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큰 아이 잭은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집에서부터 칭얼거렸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을 가기 싫어할 수 있다. 그게 그렇게 이상할 일은 아니다. 아이가 가기 싫다고 할 때면 틴틴도 같은 말을 한다. 아빠도 일 하기 싫다고. 일 안 하고 놀고만 싶다고.
그런데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기 싫어하고, 그게 하루가 아니라 매일 반복되면 부모인 우리도 참 지치고 힘들다. 그 이유는, 싫다는 아이 달래가며 밥 먹이고, 옷 입히고, 차에 태우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정적으로도 힘들지만, 육체적으로도 힘들다. 우리 잭은 이제 거의 20킬로가 다 되어가는데 그 몸에 아이가 힘을 바짝 주거나 몸을 마구 흔들어대면 나나 틴틴이나 아이를 감당하기가 힘들다. 그런 아이를 어루고 달래며 밥 먹이고, 씻시고, 양치 시키고, 옷 입히고, 차에 태우려니 매일 아침이 전쟁이다.
아이들은 매일 나름의 수를 쓴다. 어린이집 등원을 최대한 미루려고. 큰 아이가 쓰는 전략은 밥 천천히 먹기, 아주 느리게 먹기, 입맛 없고 먹기 싫어도 끝까지 다 먹을 거라고 식탁에 계속 앉아있기. 그리고 나서는 책 읽겠다고, 평소에는 잘 거들떠보지도 않는 책을 읽어달라고 떼쓰기. 양치할 때 싫다고 도망가는 건 첫째나 둘째나 매한가지.
오늘도 겨우겨우 어루고 달래서 차에 태우는데까지는 성공했다. 큰 애가 감기기운에, 한주간의 피로가 몰려 아침 8시가 훌쩍 넘어서야 일어난 탓에 등원 시간이 많이 늦어버렸다. 매일 아침 9시 30분이면 회의를 시작하는 틴틴도 마음이 급하고, 일이 많이 밀린 나도 나대로 급한데, 두 아이들만 급할 게 전혀 없다. 그 와중에 큰 애는 책 읽어달라고, 차에서라도 읽어달라고 책을 내게 들이민다. 오늘은 너무 늦은 탓에 틴틴이 같이 가면 회의에 늦어서 나 혼자 운전해서 아이들을 등원시켜야 하는데 그런 내게 책을 읽어달라니.
형아가 차에 타며 책을 읽어달라고 떼를 쓰자 신발신고 문앞에서 대기 중이던 둘째 뚱이가 신발을 신은 채로 거실로 마구 들어간다.
"뚱이!! 신발신고 거실들어가면 안 되지!"
내가 소리치자 아이는 더 잽싸게 세걸음을 들어가더니 거실 바닥에 있던 책을 손에 쥐고 이제야 만족했다는 듯이 웃으며 돌아온다. 형아 책을 읽어줄 거면 자기 책도 읽어달라는 거다.
그렇게 우리는 정신없이 어린이집으로 출발했다.
출발하기도 전부터 잭은 운전 중인 내게 책을 읽으라고 야단이다.
"말로 말고, 읽어줘!"
책을 읽어줄 상황이 안 될때 우리가 "말로 책을 읽어" 주곤 했는데, 잭이 그건 싫다는 거다. 책을 안 보고 말로만 해주는 건 싫고, 책을 같이 보면서, 책에 나온 그대로 읽어달라고 요구한다.
"응, 알았어. 엄마가 지금은 못 읽어주니까 어린이집에 도착해서 읽어줄게."
그러자 뚱이도 자기 책을 읽어달라고 소리친다.
"책 읽어줘!!!"
뚱이도 말을 잘 한다. 책 읽어줘, 창문 열어줘, 물 더 줘, 우유 더 많이 줘. 뭔가 해달라는 말들을 제일 잘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뚱이가 들고 온 책을 말로 읽어주며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우리가 집 짓는 건 누가 도와주지? 그건 바로 미스터 브릭! 미스터 브릭 아저씨가 일 하러 갈 때는 뭐 타고 가지?"
"트럭!"
"트럭!"
"맞아, 멋진 트럭! A terrific truck(영어로 된 책이다)! 트럭에 있는 물건을 내릴 때는 어떤 차가 도와주지?"
"포크 리프트!!"
"딩동댕!"
내가 딩동댕 하는 소리에 잭이 하하하 웃으며 좋아한다.
그렇게 우리는 어린이집으로 가다가, 오늘도 나는 우회전해서 골목으로 들어가는 지름길로 가지 않고 그 길을 지나쳐 계속 달렸다. 그걸 곧바로 눈치챈 잭은 신이 나서 소리쳤다.
"좋다!! 좋다!!!"
"좋아? 둘러가는 게 그렇게 좋아?"
"좋아!!! 으흐흐흐!"
둘러가는 길이라고 해봤자 1분도 차이나지 않는데, 일탈의 기쁨을 이리도 크게 느끼다니!
그러더니 잭이 내게 말했다.
"엄마, 파란불에서는 서면 안 돼!"
"맞아, 파란불에서는 서면 안 되지. 어떤 불일 때 서야 해요?"
"빨간 불!"
"맞아. 엄마가 전에 실수로 파란불인데 서버렸지? 엄마가 운전을 조심해서 잘 해야 해. 규칙을 잘 지켜야 하는데, 안 지키면 위험해, 그치?"
"응, 파란 불에 서면 안 돼~"
며칠 전 아이들 하원길에 시내를 통과하며 횡단보도 앞을 지나다가 자동차 신호로 파란불인데 그걸 보행자 신호로 착각하고 1초쯤 섰다가 얼른 정신을 차리고 다시 주행한 적이 있었다. 그걸 기억한 잭이 내게 오늘도 실수하면 안 된다고 당부를 해준 것이다. 딱 한번, '엄마가 파란 불인데도 서 있었네. 다른 사람들이 엄마 왜 섰나 하고 깜짝 놀랐겠다.' 하고 한 마디 했을 뿐인데, 그 일이 아이 기억에는 그리 남았나보다.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어린이집.
이전까지는 늘 잭을 먼저 데려다주고 뚱이를 데려다줬는데, 최근 뚱이 교실 입구가 바뀌면서 뚱이를 먼저 데려다주고 잭을 데려다준다. 오늘도 뚱이 교실 앞으로 먼저 갔고, 뚱이는 다시 혼자 성큼성큼 들어가는 듯하여 마음을 쓸어내리며 입구에 걸린 아이 가방에 아이 여벌옷을 넣어주고 있는데 아이가 이내 뒤돌아 뛰어나오며 울음을 터뜨렸다.
가만보니, 우리 뚱이가 울지않고 성큼성큼 들어가던 것은 엄마가 당연히 뒤따라올거라는 생각에 그런 것이었고, 엄마가 옆에 없다는 것을 눈치채자 마자 울며서 뛰쳐나온 것이다.
그 때, 뚱이반의 새로운 Room Leader가 된 아비가 나와 뚱이를 번쩍 안아줬다.
"우리 창 밖에 한번 볼까?"
말하며 뚱이를 안아 창 가에 섰는데, 그 창은 잭 교실로 향하는 나와 잭이 보이는 창문이었다.
아비는 잭 반 선생님 중 가장 차가운 듯해 보여서 내가 늘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던 선생님인데, 오늘 뚱이를 번쩍 들어안아주는 것을 보고 나서 이 선생님에 대한 나의 의문이 조금 풀렸다. 잭 반에서 큰 아이들과 있을 때는 늘 상호작용도 별로 없어 보였는데, 유아반으로 옮기고 나서 더 어린 아이들, 0세에서 2세 사이의 아이들과 더 편하게, 즐거워하는 듯했다. 이 선생님은 더 어린 아이들과 합이 잘 맞는 선생님이었을 수 있었겠다. 자신에게 더 잘 맞는 옷을 입었으니, 아이들과 아비 모두 더 편안하기를..
창앞에 서서 뚱이가 나를 보고 있으니 나는 활짝 웃으며 바이바이 손을 흔들고 뚱이 마음이 아플세라 잭과 함께 얼른 뛰어서 잭의 교실로 갔다.
오늘은 등원시간이 늦어서 그런가 잭이 울지 않고 자기 교실로 들어갔다. 한 아이라도 울지 않고 들어가니 마음이 좀 가볍다.
지금은 뚱이 감기, 잭 감기, 틴틴 컨디션 저조. 나 말고 다 아프다. ㅠㅠ 살다 살다 내가 이렇게 살게 될 줄이야. 늘 아픈 것은 내 몫인줄 알았는데. 틴틴은 이틀간 병가를 내고도 그다지 회복된 것 같지가 않다. 토요일에 시누집에 가기로 한 일도 취소했다. 거의 넉달만에 시누네에 가기로 한 터라 잭이 기대하고 있었는데(잭이 좋아하는 과자를 고모가 사뒀다. 아이스크림도 주기로 했는데...) 시누가 아이들 감기를 옮을까봐 걱정되어서 다음에, 아이들 컨디션이 더 나을 때 가기로 했다. 코비드로 집에만 있어서 그런지 시누도 면역이 너무 약해져서 지난 번 방문 후 뚱이 감기를 옮아서는 시누 혼자 일주일 넘게 고생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주말을 너무나 고대하고 있는데, 틴틴은 벌써 주말을 두려워하고 있다. 온종일 아이들을 봐야 하는 주말이 평일보다 더 힘들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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