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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살이의 복병, 헤이 피버(hay fever)의 계절이 오다

옥포동 몽실언니 2021. 5. 15. 08:30

일요일, 동네 공터(?)에서 기분이 좋은 잭.

헤이 피버(hay fever)의 계절이 왔습니다. 

헤이 피버는 꽃가루 알러지예요.  알러지가 있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렇지 않으신 분들은 꽃가루 알러지가 뭔지 이해하기 힘드실 거예요.  그리고 그게 뭐가 문제인지.  바로 제가 그랬거든요. 

그러나, 영국살이가 3년이 넘어가면서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던 꽃가루 알러지는 둘째 임신 중에 극에 달했고, 그 이후로는 제법 심각한 수준이 되어 저를 괴롭히고 있어요.  꽃가루 알러지가 그 정도입니다. 

영국은 특히나 공원이 많고, 집집마다 가든이 있다 보니 꽃가루 알러지의 여파가 더 심한 것 같습니다.  영국 사는 많은 사람들이 꽃가루 알러지에 시달리고 있는데, 어느 분의 말씀이 어릴 때부터 꽃가루 알러지로 힘들게 살았던 영국인인 자기 남편이 유일하게 꽃가루 알러지 반응이 없었던 것이 중국 북경에 살던 시기라고...  그런데 거기서는 공기 오염 때문에 남편이 정말 힘들어했다고. ㅠㅠ 

저는 가장 먼저 반응이 나타났던 것이 눈.  눈이 따갑고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그 때 의사 선생님께서 처음으로 그러셨어요.  헤이피버 같다고. 

그 때만 해도 응???? 하는 반응이었던 저. 

그 후로는 공원만 지나다니면 콧물이 찔찔나서 그냥 그런가보다, 내가 감기에 걸렸나??? 하고 지나갔는데,

목도 까끌까끌한 반응이 일어나더군요. 

내가 청소를 안 해서 그런가, 이불을 더 자주 빨아야겠다 하고 지냈던 저.

그러다 아빙던으로 이사를 왔고, 지금 사는 집으로 왔는데, 아빙던으로 와서 3년이 되자 심각한 수준의 헤이 피버로 발전했습니다.  목이 아프고 코가 따가워서 잘 수가 없고, 눈이 따가워서 눈을 뜰 수가 없고, 코는 꽉 막혀서 콧물이 줄줄 흐르는 지경에 이른 거죠.  심지어 피부에도 두드러기가, 두드러기가..얼마나 올라오는지..  얼굴도 가렵고, 눈 옆도 가렵고, 입 가도 가렵고..!!

당시 저는 둘째 임신 중.  의사에게 이야기하니, 임신 중에 먹을 수 있는 알러지 약은 제한적이라고, 최대한 코에 바세린을 바르며 버텨보고, 너무 힘들어서 견딜 수 없는 수준이 되면 약을 시도해보자고 했어요.

응?? 코에 바세린을 발라??  피부 습진에도 바세린을 듬뿍 바르라고 하더니, 꽃가루 알러지에도 바세린이라고?  영국의 빨간약 수준이라고 생각하며 비웃었으나 그래도 의사 선생님 말씀이니 한번 들어나보자 하고 코에 바세린을 발랐더니, 이런!!! 한결 낫네요! ㅋㅋ 

그 후로 이런 저런 고민과 조사와 주변에 조언을 구한 끝에 저희 나름의 대처법이 생겼습니다.

먼저, 알러지 필터가 강력한 공기청정기를 사용하고, 알러지의 계절이 오면 집안 곳곳을 부지런히 청소합니다.  작년에는 봄여름 내내 하루 2회 청소기, 이불 털기, 하루 수시로 샤워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꽃가루 씻어내기를 실시했지요.

올 해는 5월 중순이 되도록 날이 추운 바람에 꽃가루의 계절이 좀 늦게 온 것 같아요.  예년같았으면 4월부터 심했을 것이, 올해는 5월 중순이 다 되어서야 힘들어졌거든요.

저만 고생인 게 아닙니다.  저희 이쁜이 잭도 외출했다 하면 콧물 질질.  그걸 매번 오른 손으로 쓰윽 닦으니 얼굴의 오른쪽 볼에는 콧물 자국이 쓰윽 나 있습니다.  ㅠㅠ

어제도 자료를 하나 읽으려고 하는데, 당췌 눈을 뜰 수가 없어서 괴롭다고 울부짖었어요. 

"아, 정말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어!!!! ㅠㅠㅠㅠ"

"몽실, 얼른 가서 세수해!! 세수라도 해 봐!!"

틴틴의 그 말에 얼른 달려가서 세수를 했습니다.

"아...... 이제 살 거 같아.  이제 눈이 떠져!"

세수만 해도 살 것 같네요.  놀랍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꽃가루의 힘이 이렇게 큰 지!  그런데 그걸 씻어내는 물의 강력한 파워!!

요 며칠 제 재채기 소리에, 옆에서 줌으로 미팅 중이던 틴틴 동료들이 깜짝 놀랍니다.  틴틴 마이크로 제 재채기 소리가 들어가나봐요. 

"Bless you!"

제 재채기 소리에 놀란 동료들이 미팅 중에 건넨 말들.  아앙.. ㅠ 민망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열심히 틴틴이 코린이라는 동료와 1대1로 미팅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소리쳤어요.

"에에에에에취!"

"으악!!"

"왜 그래, 틴틴?"

"미팅을 나와버렸어.  재채기 소리에 너무 놀라서!"

"아... 미안해!!ㅠㅠ"

제 재채기 소리에 너무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미팅 종료 버튼을 클릭해버린 틴틴. ㅠㅠ

앞으로 적어도 9월까지는 고생을 좀 할텐데.. 큰 일입니다. 

영국에서 살면서 늘 5월에서 9월이 그나마 가장 아름답고 비도 적게 와서 살만 했던 계절인데, 이제는 그 계절마저 헤이 피버로 아주 두려운 계절이 되었으니..  영국에서 이젠 뭘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지 막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