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생활/생활정보

코로나가 바꾼 일상: 집에서 남편 머리 자르기

옥포동 몽실언니 2020. 8. 17. 07:38

오늘 남편 틴틴의 머리를 잘라주었습니다.

코로나 전에 두 번 정도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아주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으나 회사에서 사람들이 틴틴의 헤어스타일을 유심히 보더래요.  그 때마다 이건 내 와이프가 자른 것이다, 요즘 연습 중이다.. 라는 변명을 해야 해서 힘들었다며, 틴틴은 저에게 그렇게 단 두번의 기회만 준 후 다시 이발소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이발소, 한두달에 한번 가는 건데, 자기도 그 정도는 누리고 살자면서 말이죠.

그러다 올해 코로나가 터졌고, 틴틴은 결국 제게 머리를 다시 맡겼습니다.

어차피 회사를 나가는 것도 아니니 제가 아무렇게나 잘라도 덥수룩한 머리를 계속 하고 있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고 말이지요.  코로나로 영국은 락다운 (도시봉쇄)이 되었고, 카페와 음식점은 물론 이발소 미용실도 모두 문을 닫아서 당시 이 집 저 집 할 것 없이 집에서 직접 머리를 자르거나 아니면 장발로 무조건 기르거나, 이 두 가지 옵션 밖에 없었습니다.  이웃집 남자들도 머리가 길게 자라서 심지어 옆옆집네 남편은 아예 단발머리가 되기도 했답니다. ㅋ 이웃들의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었던 시기였죠.

저희 틴틴은 곱슬머리인데, 짧게 자른 상태일 때는 티가 잘 나지 않다가 머리가 자라면 물음표 ??? 모양으로 머리가 곱슬거리며 꺾이기 시작해요.  저 몰래 어디 가서 파마라도 하고 온 것처럼 보여서 그 머리를 볼 때마다 전 귀엽고 좋은데, 틴틴은 덥수룩하고 답답하다고 싫어합니다.

코로나 이후 다시 가위를 든 저는 드디어 세번째, 네번째 기회를 얻게 되었고, 하면 할 수록 나아지는 것 같아 저도 기분이 좋아요. 

오늘은 다섯번째. 코로나 이후로는 세번째 머리네요.  둘째 뚱이 낮잠에 들기 무섭게 아이를 눕혀놓고 다같이 욕실에 들어가서 윙윙윙 바리깡이라고 하나요, 그 도구를 들고 머리를 자르다가 윗부분만 남았을 때는 가위로 슥슥슥~ 

뚱이가 낮잠을 길게 자는 법이 없어 최대한 빨리 잘라야 해요.  또한 그 시간 동안 잭이 너무 지겨워하게 되면 잭이 뚱이를 깨워버리는 일도 일어날 수 있으므로 그 와중에 잭도 돌보며 머리를 잘라야 합니다.  저같은 초짜가 머리 자르는 것에만 집중해도 쉽지 않을 판국에 이래 저래 신경써야 할 게 많다 보니 처음 시작할 땐 늘 잘 자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하는데, 하다 보면 이래나 저래나 볼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든 마무리만 짓자는 마음으로 서두르게 됩니다. 

그래도 이제 하면 할수록 나아지기도 하고, 틴틴은 이발소에서 자르는 것보다 훨 마음에 든다며 늘 좋아합니다. 

몽실, 내 머리 잘라줘서 고마워!

인사도 잊지 않고 건넵니다. 

인사 받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힘들고 귀찮긴 해도 저도 재밌기도 하고, 뭔가 새로운 기술이 생기는 것 같아 보람도 있는데, 고맙다고 잊지 않고 말을 해 주니 그런 순간에 또 사랑이 싹틉니다.  내가 참 좋은 사람과 결혼했구나 하고 말이지요. 

어떤가요? 나쁘지 않죠? 

아랫부분을 망쳤다고 생각했는데, 씻고 나서 보니 그렇게 심하게 망친 것 같지는 않아서 저는 나름 마음에 듭니다. ㅋ 

틴틴도 마음에 들어해요.  영국에서는 남자 헤어컷도 12-16파운드 사이는 줘야 하고, 저희 지역은 14-15파운드 정도를 줘야 하는데 (2만-2만5천원), 매번 같은 헤어컷을 주문해도 매번 다른 헤어스타일이 나오거든요. 지불하는 돈에 비해 만족도가 떨어지다 보니 틴틴은 제가 집에서 잘라주는 머리를 마음에 들어합니다.  첫 두 번,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당시에는 바리깡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제가 그만.. 머리에 몇개의 구멍을 내는 사고가 있었으므로 당시 머리에 불만족스러워한 것은 저도 인정하는 바예요. 네... 그랬지요.. 구멍이 있었어요.  어쨌든, 이제 구멍을 만들지 않고 머리를 잘 완성할 수 있게 되어 저도 기쁘고 틴틴도 기쁩니다.

틴틴만 제가 자르는 게 아닙니다.  저희 잭은 당연히 제가 늘 잘라왔고, 제 머리도 이젠 제가 잘라요. 작년 1월 한국에서 머리를 단발로 자른 이후 여지껏 미용실 한번 못 갔거든요.  영국에서는 이렇게 오랫동안 미용실을 안 가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라 다행히 크게 티가 나질 않습니다. 

코로나가 바꾼 일상.  남편 머리를 직접 자르니, 남편이 머리 자르는 동안 혼자 집에서 애들 돌보고 있을 일도 없고, 얼마 아니지만 돈도 아끼고, 저는 나름대로 새로운 기술도 생겨서 재밌고 좋습니다.

코로나로 힘든 일이 많지만, 즐겁고 좋은 일도 생각하며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적어본 글입니다. 

모두들 힘냅시다.  아직 견뎌야 할 시간이 많이 남은 것 같으니까요.  모두 건강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