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위드 코로나' 상황
우리는 영국에서 코비드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소위 '위드 코로나' 라고 불리는 정책이 영국이 이미 실시하고 있는 그런 정책이다. 이젠 정책을 열심히 체크하지도 않는다. 지난 가을부터 이미 가족 중 확진자가 있어도 확진자 본인만 10일 격리, 그 외 가족은 백신 2회 접종하고 검사결과가 음성이면 자가격리 의무가 사라졌다.
게다가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도 폐지되었다가 오미크론 확산으로 다시 잠시 부활했다. 그러나 그 또한 얼마전 이미 폐지되었다.
뿐만 아니다. 이제 코비드 확진으로 자가격리 대상이 되더라도 자가격리 기간이 짧아졌다. 집에서 직접 실시하는 신속항원검사 결과에 따라 일주일이면 격리가 해제된다나 어쩐다나.
인구가 약 7천만명인 영국에서 코비드 확진자가 1천만명이 넘은 건 이미 오래된 일이고, 이제 약 1650만명 가량이 확진된 상태라고 한다. 그러나 나와 틴틴처럼 가족 중 양성 확진자(잭)가 있고, 우리 부부가 후각 상실에 심한 기침으로 코비드 증상으로 확실해 보이는 증상이 있어도 백신접종으로 인한 영향인지 PCR을 3회나 실시해도 모두 음성이 나왔으니. 우리 같이 검사 결과로 양성이 나오지 않았으나 코비드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은 꽤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영국에서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고 있고, 1월 말부터는 모든 사무직 직원들에 대한 정부의 재택근무 권고도 사라지면서 이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오피스로 복귀하는 분위기이다.
이에 맞춰 2주 전부터 남편도 새로 시작하게 된 런던의 새 직장에 주 1회 출근을 하고 있는데, 사무실 직원 중 단 한 명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분위기에 힘입어(?!!) 남편도 코비드 발발 이후 처음으로 공용공간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얼마전 처음으로 용기내어 실내 키즈카페를 다녀왔다는 후배가족은 키즈카페 안에 사람이 너무너무 많아서 놀랐다고 한다.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그 곳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당연히 100% 미착용일 것이고, 어른들도 아주 소수를 제외하고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일하는 사무실에서도 쓰지 않는데, 주말에 아이들 데리고 놀러간 자리에서 쓸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이런 생활은 한국에서는 상상하기가 힘든 생활이다.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그럴 것이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이렇게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끼리 하는 우스개소리로 하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영국에 코로나가 어딨어?!"
코비드에 대한 영국 정부의 안일한 태도
이렇게 살아가는 결과는 온전히 가족들, 개인들에게 돌아온다. 물론, 정부에서는 영국의 국민건강의료서비스인 NHS에 그 부담이 돌아온다고, 계속해서 개인 위생을 잘 관리할 것을 강조하긴 한다.
그러나 코비드가 발발한 이후 2020년 6월 전국이 락다운으로 심각했던 상황에서 영국 총리는 생일이라고 손님을 30명이나 초대해서 생일축하를 하고 다같이 케잌을 나눠먹었음이 다 알려진 상황을 보면 영국 정부가 코로나를 어떻게 대해왔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개인들에게 마스크 착용에 대해서는 매우 완화된 입장을 취하면서 개인들에게 단지 친목 모임을 자제하라고 하고, 노인들은 자신의 가족들과도 만나지 못하도록 하며 개인들의 사생활을 통제해온 정부가 정작 그들은 모여서 생일파티를 했다는 사실이 현재 모든 사람을 씁쓸하게 만들고 있다.
오늘은 코비드에 여러번 걸린 사람들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는 게 BBC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놀랍지 않다. 이렇게 사는데 어떻게 한 번만 걸리겠는가! 두 번, 세 번 걸리는 게 당연하다. 두 번, 세 번 걸렸으면 운이 좋은 일이다.
우리 가족의 경험: 한 번의 감염? 세 번의 감염?
우리 가족의 경우는 어떠한가? 우리는 아이들이 어리고, 틴틴도 어려서 천식을 앓았으며, 첫째 잭도 기관지가 건강한 편은 아니라서 되도록 외부 외출을 자제하고 아이들과 탁 트인 자연 공간 외에는 쇼핑몰이나 마트 출입도 하지 않으며 지내왔다. 그 덕에 두돌을 맞은 우리 둘째 뚱이는 태어나서 마트나 쇼핑몰을 가본 적이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밖에 안 된다.
그렇게 살아온 우리이건만, 그런 우리도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니고 한글학교를 나가니 결국 코비드에 걸리고 말았다. 2021년 10월 아마 델타 변이가 감염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서 크리스마스쯤 해서도 어린이집에서 확진자가 3명이 나왔다. 그 때도 아이들이 감기에 걸렸고, 심한 정도가 아니라서 다같이 피곤한 상태로 그럭저럭 시간을 보냈다. 다만, 혹시라도 우리가 바이러스를 갖고 있을 것에 대비해서 크리스마스에 친구 남편과 만나기로 한 약속을 취소했다.
우리 아이들은 이미 가벼운 감기는 늘 달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이들은 대부분 그렇다.
아이들이 가벼운 감기 증상을 보이긴 해도 낮에 놀면서 기침을 하거나, 코가 많이 나오는 정도로 눈에 띄는 증상은 없다. 잘 때 기침을 하거나, 아침에 일어나면서 기침을 조금 하는 정도. 그러다 보니 어린이집을 계속 보내는데 무리가 없었고, 어린이집에서도 아이들이 감기라고 지적하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최근 2-3주간 내가 많이 아팠다. 갑자기 감기 증상에 목이 너무 아파서 영국에서 젤 잘 듣는다고들 이야기하는 Day and Night Nurse 라는 약을 처음으로 사서 먹어보았다. 잘 듣는 건 모르겠지만 약이 독하긴 독했다. 저녁에 한알 (원래 두 알이 정량)만 먹고 잤는데도 아침까지 정신이 몽롱했다.
목이 좀 나은 것 같아서 약을 먹지 않은 날들은 잠이 쏟아져서 낮에도 내내 누워 자고도 밤에 힘들어서 지쳐서 또 잠들었다.
그리고 났더니 목에 임파선이 많이 부었다. 너무 피곤해서 제대로 활동조차 할 수 없었다.
결국 지난주 토요일은 아이들 데리고 토요일마다 가는 한글학교를 갈 예정이었으나 거기도 갈 수 없었다. 아이들은 괜찮은데 나만 몸이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어린이집에서 온 메일을 확인했다. 또 확진자 2명이 나왔다는 것.
틴틴과 나는 우리가 그간 그렇게 힘들고 피곤했던 게 어쩌면 우리가 또 바이러스에 걸린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둘 다 특별히 코비드 증상이라고 할만한 증상이 없고, 아이들도 특별한 증상이 없다 보니 의무적인 검사 대상에 해당하지도 않는다. 어린이집에서 온 이메일도 비록 어린이집에서 확진자가 나왔어도 아이들이 별 증상이 없다면 계속 보내도 된다는 이메일이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며 나는 몸을 추스리고 일상으로 복귀하려고 하는데, 몸이 금방 회복되지가 않는다. 아직까지도 아이들이 어려서 자다가 엄마를 찾고 내 팔을 베고, 내 배를 베고 자다 보니 잠을 자도 자는 것 같지 않은 것도 한 몫 할 것이다. 아직 내 컨디션은 30-40%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다. 계속 피곤하다.
영국에서 우리는 이렇게 코로나와 함께 살고 있다. 원해서 이렇게 사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이 방법밖에 없어서 이렇게 사는 것이다.
각자 혼자서 아프고 혼자 약을 먹고 검사도 꼭 해야 한다고 통지받거나 하라고 요청받지 않는 한 검사도 잘 하지 않는다. 확실한 증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 번이나 검사하도록 음성이 나오고 나니 더 검사해봤자 뭐하나 싶은데, 이런 생각이 우리만의 생각이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한다.
영국의 집단면역 달성?
이런 상황을 겪으며 우리가 내린 결론은 영국은 코비드 초기에 영국 정부가 생각하는 정책으로 언급했던 "집단면역"을 결국 이렇게 달성한 것 같다는 것이다.
우리 가족처럼 개인 친목활동을 90% 이상 자제하며 2년을 보낸 가족도 결국 아이들을 통해 이렇게 걸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코비드인데, 우리처럼 친목활동을 자제하지 않았거나 하기 힘들었던 사람들은 이미 여러번 걸렸거나 걸리고도 가볍게 지나갔거나 운 좋게 무증상으로 지나갔거나 하지 않았을까 하는 게 우리의 추측이다.
확진으로 기록된 사람들은 1650만명이겠지만, 실제 감염자는 그 수를 훨씬 상회할 것이라는.. 거의 70-80%, 아니, 걸릴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걸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안타까운 것은 영국에서 그 희생의 대상이 된 것은 코비드로 목숨을 잃은 의료진이나 의료 관련 종사자들, 노인들, 요양시설에서 생활 중이던 취약 노인들과 장애인들이라는 점이다.
한국에 비해서 아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확진자만 제외하고 100% 전시간 등교하며 생활 중이니, 아이들의 복지에는 한국보다 좀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든다. 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부모들의 삶도 좀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영국에서 사람들은 코비드의 위험에는 노출되고, 걸려서 한동안 앓고 지나야 하고, 운이 나쁘면 증상이 심해질 수도 있지만, 다들 지난 2년의 시간을 통해 장기간의 락다운과 홈스쿨링이 얼마나 부모에게도 고통스러운 일이고, 아이들에게도 힘든 일이며, 아이들의 교육과 발달에도 좋지 않고, 결국 가정의 화목에도 위협이 되고(영국에서도 가정폭력이 매우 증가했다고 한다), 경제에까지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을 겪었던지라 지금의 집단면역으로 이미 갔거나 혹은 조장되고 있는 듯한 상황이 사람들의 반발을 전혀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다만, 모든 개인들이 힘겹게 락다운을 지나보내고 있었을 때 총리는 총리실에서 사람들과 생일파티를 하며 케잌을 나눠먹기까지 했다는 사실이 사람들을 분노케할 뿐(분노하는 것은 어쩌면 방구석에 나 하나일지도. 영국인들은 한국인의 피를 끓게하는 정치적 사건에도 그다지 흥분하지 않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그렇게 우리는 피곤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프고 피곤하고. 코비드가 아니더라도 어린 자녀 둘 육아로 늘 피곤하고 힘들 시간이라 이 시간이 우리에게는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다. 그건 어쩌면 다행이다.
그러나 틴틴과 나의 이런 성향으로 인해, 그렇잖아도 외국에 살며 주변에 가족이 없어서 인간관계가 협소하고 대인접촉의 기회가 적은 우리 아이들까지도 사회생활과 사회적 접촉이 제한되는 것은 아닌가 싶어 염려된다.
아이들을 위해서 우린 어떻게 해줘야 할까.
우리 자신들의 복지를 위해서도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영원한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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