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in 2021

아이가 아플 때 깨닫게 되는 나의 부모님의 사랑

옥포동 몽실언니 2021. 9. 22. 08:30

육아는 힘들다.  그 중에서도 육아가 가장 힘들 때는 단연 아이가 아플 때이다.  육아의 고됨의 80%는 아이가 아플 때 그로 인한 여파가 차지하는 것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아이가 아프면 아이가 많이 보채고, 잘 먹지도 않는다.  그러니 늘 배도 좀 고프고, 자기 몸도 힘드니 더 칭얼거린다.  더 많이 안기려하고, 조금만 수가 맞지 않아도 짜증을 낸다.  아직 말도 잘 못하니 아이는 소리만 내지르고 울음이 잦아진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는 잠을 설친다.  어른도 감기에 걸리면 잘 때 유독 기침이 많이 나듯,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밤새 기침을 하고, 기침이 힘들면 자다가도 울어재낀다.  

아픈 아이 때문에 밤잠 설치는 날이 하루 이틀 계속되면 부모도 체력이 고갈된다.  고갈된 체력으로 아픈 아이들을 돌보자면 체력이 더 고갈된다.  인내심도 줄어든다.  집안일은 더 쌓이고, 엉망인 집안꼴에 기분도 더 별로다.  내 몸가짐 하나 제대로 못 하고 사는 인생 같아보여서 사는 게 뭐 이런가 싶어 스스로가 한심하다. 

애들이 아픈지 며칠되자 틴틴은 또다시 대상포진이 왔다.  도대체 몇 번째야... ㅠㅠ 지난주부터 계속 몸이 좋지 않아서 이틀이나 병가를 썼건만, 그렇게 회복될 몸이 아니었나보다.  얼마나 힘들었을꼬.  또 지금은 얼마나 아플꼬. 

그렇게 아이들과 틴틴을 걱정하던 중에 결국 나도 감기몸살이 왔다.  온 몸이 으슬으슬하고 허리, 고관절, 하체 모든 관절마저 끊어지는 느낌.  출산 후에 느끼던 온 몸이 아픈 느낌에 가깝게 몸이 아팠다.  

육아가 쉬울 때는 없지만, 그나마 아이들이 아프지 않아야 우리 부부의 컨디션도 그나마 유지된다.  아이들이 아프고, 그래서 우리까지 아파지면 그 때가 최대의 고비가 된다.  

이런 걸 생각하면 가족 중에 늘 아픈 사람이 있는 가정들은 얼마나 힘이 들지, 그들의 고충과 어려움을 우리가 함께 나누지 않으면 그들은 버티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이들은 참 좋겠다.  아프면 아프다고 투정부리고, 아플 때나 안 아플 때나 밥 걱정 할 필요 없고, 돈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  목욕물도 직접 받을 필요 없고, 빨래도 직접 하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 아이언맨처럼 옷도 부모가 직접 입혀주기까지 하고, 양치질도 시켜주니 얼마나 좋을까!

밤사이 울어대서 어두운 방 구석에서 아이를 들쳐안고 서서 흔들흔들 해주다 보면 도대체 이런 생활은 언제쯤에나 끝이 나나 막막해진다.  이렇게 늘상 밤마다 잠 못 자고 아이 안고 흔들어 달래 재우다가 내 인생이 끝나버리면 어쩌나 싶기까지 하다.  이 힘든 육아를 남들은 다들 어떻게 하나 참 대단하고, 나만 이게 왜 이리 힘드나 싶어 속상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고 나면 과연 이게 나만 힘든 일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릴 때 감기 한번 안 걸리고 자라는 아이는 없고, 아이가 아픈 상황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고,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일이니.  나라고 어릴 때 안 아팠을까.  틴틴은 신생아때 모세기관지염으로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는데.  

그럼 우리 부모님도 이 모든 과정을 거쳤다는 것인가.  심지어 엄마 아버지는 자식 넷이나, 시부모님은 자식 셋이나 이렇게 키워냈다는 것인가. 

우리 모두가 어릴 때는 아파서 보살핌이 필요한 때가 있었고, 우리 모두가 어릴 때는 부모가 밥을 떠먹여줘야 했던 때가 있었고, 부모가 씻겨주고, 재워주고, 달래주던 때가 있었다는 생각에 이르면 아이를 안아재우며 우울했던 마음이 조금 풀어진다.  나도 그렇게 사랑을 받고 자랐구나, 지금은 내가 받은 그 사랑을 대물림해주는 것이구나, 삶이란 이렇게 우리가 받은 사랑을 우리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돌려주는 (벌을 받고 있는) 것이구나.. 

우리 모두가 그런 한 때가 있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때가 있었다고 해서 그게 아무렇지 않은 일이 아니다. 

특히, 부모님의 맏이사랑으로 셋째인 나에게는 늘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며 자랐던 나였기에 이런 깨달음은 더욱 소중하다.  내게 말씀하지는 않으셨어도, 티내지는 않으셨어도, 내가 기억하지 못해도, 부모님이 나를 저리 어여삐여기고, 어르고 달래며 먹여주고 입혀주던 때가 있었다고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참 벅찬 사랑을 이미 다 받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내 아이들을 보며 웃음이 지어지듯이, 우리 부모님도 가만히 있는 나를 보고도 웃음지으셨던 때가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부모님의 사랑에 늘 목말라했었는데, 그것은 내 부모님의 나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가 부모님의 사랑의 행동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음을 깨닫는다. 

부모 마음은 자식 낳아봐야 안다는 말을 참 싫어했더랬다.  자식을 낳아보지 않고서는 그 마음을 알 수 없다고 하는 말이 싫었다.  

그러나 결국 나도 자식을 낳고 길러보고 나서야, 그리고 아이들이 아프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야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깨닫는다.  사랑의 행위인줄 몰랐던 것들이 모두 사랑의 행위였음을 알게 된다. 

부모님이 내게 주신 눈빛과 말 한마디, 일상 속의 행동 하나하나가 실은 부모님의 큰 사랑이었고, 그 사랑에서 나오는 나에 대한 인내심이었다는 것을.

요즘은 부모님께 전화를 좀 더 자주하려고 신경을 쓰고 있다.  안 하던 일을 하려니 잘 안 되긴 하지만, 그래도 노력 중이다.  특히, 아버지께 전화를 자주 하려고 한다.  겨울에 부모님과 함께 지내며 아버지의 대화상대가 참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버지께서 내 전화는 늘 엄마에게로 넘기신다는 것. 

엄마와 전화를 하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진다.  그러다 보니 엄마와 전화를 끊어야 할 때마다 "엄마, 나 이제 일해야 해서 끊어야 해요."라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얼마전에도 그렇게 전화를 끊으려 하는데, 그 때 엄마가 한마디 하셨다.

"너, 요즘 일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니니?! 일할 게 그렇게 많니?"

순간 웃음이 터지면서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자식은 이렇게 이기적이다.  내 생각만 하고, 나 좋을 때 전화하고, 나 끊고 싶을 때 끊으려하는.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게 자식과 부모 관계인 것을.  그렇게 끊더라도 내 전화가 오면 부모님이 좋아하실 거라는 걸 안다.  내가 늙어 아이들이 독립했을 때, 그렇게 잠시라도 짬을 내어 연락해주면 나도 너무 좋을 것 같으니까. 

그렇게 나는 자식을 키우며 부모님의 사랑을 깨닫고, 부모님에게도 그 사랑을 조금씩 돌려드리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내 아이들을 많이 사랑하는 만큼 내 부모님께도 사랑을 더 많이 드리고 싶다.  

아이가 집어든 하트 모양 낙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