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2017-20

내가 당신보다 더 힘든 이유

옥포동 몽실언니 2019. 3. 31. 06:43
안녕하세요.  몽실언니에요. 

며칠전, 이제는 저의 일기를 써보겠노라 다짐했는데, 결국 ‘저’의 일기를 쓴다고 써도 그건 결국 ‘아이엄마'로서의 저의 일기가 되고 마네요.   제 일을 멈추고 아이의 엄마로서만 살아간지 벌써 16개월이 다 되어가다 보니.. 이것도 어쩔 수 없나 봅니다. ㅠㅠ 

제목에서의 ‘당신’은 다름아닌 제 남편 틴틴이에요.  오늘 (3월 30일)은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부부간에 말다툼이 있었던 날입니다.  

저희는 잘 싸우지 않는 편인데 이렇게 가끔 다투는 날이 있어요.  다퉜다 함은.. ‘정색’은 기본이고, ‘언성’도 다소 높아지고, 감정에 복받친 제가 ‘울음’을 터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ㅠ

싸움은 참 별일 아닌 것에서 시작되었어요.  

오늘은 새벽 5시반부터.. 아니 아이와 함께 잠을 자던 저는 5시부터 잠이 깨서 열이 펄펄 끓는 아이를 달래며.. 잠을 자지 못했고, 당연히 밤새 몇번 잠에서 깨어 아이에게 물도 먹이고, 아이에게 약도 먹이고.. 아무튼 밤새 고생을 하며 잤어요.  하지만 그 고생은 그 전날은 틴틴도 했던 것이기 때문에.. 그건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은 아이가 6시가 되기 전에 큰 울음을 터뜨리며, 저희 모두 6시도 되기 전부터 “육아일과”가 시작되었어요.

아이는 예방접종열로 열이 펄펄 끓지만, 그래서 아이가 더더욱 보채고 울어대서 저희는 아침 식사를 대충 마친 후 아침부터 (7시반) 아이를 데리고 밖을 나가 (강제)산책을 하고, 카페에서 브런치도 하고, 공원에서 아이를 놀게 하고, 놀이터도 갔다가 집에 돌아왔어요.  

아이는 낮잠을 자고, 그 시간에 틴틴은 회사에 잠시 가서 못다한 일도 좀 하고, 저는 낑낑대는 아이를 보살피다 옆에서 잠들고.. 그러다 또 아이는 큰 울음을 터뜨리며 일어나 애를 겨우 달래 저희는 다같이 (실은 벌갈아가며) 식사를 하고, 가든 잔디도 깎고, 틴틴은 5일만에 아이 목욕도 시키고.. 저는 아이를 가든으로 데리고 나와 아이와 또 놀고.. 그리고 다시 집에 들어와 아이 간식도 먹이고.. 제 운전연습을 위해 다같이 나갔다가 연습 중간에 아이가 너무 울어대서 또 밖에 걷게 하며 놀게 하고, 운전연습을 마친 후, 집에 돌아와서 아이는 또 놀다가.. 틴틴과 저는 오후 4시에 벌써 이른 저녁을 대충 해결 (무즐리) 하고... 저도 틴틴도 지쳐 거실 소파에 널부러졌는데.. 그러고도 시간은 4시 40분.. 겨우 4시 40분!!!!  

저는 1인용 소파에 지쳐 널부러진채 다른쪽 소파에 앉아있는 틴틴에게 말했어요.

“틴틴! 놀라운 사실..  이렇게 많은 것을 했는데도 아직 4시반밖에 안 됐어.  (평일의) 틴틴 퇴근시간이 되려면 아직 한시간이나 남았어.  믿어져?  우리 둘이 있는데도 이렇게나 힘든데, 난 매일 혼자서 이걸 다하고 나도.. 틴틴이 오려면 한시간이나 남았다고~”

라고 말을 건넸다가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둘이서도 이렇게 힘든 것을 내가 매일 혼자서 이렇게나 하고.. 특히 틴틴 퇴근 시간이 가까워올 때면 얼마나 시간이 안 가는지.. 할 수 있는 것을 이미 다 한 것 같고, 내 체력은 이미 고갈난 것 같은데도 퇴근시간이 아직 한시간이나 남았을 때의 막막함이 이런 기분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고, 나의 힘듬을 이해받고 싶었던 것인데.. 

틴틴은 저의 저 말이 "퇴근을 더 빨리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 나아가 “4시반에 퇴근해라”는 소리로 들렸대요. ㅠㅠ

그래서 제가 그게 말이 되냐, 가는 시간이 있으면 오는 시간이 있는 거지, 나는 그저 내가 얼마나 힘든지 이해받고 싶었고, 힘들겠다고 위로 받고 싶었던 거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서글픔 & 속상함 & 서운함에 눈물이 확 쏟아져버렸습니다.  

일년 넘게 집에서 애만 보고 있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아느냐고.. 나는 매일을 나 혼자 이렇게 버티는데, 할만큼 다하고 지쳐있는데 아직 퇴근시간이 멀었을 대의 막막함.. 그렇게 힘들게 하루하루 지낸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고, 그걸 당신이 알아주고 이해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 이야기라고..  말하면서 말이죠.

저의 의도를 알게 된 틴틴은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자기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해서 미안하다고, 몽실 니가 힘든 거 너무 잘 안다고 (정말??! --;;) 하며 사과를 했고, 그렇게 저희의 싸움은 화해의 포옹과 함께 일단락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녁.. 잭을 재우며.. 틴틴에게 더 이야기를 했어요. 

가끔 제가 틴틴에게 '나 너무 힘들다, 잠 좀 맘 편히 자고 싶다, 딱 하루만 아침 9시에 나가서 오후 5시까지 내 시간 가져보고 싶다..' 이런 이야기들 하면 틴틴이 항상 “나도!”라고 너무 천진하게 대답해서 웃음이 터졌던 적이 여러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내가 웃음이 터졌던 이유는 나는 정말 더 힘든데, 나랑 틴틴이 너무 똑같이 생각하고 있는 게 어이가 없으면서도 그걸 그렇게 순수하게 받고 대답하는 니가 귀엽고 웃겨서였다는 설명을 했지요.  

나도 당신이 정말 힘든 것을 알고 있다.  직장에서 힘들게 일하고 저녁에 집에 와서 전혀 자기 시간도 없이 집에 오기 바쁘게 애 보고, 집안일 하고.. 여유없고 힘든 거 나도 너무 이해한다.  

그러나 내가 더 힘든 건.. 단지 “그래도 직장생활 하는 게 애 보는 거보다 편하지!” 이런 차원의 것이 아니다.  

나는 풀타임으로 육아를 하면서, 물론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 너무 소중하고, 아이와 함께 있을 수 있어서 행복하기는 하지만 그 긴 시간 나 몽실 개인으로서의 존재가 지워져버렸고, 사라져버렸다고.  나도 나의 일이 있었고, 사회 내에서의 나의 역할이 있던 사람이라고.  그런 ‘내'가 없어진채 아이만을 위해 생활하는 시간이 한달, 두달, 그러다 일년 이제는 일년반이 다 되어간다고.  이건 나의 경력이 잠시 단절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이렇게 경력단절이 장기화되는 건 내 미래 경력에도 영향을 미치고, 미래 노동시장에서의 나의 가치도 하락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그걸 알면서도 그 상황을 견디고 아이를 돌보고 있다고.  나도 뭐 그저 좋기만 해서 집에서 애만 보고 있는 줄 아냐고. 

적어도 당신은 여전히 자신이 해 오던 일을 계속하고 있고, 그렇게 기존의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유지해가고 있지 않냐고.  나는 그걸 상실한 거라고.  당신보다 나는 더 많은 상실과 변화, 불안을 안고 살고 있다고.

내 말.. 이해해?  

하고 물으니..  제 손을 잡으며 다 이해한다고.. 하네요.

요즘같은 세상에는..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교육받고, 교육 받는 중에도 사회에서 동등한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거라 교육 (=주입) 받고 사회에 나오는데.. 막상 나와보면 (이미 나오기 전에도 알지만) 직장내 양성평등은 이루어지지 않은 곳이 대다수이고, 결국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부부 중 한사람이 자신의 커리어를 정도에 차이는 있더라도 어느정도 희생할 수 밖에 없는데 그게 대부분 여자가 되고 마는 것 같아요.  

저는 막상 엄마가 되어, 전업육아를 하다 보니.. “내가 이러려고 그렇게 공부했나..” 하는 생각을 얼마나 수없이 한 줄 모릅니다. ㅠㅠ 내가 이러려고 그 멍멍이고생을 하며 학위를 땄나...  내가 반드시 ‘무엇’을 하기 위해 공부를 한 건 아니고 누가 등 떠밀어서 공부를 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이렇게 살려고 그간 그렇게 살아왔나.. 하는 자기 의문이 계속 올라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오랫동안 자신이 생각해오던 자신의 삶과, 실제로 닥쳐있는 현실의 삶이 너무 다르니까요..

“나는 뭐 그저 좋기만 해서 하루종일 애만 보고 있는 줄 알아?”

제가 울면서 틴틴에게 했던 말 중 하나였어요.  그 말을 하면서 사실 잭에게는 조금 미안했어요.  

"잭이랑 있는 게 좋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저 좋기만 한 건 아니라고..” 

라고 얼른 이야기를 수정했지요.  그게 그거일 수는 있겠지만.. ㅠ

틴틴은 서러움에 복받쳐 계속 우는 저를 꼬옥 안아주며 계속 저를 달랬어요. 

“응.. 미안해.  내가 미안해.. 선우야..”

뭐라고?!  선우는 저희 잭의 본명이에요.  아우.. 뭔가.. 저를 달래는 분위기가.. 잭을 달랠 때와 비슷하다 했더니 (꼭 안아주며 ‘응, 미안해~’ 라고 잭에게 말 할 때의 딱 그 억양과 말투가 있거든요) 아니나다를까 자기도 모르게 또 저를 선우라고 부르네요.  어휴!  결국 둘 다 웃음이 터지고 말았죠.  이 대목에서 저는 틴틴에게 협상을 제안했습니다.

“그래, 미안하면 5월에 휴가를 5일 쓰자.  평일 한주 휴가를 써서 그 중 딱 4일만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혼자서 애를 봐.  나머지 하루는 내가 봐줄게.”

“넌 뭐하게?”

“내가 돈 벌게.  내가 그 때 번역일 해야 하는 거 있으니, 그 때 내가 나가서 하루종일 일 해서 틴틴 일당 이상 벌게.  그럼 되잖아~  4일만 연속으로 한번 해봐.  5일째는 내가 한다니까~”

“아니, 몽실.. 그건 좀... 다시 생각해봐..  그렇게 쉽게 결정할 일 아니잖아~~~?” 

하며 저를 설득하려 하네요.  말만 들어도 겁이 났나 봅니다. 

아무튼.. 그렇게 저희 싸움은 종결됐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 틴틴이 옆에 와서 “뭐 해?” 라고 하며 제 컴퓨터 화면에 제가 쓰고 있는 글의 제목과 내용을 쓰윽 보더니, “내가 잘못했어~ 이제 다 이해해~ 뭘 또 그걸 적고 그래~~” 하네요. 

“난 우리의 싸운 이야기 자체보다.. 이렇게 전업육아맘이 힘든 이유, 그 속사정을 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거야.  다른 엄마들도 비슷비슷한 처지, 비슷비슷한 마음일테니까.. “

라고 하니 틴틴이 제 어깨를 툭툭 치며.. 자기는 먼저 자겠다고.. 내일을 위해 자겠다고 하네요.  저녁 9시반.  저희 부부의 생활이 이렇습니다.  다음날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둘 다.. 이렇게 자야해요.  어제는 이보다 더 일찍 잤는데도 오늘 이렇게 힘들었는데..ㅠㅠ 주말이어도 휴식이 없네요.  열도 열이지만 애 감기는 도대체 언제 떨어질런지.. (아직도 콧물 줄줄, 기침도 콜록콜록이거든요 ㅠㅠ)

전업육아 중인 어머님들, 아버님들.. 모두모두 힘내세요.  

저희는 조만간 아이를 어딘가에 맡기는 것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언제, 어떤식으로, 어디에... 가 관건이지요.  그 이야기도 차차 해 나갈게요.  모두 좋은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