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집 이웃 젠(Jen)과 그 옆옆집 니꼴(Nicole)과의 점심 식사
12월 중순 어느날, 젠 옆옆집에 사는 니꼴이 앞집의 젠과 나에게 점심을 함께 먹자고 해서 셋이 함께 Ask에서 점심을 먹었다. 처음으로 이웃들과 외식을 한 날이면서 동시에 나는 그 날이 코비드 발발 이후 친구 혹은 지인과의 첫 외식이었다. 자그마치 2년간 친구나 지인과의 외식을 단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니! 지금 그렇게 쓰면서도 놀랍다.
집 앞에서 마주치면 간단한 근황 대화만 나누며 지내던 이웃들과 외식을 하는 자리라 약간은 부담스러웠으나, 자그마치 2년 넘는 시간만에 처음으로 "소셜라이징(사교활동)"을 하는 자리라 조금 설레이기도 했다.
기분좋은 어색함을 화기애애함으로 채우며 기분좋은 점심 식사 시간을 보냈고, 약 두 시간의 대화에도 대화의 부족함을 느꼈던 우리는 이후에 반드시 또 만나자고 약속했다.
젠에게 산책을 제의하다
그리고, 이후 나는 제니퍼에게 시간 날 때 같이 산책이나 하자고 메세지를 했다. 젠과 대화를 좀 더 나누고 싶었다. 니꼴 아줌마는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의 나이의 아줌마고, 젠은 나보다 한두살 어린 미국인 친구라 같이 나눌 이야기가 많았다.
특히, 젠은 미국인이라 영어 원어민이긴 하지만, 이 동네에서는 젠도 나와 마찬가지로 주위에 자기 가족은 물론 오래된 친구 없이 외로운 신세이다 보니 외국인으로서 영국에서 살아가는 고충을 서로 잘 공감할 수 있는 이웃이다.
젠과 나는 12월 31일. 그날은 앞집의 젠과 내가 처음으로 동네 산책을 함께 한 날이었다.
동네에서 근황만 나누는 이웃으로 5년 가까이 지내다가 갑자기 둘이 같이 산책을 한다는 건 제법 큰 일이었다. 쑥쓰러움이 많은 내 성격상 동네 이웃과 산책을 하기로 한다는 것은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아파트 같은 동 주민과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고 근황을 나누고 지내다가 산책을 한다고 생각해보라. 생각만해도 어색하지 않는가!
물론 젠과 나는 그간 사적인 대화도 간간히 나누고, 약 5년을 한 골목에서 살며 서로의 사정을 서서히 알게 되고 공유하며 가까워진 점은 있으나, 그래도 이웃은 이웃이다. 거리가 있는 관계이다. 서로의 생활을 공유하되, 적당한 선에서만 공유한다.
그러나 산책을 함께 한다는 것은 사적인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고, 산책을 하는 내내 함께 대화를 한다는 것이다.
대화가 즐겁고 편하면 좋겠지만, 대화가 어색하게 되면 산책을 나섰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 어색함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내가 젠에게 산책을 하자고 제의한 것은
- 첫째, 나도 누군가 대화할 사람이 필요했고,
- 둘째, 젠에 대해 늘 호감을 갖고 있었기에 젠과 조금 친해지고 싶었고,
- 셋째, 젠은 집을 팔려고 부동산에 집을 내놓은 적이 몇번 있었기에 젠에게 그 경험에 대해 좀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 넷째, 당시는 틴틴이 새 회사로 옮기기 전이라, 곧 틴틴이 회사를 떠난다는 이야기를 젠에게 전해주고 싶기도 했다. 젠의 남편 에밀이 틴틴과 같은 팀은 아니지만 같은 회사 동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젠도 코비드 발발 이전까지 같은 회사에서 10년을 근무한 예전 동료이기도 했다.
- 다섯째, 쑥쓰러움 많고, 인간관계 확장에 매우 소극적인 성격의 내가 젠에게 산책을 하자고 먼저 제의할 수 있었던 것은 젠은 어차피 매일 산책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젠네는 릴리라는 이름의 골드 리트리버를 키우는데 릴리를 산책시키기 위해 매일 산책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차피 산책을 하는 거, 동행인이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산책을 하자고 먼저 말은 건네놓고도 젠이 Yes 라고 할지, No라고 할지 몰라 답장이 올 때까지 떨리는 시간을 보냈다. 마치 좋아하는 이성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고 답을 기다리는 20대의 청년같은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정말 오랫만에 느껴보는 기다림의 떨림을 느끼며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떨려하나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데이트를 신청하고 상대방의 응답을 기다릴 때 그러한 것처럼, 내가 괜히 데이트 신청을 했나, 거절하면 어쩌나, 데이트 시간이 어색하면 그걸 어찌 견디나 하는 그런 걱정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20대가 아니고, 내가 한 것은 이성에 대한 데이트 신청도 아니니 스스로 마음을 추스리기가 쉬웠다. 젠의 사교적인 성격 상 싫다고 할 이유가 없고, 개도 있고 한자리에 머물며 대화하는 것도 아니고 같이 걸으면서 대화를 나눌 것이므로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게 어색하다고 하더라도 나도 영국에 사는 만큼 적어도 이 정도는 영어에 노출되는 상황도 필요하니 그 정도 산책을 나도 감당해야 하고, 감당할 수 있을거라 스스로에게 용기를 줬다.
영국에서 박사를 하는 동안에도 내 인간관계는 참으로 협소했지만, 공부를 하는 중에는 그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목적은 '학위취득'이었기 때문이다. 학위를 취득하는 게 중요하지, 인간관계만 넓히고 잘 하다가 학위를 취득하지 못한다면 그것도 힘든 일이다.
그러나 학위과정이 끝난 후에는 끝난대로 난 모르는 동네에 와서 곧바로 임신을 했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고, 또 아이를 낳고, 또 아이를 키우는데 그 와중에 코비드까지 발발했으니. 나의 인간관계는 박사 때보다 더 좁아졌다. 아니, 거의 가족 외의 인간관계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의 생활을 약 5년간 지속됐다.
이런 상태였으니, 이웃 여자와 산책하기로 한 일이 내게는 정말 큰 일이었다.
젠의 답이 오기 전까지 이상한 긴장감이 나를 쪼여왔다. Yes 라고 하면 Yes 라고 하는대로 젠과 어색한 대화를 해야 할 것이 겁이 났고, No라고 하면 No라고 하는대로 불편할 것 같았다.
그렇게 혼자 발을 동동 굴리며 괜히 산책하자고 한 건 아닌가 하고 후회를 하던 중에 젠에게 답장이 왔다.
"좋지!! 같이 산책하면 정말 좋겠다. 언제가 좋아?! 난 언제언제가 좋아!"
라는 환영의 답장이.
아, 좋다는 답장이 오면 그저 마음이 편할 줄 알았는데, 막상 좋다는 대답이 오니 이젠 산책하는 동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내가 젠의 말을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나, 내 말을 젠이 못 알아들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몰려왔다.
역시, 나라는 사람은 걱정을 사서 하는 성격이다. 그 깨달음은 다시 내게 자괴감을 안겨줬다. 아흑.. 난 왜 맨날 이렇게 뭐든 걱정만 하는 거냐고.
그러나 걱정해봐야 뭐하나. 이미 물은 엎질러졌는데.
젠이랑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으니 어차피 대화소재는 이미 있는 거고, 옥스퍼드에 다니면서 늘상 해 온 일이라는 게 모르는 사람이나 어색한 사람들과 어색한(?) 대화를 어색하지 않은 듯 이어가는 것이었는데 5년이나 알아온 이웃과의 대화가 뭐 그리 큰 일인가 하고 자신을 추스렸다.
영국에 살면서 영어 한마디 할 일이 없는데, 남들은 일부러라도 회화학원을 다니며 영어를 배우려고 하는 마당에 영어 원어민과 영어 대화하는 시간을 가진다 생각하고 그냥 맘편히 그 시간에 임하기로 했다.
결국 함께 산책하기로 한 날은 12월 31일. 바로 새해 전날이었다. 짧으면 30분, 길면 40-50분쯤 이어갈 줄 알았던 그 날의 산책은 거의 2시간에 가까웠다. 나중에 젠에게 온 메세지 왈, 우리가 만천보 넘게 걸었다고 한다.
우리는 그렇게 오래 함께 걸으며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 글이 너무 길어지는 관계로 그건 다음 이야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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