 시장의 먹거리들은 달라도 뭐가 다르다.  영국 사람들이 한창 사재기를 하던 4월과 5월, 우리 가족은 이 정육점의 배달 서비스 덕에 마트를 가지 않고 보름 가까이를 버티기도 했다.  코로나로 인해 어렵고 힘든 점 투성이인 가운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런 소소한 변화는 더 이상 소소하지 않고 아주 크고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9월이 되어 초중등학교가 개학하기 시작하면서 영국은 2차 웨이브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지금은 하루 1만명 이상의 신규 확진자가 나오는 상황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다시금 사재기 열풍이 올라오는 듯하여 우리는 다른 것은 몰라도 아이 분유 여분을 확실히 챙기고 (첫 락다운때에는 신생아 분유를 구할 수가 없었다.  당시 우리는 모유수유 중이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냉동실에 신선한 고기라도 좀 얼려두기로 했다.  냉동실에 고기라도 충분히 쟁여둬야 마음이 든든할 것 같았다.  그리하여 오랫만에 다시 정육점에 주문을 넣었고, 그 고기들로 현재까지 고기와 생선 파티 중이다. 
고기를 배달받고 놀란 것은 영국이 고기값이 정말 싸긴 싸다는 것이다.  육식의 나라답다.  아래 사진과 같이 이렇게 많은 고기와 생선을 샀는데, 가격이 100파운드가 조금 안 나왔다.  한국돈으로 하면 15만원 상당.  한국에서 장을 본 지 아주 오래되기도 했고 한국에 살던 당시에는 내가 직접 마트를 가서 고기를 사는 등 장을 볼 일은 없었기 때문에 내가 한국의 고기 값을 잘 모르긴 해도, 이 정도 가격이면 영국이 한국에 비해 고기값이 훨씬 싼 것 같은 느낌이다.  

총 95.56파운드 (약 15만원) 에 우리가 구입한 고기는 소고기 우둔살 (Rump Steak) 1.2kg, Bavette Steak 1.2kg, Rib eye steak 1.3kg (226g짜리 6개), Pork loin steak (돼지 등심) 2kg로 구성된 스테이크 애호가 꾸러미 (Steak Lover Box), 아구 약 1kg, 냉동 오징어 한 봉지, 간 소고기 총 1kg, 간 돼지고기 800g, 소꼬리 1.5kg 이다.   

우리는 고기를 받자마자 꼬리곰탕을 끓여먹었다 (소야, 미안해 ㅠㅠ).

립아이 스테이크와 바벳 스테이크를 썰어 불고기를 해 먹고, 아구를 열심히 구워먹었다.  아구는 너무 맛있어서 이후 삼겹살과 아구, 명태 등을 한번 더 주문해서 이번엔 수육과 생선파티를 벌였다.  지난 두어달간 고기를 거의 먹지 않고 지냈는데, 지난주부터 갑작스레 단백질 풍만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오늘은 아래의 냉동 오징어를 해동하여 뚱이 이유식으로 오징어버섯밥을 해 줬다.  오징어의 짭쪼름한 맛 때문인지, 오징어의 식감 때문인지 오물오물 잘 받아 먹어서 기분이 좋았다.  한국에서 엄마가 신선한 오징어를 갓 데쳐내어 초장과 함께 내어주시면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데.. 언니들과 오징어 몸통 전쟁을 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이번에는 간 고기도 구입해봤는데, 마트에서 파는 간고기보다 훨씬 나았다.  식감도, 고기 질도.  앞으로도 고기와 생선은 죽 이 집에서 배달로 받아먹으면 좋을 듯하다.  

간 고기를 한번 먹을 만큼씩 소분하여 담았는데, 재빠른 잭이 부엌에서 작은 볼을 갖고 와서 그 안에 또 그 고기를 담았다.  귀여운 녀석.

난 사실 고기를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대학 시절 1년 간 프랑스와 영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면서 그 1년 간 나는 단 한번도 내 손으로 고기를 사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당시만 해도 제법 건강했던 것 같다.  일년 내내 거의 고기를 먹지 않고도 빈혈이 심하지 않았으니.  그러나, 영국으로 유학 온 첫 해.  난 그 해에도 고기를 사서 요리하지도 않았고, 사 먹지도 않았더니 1년이 지나 내 헤모글로빈 수치가 9까지 떨어졌다.  보통 12-15라고 하는데, 멀쩡한 20대 중후반의 여성이 10미만으로 떨어진 건 그다지 평범하지 않은 일이었다.  당시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빈혈이 너무 심해서 병원에서는 내 몸 속 장기 어딘가에서 내부 출혈이 있을 거라고 의심하여 복부 CT 촬영까지 했었다.  결과는 단순 영양 결핍성 빈혈이었다.  그 뒤로부터 나는 고기가 빈혈에는 가장 쉽고, 좋다고 하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의식적으로 고기를 내 입맛보다 더 많이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나와 달리, 틴틴은 빈혈은 없다.  그런 것 같다.  그러나 틴틴은 먹는 게 조금 부실해지거나 수면의 질이 좀 떨어지면 이내 컨디션이 저조해지는 편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결혼하기 전 우리 식구 중에서 제일 약하고 여리여리한 사람이었는데, 그런 나보다 몸이 더 약한 사람과 평생 살게 되다니.  

틴틴을 걱정해서 틴틴 먹을 것, 틴틴 건강을 이래 저래 챙기다 보면 늘 내 건강, 내 먹을 것을 챙겨주시던 엄마 아버지 생각이 난다.  항상 돈 없다, 돈 없다는 말을 달고 사시면서도 "다른 건 몰라도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돈 아끼지 말고 팍팍 사먹어라”하시던 우리 아버지와, 나에게 늘 “뭘 좀 먹을 걸 갖다줄까?  이것 좀 더 먹어라”는 말을 달고 사셨던 우리 어머니.  우리 부모님은 내 곁의 틴틴이 약골인 것에 웃음을 터뜨리신다.  우리 딸이 제일 약한 줄 알았는데, 더한 약골이 그 딸 옆에 붙어 딸을 챙겨주고 있으니 말이다.

* * *

영국이 고기값은 싸지만, 야채 값이 그렇게 싼 것 같지는 않다.  싼 것은 싸지만 비싼 것은 너무 비싸다.  특히, 요즘 우리가 오카도를 통해 배달받고 있는 무는 오이만한 크기인데 가격은 1500원.  도대체 오이 값의 몇 배인지.  다른 마트보다 무를 아주 비싸게 팔고 있는데, 우리는 이 곳 말고는 무를 살 수 있는 곳이 없다 보니 울며 겨자먹기로 이 비싼 무를 사다가 매 주 무나물 반찬을 해 먹고 있다. 

오늘도 몽실언니 블로그를 찾아주시고 제 이야기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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