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언니 다이어리/한국 정착기 2020.11-2021.02

영국생활 13년 후 한국 정착기: 한국의 좋은 점

옥포동 몽실언니 2020. 12. 7. 11:54
우리는 이번에 한국에 오랫동안 머물다 갈 계획이다. 
사실 한국에 머물면 머물수록 겁이 난다.  한국에 계속 살고 싶기 때문이다.  가끔씩 짧은 일정으로 한국을 올 때는 느끼지 못했던 기분이다.  특히 아이가 없을 때는 더더욱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다.  외롭고 재미없기는 해도 영국에서의 삶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영국의 시스템이 마음에 들지는 않아도 이미 그 시스템에 적응해있는 우리에게는 영국 생활이 주는 익숙함이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생기고, 아이들과 함께 한국을 와보니 마음이 달라진다.  미세먼지에, 층간소음로 인한 어려움은 있지만, 인근에 가족들도 있고, 주변환경도 친숙하다.  10년 넘게 영국에 살며 한국을 떠나있었지만, 내가 나고 자란 곳이 주는 편안함이 이렇게 강력한 것일줄 몰랐다.  내 나라가 주는 편안함이라는 것은 아무리 오랫동안 엄마와 떨어져있다가도 엄마를 다시 만났을 때 느끼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번 방문을 길게 잡은 것은 코로나19로 인해 어렵고 힘들게 온 만큼, 다시 오기도 힘들테니 길게 있다가 가자는 마음이 하나요, 이번 기회에 한국으로 역이주를 하는 것은 어떨지 제대로 좀 탐색해보자는 마음이 또 하나 있었다.  그래서 이번 방문은 단순히 가족들과 재회하는 시간이 아니라 코로나19 직전까지 유행했던 외국 “한달살이”처럼 우리도 한국 “석달살이”를 하며 한국에 거주하는 느낌으로 지내고자 하는 계획이었다. 
자가격리 중에 2주의 시간이 지나다 보니 어느새 “한국살이”는 한 달에 접어들었다.  막상 겪어보니 좋은 점, 불편한 점, 놀라운 점,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 중에서 오늘은 딱 두가지의 좋은 점을 적어볼까 한다. 
좋은 점
언어 소통이 자유롭다. 
한국에서 사용되는 한국어가 내 모국어이다 보니 의사소통에 있어서 두려움이 없다.  사실, 두려움은 없는데 막상 공적인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자꾸만 내가 ‘어버버'하는 통에 스스로 당황스러운 상황이 자주 연출되기는 했다.  주민센터, 은행, 건강보험 공단 등 공적 업무를 보는 상황에서 내 한국어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상대방의 말도 잘 알아듣지 못해서 “다시 말씀해주시겠어요?” 혹은 “조금 천천히, 다시 한번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한국어로 공적업무를 처리해본 지가 너무 오래되다 보니 딱 그 부분의 한국어 구사가 너무 어색했는데, 그런 내 모습에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어색한 사투리 구사로 인한 문제도 있었다. 아이 어린이집을 알아보느라 인근 어린이집에 전화를 돌릴 때 한 어린이집에서는 내가 인삿말을 건넨 후 아이들 어린이집 알아보고 있다는 말, 딱 그 말만 했을 뿐인데도 외지에서 이사오신 거냐고, 자리 없다고 차갑게 응대하여 마음에 상처 아닌 상처를 받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마친 후 서울에서 살다, 영국에서 살다 보니 내 언어는 타지역 사람들에게는 사투리로 들리는데, 이 지역 사람들이 듣기에는 이 곳 사투리가 아닌 말을 쓰는 그런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국어는 강력한 것.  몇번 공적업무를 처리하고, 몇번 이 지역의 아주머니들과 대화를 나누고 나자 공적업무도 좀 더 자연스럽게 볼 수 있게 되었고, 내 안에 살아있던 사투리도 조금씩 더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말투가 좀 다르면 어떠랴.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 데에 불편함이 없으니 대인관계에 있어서의 마음가짐 자체가 훨씬 더 편안하다.  아, 그저 이렇게만 살고 싶다고 느껴지던 순간. 
날씨가 정말 좋다. 
일년에 2/3 정도가 비가 오는 날씨에 살던 우리 가족에게는 영국의 날씨는 환상적이다.  한국이 이렇게 날씨가 좋은 곳이라는 것은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한국의 매력으로 잘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특히 지난 수년간 한국인들이 한국에서 미세먼지로 인해 야외활동에 가졌던 제한점들을 생각하면, 날씨가 좋다고 느낀들 뭐하랴 밖에 나가서 즐길 수가 없었을테니 그것도 그럴 만하다.  그런데 외국 생활을 조금이라도 해 본 이들이라면 한국이 얼마나 날씨가 좋은 곳인지, 사계절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나고 특별한 일인지, 햇볕이 인간에게 주는 활력이 어떤 것인지 잘 알 것이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한국의 사계절의 아름다움에 대해 배웠을 때는 사계절이 한국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것인줄 알았다.  심지어 아름다운 가을의 단풍은 한국에만 존재하는 것인줄 알았다.  정말로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러다 외국에서 가을날씨에 아름다운 색색깔의 단풍을 보았을 때의 충격이란!  처음에는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과 특별함으로 사계절을 가르친 교과과정을 탓했다가, 그것을 한국에만 있는 것으로 생각했던 나의 어리석음에 내 얼굴이 붉어졌다.  각 나라마다 그 나라 고유의 지형과 풍토에 따른 아름다움이 있건만, 내 어린시절에만 해도 학생들에게 “애국심”을 고양시키기 위한 의도가 교과서 곳곳에 들어있었다.  실제인지는 몰라도, 북한 아이들은 산수를 배울 때 총, 칼과 같은 무기를 갖고 배운다고 하였으니.  가령, 영희는 총이 2개, 철수는 총이 하나이면, 총이 모두 몇 개인가,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한국의 날씨가 어느 정도이냐 하면, 여름이면 유럽 모든 사람들이 여름 휴양지로 가고싶어 하는 그리스, 이탈리아 날씨와 별 다를 바 없고, 겨울 날씨 또한 모든 유럽인들이 겨울에 가고 싶어하는 스페인 남부의 날씨와 별 다를 바 없다.  기온만 낮다 뿐이지, 해가 반짝이고 비가 오지 않는 것은 스페인의 겨울보다 한국이 더 낫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스페인 남부의 겨울은 한국보다 기온은 높지만 기본적으로 바람이 강하고, 흐린 날도 더 많은데, 한국은 기온이 아주 낮다 뿐이지 바람도 잔잔하고 해는 늘 반짝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주 추운 겨울에는 눈 구경도 할 수 있으니, 스페인 남부의 날씨보다 더 역동적이다.  유럽인들이 아주 큰 돈 들이지 않고 스위스의 알프스에서 스키를 탈 수 있다는 것은 부러운 일일 수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비행기로 알프스까지 가지 않아도 당일치기, 주말코스로 얼마든지 스키를 즐길 수 있으니 한국의 겨울도 그 자체로도 매력이 넘친다.  봄과 가을 날씨는 말할 것도 없다.  황사와 미세먼지로 봄날씨를 즐길 수 없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울 뿐, 날씨만큼은 그 어느 곳보다 한국이 최고다.  다른 나라를 가지 않고도 무더운 여름, 추운 겨울, 따사로운 봄날, 서늘하고 청명한 가을, 이 다양한 날씨를 한 나라에 살면서 온전히 즐길 수 있다는 것은 한국에 사는 이들에게는 평범한 일이지만,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이런 기후를 누리는 나라는 그렇게 많지가 않다. 
햇볕이 주는 에너지는 참으로 대단하다.  따사로운 햇살 속에서는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힘이 난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특히, 겨울의 따뜻한 햇살은 추운 날씨 속에서도 사람을 달리게 한다.  뛰고 싶게 한다.  해가 귀한 나라, 영국과는 정말 상반된다.  영국에서는 성인의 약 30%가 겨울이면 계절성 우울증에 시달린다.  영국에서 겨울은 “어둠의 시기”이다.  겨울을 정의하는 것이 “추위”이기 보다는 해가 없는 “어둠”의 계절.  8시가 넘어야 해가. 떠서 3시 반이면 컴컴해진다.  도로의 가로등 불빛도 약하고, 차가 자주 다니지 않는 도로에는 가로등조차 없어서 온전히 자동차 자체의 조명만으로 달려야 한다.  해가 지면 그 때부터가 “컴컴한 밤”인 곳, 그곳이 영국이다.  
이렇게 좋은 해가 항상 있는 곳.  한국, 내 나라.  나도 이제는 이 곳에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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