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일상

[영국일상] 영국 펍에서 마시던 기네스 잔을 들고 미국까지 간 남동생 이야기

옥포동 몽실언니 2022. 2. 10. 08:00

아침에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 

문득 예전 일이 생각났다.  바야흐로 때는 나와 틴틴이 결혼을 한 2017년 3월 말.

영국에서 급하게 결혼식을 하게 되면서 한국에서 양가 가족 중 누구도 올 수 없었던 상황.  시댁 식구 중에서는 영국에 살고 있던 시누가 대표(?)로 참석하고, 우리 식구 중에서는 미국에서 직장 생활 중이던 남동생이 여자친구와 함께 와서 참석해줬다.

동생은 사회초년생이었던데다, 미국은 영국보다 휴가가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는데, 그 얼마 안 되는 휴가를 쥐어짜내어 누나 결혼식에 참석해줬다.  비행기만 장작 10시간을 넘게 타고서. 

동생은 축구 팬이다.  리버풀을 좋아한다.  

맥주도 좋아한다.  그건 당시 동생 여자친구이자 현 부인인 리나도 마찬가지.

동생은 내 결혼식 전날 영국에 와서 4박 5일의 일정을 보내고 돌아갔다.  틴틴과 나는 신혼여행은 없었지만, 결혼식 다음날부터 동생 커플과 런던에도 다녀오고, 옥스퍼드도 구경하며 관광객 모드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돌아가기 하루 전날, 동생은 공항 근처 호텔에서 마지막 밤을 묵고 돌아갔다. 

돌아가는 비행기가 아침 이른 시간이었던터라 우리 집에서 자고 새벽부터 부산을 떨기가 싫었던 것도 있고, 코딱지만한 누나 집 거실에서 여자친구와 며칠간 새우잠을 잤으니, 하룻밤이라도 여자친구를 편안한 곳에서 자게 해 주고 싶었던 것도 있었을 것이다. 

난 하루라도 동생이 함께 있기를 바랬지만, 그들의 사정을 이해 못 할 게 아니었으므로 서운한 마음을 감추고 동생 커플을 출발 하루 전날 보내줬다.

동생에게 먼길 와줘서 고맙다고 내가 쥐어줄 수 있었던 것은 겨우 렌터카 비용 정도 뿐이었다.  

그날 동생 커플과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 길에 눈물이 훅 쏟아졌던 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날 저녁, 동생은 잘 도착했다며, 근처에서 적당히 저녁을 먹고 쉴 거라고 했다.  다음날 공항에 가면 또 전화하라고 하고, 잘 쉬라고 인사를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음날, 동생이 공항에서 전화가 왔다.

잘 놀다 간다고 인사를 했다.  누나가 준 현금으로 펍에서 맥주도 마시고, 좋은 시간 보냈다고.  그리고, 지금 자기 가방에 어제 저녁 숙소 근처 펍에서 마시던 기네스 잔이 들어있다고 했다.  잔이 깨질까봐 옷에 돌돌 말았다고.  

 

"가방에 왠 기네스 잔?  펍에서 마시던 잔을 갖고 왔어??!!"

하고 깜짝 놀라 물으니, 동생이 이야기를 하는 거다.  

동생은 그날 저녁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근처 펍으로 가서 리나와 맥주를 마시는데, 내가 준 현금으로 돈을 내면서 맥주를 살 때마다 남는 돈을 바텐더에게 팁으로 줬다고 한다.  미국의 팁 문화에 익숙한 동생인데다, 미국에서 동생에 이런 저런 알바를 해 본 경험이 있는터라 바텐더에게 어떤 유대감 같은 것도 느꼈을 것이다.  

그러다가 기네스 맥주 잔이 너무 예뻐서 혹시 이 기네스 잔 이 펍에서 살 수 있냐고 바텐더에게 물었더니, 동생에게 여러 차례 팁을 받은 이 직원이 그 잔을 그냥 가져가라고 했단다. 

기분좋게 깜짝 놀란 동생은, 

"리얼리(Really)?"

하고 미국 악센트 강한 코리안 영어로 되물었고, 직원은 그렇다고, 가져가라고 했다는 이야기. 

 

신이 난 동생은 영국 와서 기네스 잔도 하나 생기고 너무 좋다며, 4박 5일의 고된 일정이었지만 신나하며 미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현재 아마존에서 잔 하나에 7파운드, 약 만원에 거래되고 있는 기네스 잔)


글을 다 쓰고 나니 이제야 갑자기 이 이야기가 떠오른 이유가 생각났다.

먼저 둘째 뚱이를 교실로 넣어주고, 첫째 잭도 데려다주고 나오면서 어린이집 교사와 나눈 인사 때문이었다!

"씨 유 레이터(See you later: 이따 봐)!"

"씨 유 레이터!"

하고 인사를 나눈 것. 

그리고 돌아서는데, 미국에서는 씨 유 레이러~ 하고 인사를 할텐데 영국에서 내가 이렇게 씨 유 레이터 하며 살고 있음을 자각한 것이다.

미국에 살고 있는 내 동생에게 누나의 영국식 영어 악센트는 웃기기 그지 없고, 나는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잘 못 하던 내 동생이 미국식 영어를 쓰며 미국에 살고 있는 게 신기하다.

어쩌다 보니 일년에 얼굴 한번 보기는 커녕, 몇 년에 한번 봐야 겨우 보는 사이가 되어 버린 동생.

잭과 뚱이를 보다 보면 항상 언니들과 내가 생각나고, 나와 내 동생이 생각난다. 

언니들도 보고 싶고, 동생도 참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