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은 늘 바쁘다. 날씨가 좋으면 더더욱 바쁘다. 날씨가 좋을 때 이 좋은 날씨를 맘껏 즐겨야 하므로. 가벼운 옷차림으로 따뜻한 여름을 즐길 수 있는 날은 길어야 두달 남짓. 운 나쁘면 이런 더위는 일주일을 못 갈 수도 있다. 무엇을 상상하든 최악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 그게 바로 영국의 날씨이다.
날씨가 좋았던 주말. 우리의 원래 계획은 캠브릿지에 사는 친구네와 버킹엄이라는 작은 도시의 공원에서 만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며칠 전 내 몸 상태도 안 좋았던 데다, 친구 남편도 몸이 좋지 않으면서 주말의 만남을 2주 후로 연기했다.
몸이 좋지 않았던 나는 친구와 약속을 연기한 그 당일날, 엄청난 낮잠을 자며 제법 회복을 해서 주말에 예정대로 만날까 하였더니 친구 남편은 컨디션이 여전히 별로였던데다, 주말 일정이 취소되며 친구도 그 주말에 백신을 맞기로 예약하면서 친구와는 예정한대로 2주 후에 보기로 했다.
그 덕인지, 그 바람인지, 주말 내내 아무런 약속이 없게 된 우리는 토요일은 집에서 뒹굴거리며 잠도 보충하고, 집 가든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노는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일요일은 동네 farm을 찾아 동물 구경도 하고, 산책도 하고, 놀이터에서 놀고, 회전목마도 탔다. 아이는 놀이용 자동차도 타고, 놀이용 digger 조종도 하며 아주 신나는 하루를 보냈다.
아이들이 즐거운 시간을 가지는 동안, 나와 남편은 끊임없이 체력적 한계를 느끼며 이 고통스러운 시간은 언제 끝나나, 이렇게 놀았으니 아이들이 일찍 잘까 기대한다. 그러나 아이들의 취침시간은 언제나 비슷하다. 작은 아이는 9시 전후, 큰 아이는 10시 전후. 우리들의 체력이 점점 고갈되는 동안, 아이들의 무한체력에는 매일 감탄한다. 에너지의 차이 때문에 늘 지치지만, 아이들이라도 체력이 넘친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도 한다.
주말 내내 바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토요일 아침 남편과 내가 번갈아가며 잠을 보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큰 애가 일어나기 전 큰 애 옆에서 1시간쯤 잠을 보충했고, 나는 둘째가 낮잠 자는 사이 아이 옆에 누워 1시간 20분 가량을 잤더니 간만에 나도 남편도 에너지가 있었다.
그러면 뭐하나. 일요일 오전, 동네 farm에 가기 위해 외출을 준비하는 사이 이미 나와 남편은 지쳤다.
우리가 지쳐도 아이들은 즐거울 에너지가 충분하다는 것은 참 감사한 사실이다.
큰 아이 잭이 돌이 되었을 때, 한국에 있던 친구가 아들 수영복을 물려주었는데, 잭은 한두번도 입지 못했다가 (입기 거부) 둘째 뚱이를 입히게 되었다. 아들이 둘이니, 잭이 제대로 못 쓴 것은 뚱이 때라도 쓸 수 있어서 참 편리하다. 게다가 뚱이는 잭과 달리 새로운 옷을 입기를 그다지 거부하지 않아서 편하다.
어릴 때는 작은 것에도 행복하다. 아이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욕심 많은 아줌마가 된 것일까. 지금 이 상황에 내가 행복하지 못하다면 나는 언제 행복할 수 있는가.
작년 여름, ㅅㅎ이네 가족이 놀러왔다가 아이들이 깜빡하고 두고 간 작은 물총 하나로 우리 잭은 이렇게나 행복하다.
주말은 유튜브 보는 날~ 아이들이 좋아하는 Gecko's Garage. 그 중에서도 두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전기 경주차 편은 우리 부부가 보기에도 참 재밌다. 자동차 좋아하는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프로. 두 아이가 한 마음이 되는 때는 이렇게 유튜브, 그 중에서도 이 전기 경주차 편을 볼 때가 유일하다.
토요일 오후, 동네 사는 후배네가 우리집 가든 물놀이에 합류하면서 저녁까지 즐겁고 편안하게 하루가 지났다.
그리고 일요일.
잭에게 뭘 하고 싶은지, 어디를 가고 싶은지 물었다. 아이가 늘 좋아하는 "거위 있는 놀이터(=동네 놀이터)"를 가고 싶은지, 아니면 인근에 있는 밀레츠 팜을 가는 건 어떨지 물었더니 아이가 "밀레츠 팜!"으로 가자고 한다. 오랫만에 들은 그 이름이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한 모양이다. 뚱이 태어나고 나서 딱 한번 오고 못 온 밀레츠 팜(링크 클릭).
Millets Farm은 아빙던에서 10-15분 가면 있는 커다란 농장이다. 농장 샵고 있고, 가든 센터도 있고, 아이들을 위한 한국식 키카(키즈카페)라고 할만한 soft play를 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예전에는 이 소프트 플레이 센터를 자주 찾았는데 코로나로 실내 놀이센터들은 문을 닫았고, 우리도 이 곳을 찾지 않았다. 그 외에도 동물들을 보며 걸을 수 있는 산책로도 있고, 그 산책로를 지나면 숲길도 산책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무료이다. 심지어 주차까지!
우리는 동물 우리 근처 주차장에 차를 대고 동물들을 구경하며 산책을 시작했다. 양을 보고, 당나귀를 보고, 알파카를 보고 나서 나타난 돼지! 꿀꿀 돼지가 나무 기둥에 자기 몸을 열심히 부비고 있었다. 그걸 바라보는 뚱이.
좀 더 가면 나타나는 호수. 아기 오리들이 어느새 많이 자랐다. 아기 오리, 안녕!
동물들을 모두 지나니 나타난 산책로. 이 깊숙이까지 와보기는 우리 부부도 처음이다. 정말 오랫만에 숲같은 느낌이 나는 곳이었다. 아이들도, 우리 부부도 모두 설레었던 산책.
공원 나무 테이블에서 집에서 싸간 샌드위치 점심을 먹고 뛰어놀다가 다시 동물들 근처로 돌아왔고, 그곳에 있는 회전목마에 도전했다.
큰 아이 잭은 뚱이 나이때부터 이 곳에 제법 자주 놀러왔고, 그 때마다 회전목마를 보며 관심을 보였지만 막상 타자고 하면 늘 무서워하며 싫어했다. 이 날은 혹시나 하여 아빠와 회전목마를 타겠냐 하니 싫다고 했던 아이가, 점심을 먹고 나서 다시 회전목마 앞에서 "엄마랑 회전목마 한번 타볼까?" 했더니 이번에는 좋단다.
아이가 쑥쑥 자란다. 무서워했던 것들에 대한 겁이 하나 둘씩 약해진다.
아이는 말에 올라타는 대신, 마차에 타고 싶다고 했다. 아이와 함께 올라 너른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회전목마 타는 사진은 나한테 한 장도 없다. 핸드폰이 틴틴 가방에 있었던 데다가, 생애 첫 회전목마 도전으로 긴장한 잭의 손을 꼭 잡아주느라 핸드폰이 있었어도 사진을 찍기는 힘들었을 듯.
회전목마를 탄 후에는 아이스크림 밴에서 아이스크림도 사먹었다. 동네 놀이터에 오는 아이스크림 밴에서 파는 소프트아이스크림이 아닌, 제대로 된 아이스크림이 제대로 된 콘 위에 얹어져 있어서 놀랐다. 맛있는 진짜 아이스크림이었다. 다음에는 나도 아이스크림 하나 먹어야지!
틴틴이 잭을 데리고 아이스크림 밴에 줄을 서 있는 동안, 그 시간이 나에게는 짧은 휴식이었다. 잭은 아이스크림에 대한 기대로 순종적이었고, 뚱이는 형이 없을 때는 그나마 다루기가 쉬운 편이다. 게다가 동네 후배 가족이 피크닉 매트에서 점심을 먹던 중이라 뚱이는 그 집 아이 계란을 뺏어(?)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이들이 뭔가를 먹을 때, 그 때가 그나마 육아에서 자유로운 때이다.
그리고 나니 어른들도 커피가 간절해졌다. 우리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사서 야외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아이들은 주전부리 간식을 먹었다. 카페 테라스에는 처음으로 앉아봤는데, 그 테라스는 자연스럽게 놀이터와 연결되어 있었다. 아이들에게 가장 큰 유혹거리, 놀이터!
놀이터는 작지만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은 모두 다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모래놀이장과, 동전 자동차, 그리고 동전 디거(포크레인) 조정기.
회전목마를 타느라 나 2파운드, 잭 2파운드를 썼는데, 동전 자동차를 타느라 1파운드를 쓰고, 디거 조정에 1파운드를 또 썼다. 돈이 들기는 했지만,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은 아니었다. 지난 겨울, 한국에서 아이와 함께 간 수족관에서는 새모이주기, 수달 밥주기 등의 활동에 2-3천원씩 돈을 내고 그 활동이 1분도 채 지속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이건 괜찮은 가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은 오후면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던 지라, 해가 있을 때 얼른 외출하고 돌아오자고 집을 나선 것인데 오기로 한 비는 오지 않고 해가 너무 강했다. 아이는 피곤하니 이성을 잃고, 신발 양말 다 벗고 모래사장에 들어가서는 나올 생각을 않았다. 썬로션을 발랐지만 아이의 볼은 점점 붉어졌고, 아이의 일광화상과 열사병이 걱정된 우리는 가든센터에 쇼핑하러 가자고, 토마토 사서 집에다 심자고 어떻게든 아이를 꼬득였다.
마침 최근 이 밀렛츠 팜을 다녀온 적 있었던 동네 후배네는 가든 센터 앞에서 옷을 파는데 아이들 모자도 판다고, 모자가 필요하면 사러 가자고 했다. 늘 둥근 창이 있는 모자만 썼던 아이가, 모자 코너에 가더니 바로 이 캡 모자를 골랐다. 처음에는 빨간색, 그 다음으로는 짙은 파란색을 고르더니 결국 이 하늘색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이걸로 하겠단다.
절대 모자를 쓰지 않으려고 해서 애 먹이던 아이인데, 스스로 모자를 고르고 직접 머리에 쓰기까지 하니 우리로서는 감지덕지다. 네 마음에 든다면 우리도 좋다고, 가격도 5파운드이니 (7500원) 나쁘지 않다. 큰 아이가 쓰면 작은 아이도 똑같은 게 필요한 처지. 둘째 것도 하나 샀다. 쇼핑에 10파운드.
형아와 똑같은 모자가 생겨서 행복한 둘째 뚱이.
애들 기저귀 가방만 들고 다니던 내가 요즘 작은 파우치백을 들고 다녔더니 그걸 본 뚱이가 내 가방도 탐을 낸다. 어깨에 맸다가 목에 맸다가, 저 짧은 손잡이 고리로 제 몸을 통과시키는 등 형아가 목욕하는 동안 내 가방 하나로 재밌게 놀았다.
그렇게 우리의 주말이 지났다.
큰 아이 잭은 오늘도 어김없이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우는 소리를 냈지만, 그 우는 소리를 내는 시간은 나날이 조금씩 짧아져간다.
둘째 뚱이는 언제나처럼 울지 않고 잘 들어간다. 규칙적인 일상에 형아에 비해 좀 더 쉽게 안정감을 느끼는 성격인 것 같다. 좀 더 현실적이고 포기도 빠르다. 그게 부모입장에서는 편해서 좋으면서도, 짠한 마음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즐거운 주말이 지났으니 이제 평일에는 열심히 각자의 본업에 충실해야 할 시간. 틴틴은 하루종일 회의 중이고, 나는 짧은 informal 한 미팅 후 블로그를 쓰며 주말을 정리한다. 그리고 나도 내 일을 시작해야지.
한 주, 잘 해보자. 아이들아, 엄마 아빠 잘 부탁해. 이번주도 건강하게 쑥쑥 자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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