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언니 다이어리/한국 정착기 2020.11-2021.02

한국생활 한달, 그간 내가 느낀 것들...

옥포동 몽실언니 2020. 12. 10. 14:19
공인인증서와 휴대폰 본인인증의 무한 루프

한국에서는 조금이라도 “공적”인 성격이 들어간 일을 처리하려면 공인인증서가 있어야 하는데, 공인인증서가 만료되거나 정확한 개인정보로 내 정보를 수정하려고 하면 휴대폰으로 본인인증이 되어야 한다.  휴대폰으로 본인인증을 하지 못하면 정확한 개인정보로의 수정도 불가능하고, 최신의 공인인증서를 통해 공공업무를 볼 수도 없다.  

휴대폰으로 동일업무를 진행하려고 해도 PC에 있는 공인인증서를 핸드폰으로 옮겨와서 그 공인인증서를 통해서만 일을 진행할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도 본인명의의 휴대폰이 필요하다.  

가령, 아이 영유아검진을 받기 위해서는 병원에 가기 전에 온라인 상으로 문진표를 작성해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서도 공인인증서가 필요하다. 

어린이집 비용을 결제하기 위해서도 공인인증서가 필요하다.  

온라인 쇼핑의 천국과 헬

여기서도 휴대폰 본인인증의 늪은 계속된다.  휴대폰으로 본인인증이 되지 않으면 결제수단을 등록하지도 못하고, 개인정도도 최신정보로 수정하지 못한다.  즉, 온라인 쇼핑이 불가능한 것이다. 

일단, 온라인 쇼핑몰에 들어가면 뭔가 복잡하고 어려운 느낌이 든다.  일단 특정 온라인 쇼핑몰에 가입할 때 아이디를 만들 것을 요청하는 곳이 많다.  그것만 해도 개인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정보이자 절차같이 느껴진다.  영국에서는 대부분 이메일이 곧 아이디이자, 본인인증시 사용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또, 결제 시에도 신용카드 회사에 따라 카드 할인이 다르고, 쿠폰이며 적립금이며 여러 방식으로 할인이 되어서 잘 보고 잘 따져봐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뭐가 너무 많다 보니 가격정보가 한 눈에 쏙 들어오지 않고 처음 눈으로 봤을 때 뭔가 복잡한 느낌이 심리적 장벽으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쉬운 이유는, 일단 기본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나면 클릭 하나로 당일배송, 새벽배송, 익일배송 등 안 되는 게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배송이 편리하게 될 필요가 없는데, 익일배송이나 새벽배송을 하지 않을 경우 소비자에게 돌아오는 리워드가 없다 보니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고 생각하게 된다.  요즘 영국 아마존에서는 연간 일정액을 내고 (마치 쿠팡 로켓 와우배송과 같은) 무료 익일배송 서비스를 이용하는 아마존 프라임 고객들에게 프라임 배송 (무료 익일배송)을 이용하지 않고 일반 배송으로 물건을 받을 경우 아마존에서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인지 무엇인지를 주고 있다.  나도 급하지 않은 물건들에 대해 여러번 그 제도를 이용하였는데, 시간이 없다보니 그렇게 쌓은 포인트를 아직 사용은 하지 못한 상태.  특별히 그것으로 금전적인 혜택을 보지 못하더라도 내가 급하지 않은 물건은 천천히 받아서 그 덕분에 다른 급한 사람들이 급하게 필요한 물건을 제때 받아 볼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너무 친절한 반품 시스템: 모든 반품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경험한 첫 반품은 그렇다.  친절할 뿐만 아니라 배달서비스만큼이나 신속하다.  쓱배송으로 구입한 아이 분유가 잘 맞지 않아 반품 신청을 했더니, 연락한 당일 집으로 와서 바로 물건을 갖고 간다고 한다.  비대면으로 진행하므로 문 앞에 내어놓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새 분유를 먹기 시작한 후부터 아이가 설사를 해서 현재 그 분유를 중단한 상태인데, 이미 개봉한 분유도 반품이 된다고 해서 잘 됐다.  이전에 먹던 분유는 내일 도착할 예정인데, 그때까지 영국에서 가져온 액상 분유로 버틸 수 있을지 그게 관건이다. 

스마트폰 사용을 강요하는 나라

아이 어린이집 알림장을 요즘은 핸드폰 어플로 받고 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서는 스마트폰이 없으면 안 되는 시스템인 것이다.  물론 요즘 세상에 스마트폰 없는 성인이 어디있겠느냐만은, 아이들 교육상의 목적 때문에 아이 앞에서는 스마트폰 사용을 최소화하고 싶은데 아이 관련 업무를 보려면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다.  

카톡이 지배하는 세상

카톡으로 돈을 주고 받고 선물을 주고 받는다.  세상에 이렇게 편리할 데가.  알고 나니 편리하지만, 카톡으로 연결되어 있기만 하다면 누구에게든 수신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돈을 보내버리고 선물을 보내버릴 수 있는 세상.  물론 거절할 수 있지만, 손사레를 치며 거절하고 돌려보내는 것과 핸드폰으로 “거절하기”를 눌러서 기계상에서 타인의 선물과 돈을 거절하는 행위는 심적으로 미세하지만 다르게 다가오는 게 사실.  

가짜뉴스도 카톡으로 전파되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카톡으로 연결되어 있다.  전 국민이 카톡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카톡으로 온 나라가, 모든 사람이, 전 지역이 보이지 않는 망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서 섬뜩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하면서 놀란 것은 어린이집 선생님들도 개별적인 연락 사항이 있거나 공지사항이 있을 때 카톡으로 연락한다는 사실이다.  그로 인해 나 같은 사람에게는 가끔 문제가 발생한다.  지난 번 한국체류 중에 휴대폰 본인인증으로 인한 늪에 빠졌던 나는 한국 휴대폰을 하나 따로 개설했고, 그 때부터 한국 휴대폰과 영국 휴대폰 두 대를 사용 중이다.  영국 휴대폰은 최신폰이지만, 한국 휴대폰은 구형에 속도도 느리다 보니 카톡도 두 대 모두에 설치해놓고 이 폰 저 폰을 오가며 사용 중인데, 그러다 보니 한쪽에 로그인 했다가 다른 쪽으로 로그인 하게 되면 이전 대화내용이 삭제되어 어린이집 선생님이 보내주신 준비물 목록이 싸그리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다행히 나는 옛날사람이라 선생님이 보내준 목록을 내 다이어리에 적어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선생님에게 준비물 목록을 다시 보내달라고 요청해야 할 뻔 했다.  별 일 아닐 수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저임금에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내 과오로 인해 불필요한 추가업무가 생기는 것은 정말 민폐 같아서 최대한 피하고 싶은 일인데, 내 메모 습관(?) 덕분에 그 민폐를 막았다.  아날로그, 만세! 

공공서비스에서 불친절한 직원을 만나도 기분이 덜 나쁘다. 

오랜 해외 체류 후 한국에 오게 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각종 공공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불친절한 직원도 있고, 일 처리가 능숙하지 못한 직원도 만나게 된다.  그런 상황에 자주 처하게 되면 화가 날 수도 있지만, 영국 수준으로만 기대하면 크게 불만족스러울 일이 없다.  한국이라고 어찌 늘 친절하기만 하고 업무처리가 빠르기만 할까.  

영국에서 공공서비스 관련 업무를 처리하다 보면 정말 답답하고 화가 나고 어처구니가 없는 일을 제법 쉽게 만나게 된다.  몇번은 참지만, 그런 상황이 이어지면 이 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일하면서도 돈 벌어 먹고 사는구나, 어찌 이렇게 서비스 정신이 떨어지며, 어쩜 이렇게 일 처리도 미숙한가 싶어 화도 난다.  가끔 말도 안 되게 불친절한 사람을 만나면 이 사람이 내가 외국인이라서 이렇게 불친절하나 싶어 화도 난다.  그러나 한국에서 비슷한 일을 겪으면 그냥 그러려니 한다.  집에서 화가 나는 일이 있었나보다, 오늘 좀 피곤한가 보다,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나보다 하고.  별로 친절하지 않은 것이 기본값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화가 나거나 불만스럽지도 않다.  

그래도 이 곳은 한국이라서 내가 원하는 바를 더 명확하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고, 불만이 있다면 내가 공식적 방법으로 불만을 제기하는 것도 가능하고 (칭찬카드는 남기고 와 봤어도 불만을 남기고 와 본 적은 여태 한번도 없다), 무엇보다 내가 화가 날 때 그런 에피소드를 나누고 내 마음에 공감해줄 이들이 이 곳에는 더 많이 있기 때문일까.  소위 말하는 “자아효능감”이 더 높은 상황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사진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