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2017-20

[영국육아] 어린이집 '적응기간'을 시작하다

옥포동 몽실언니 2019. 4. 26. 05:57


영국에서는 소규모 가정 어린이집 (childminder) 이든, 기관 어린이집 (nursery) 이든, 처음 시작하기 전에 적응기간을 거친다.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점진적으로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게끔 하는 것으로, 처음에는 1시간을 엄마와 함께 어린이집에 머물고, 그 다음에는 2시간, 마지막에는 4시간 아이 혼자 머문 후, 본격적인 등원을 시작한다.  만약 이 기간동안 아이가 너무 심하게 울거나 적응을 너무 힘들어 할 경우 정착기간을 좀 더 늘려주기도 한다. 

우리 아이가 가기로 한 St Mary’s 어린이집도 전형적으로 엄마와 함께 1시간, 아이 혼자 2시간, 그리고 4시간을 지낸 후에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 적응기간이 바로 이번주 화요일에 시작되어 내일 금요일에 끝이 난다. 

화요일에는 아이와 함께 10시에 어린이집에 가서 11시까지 함께 있었다.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고, 우리 아이 발달사항, 특이사항에 대한 간략한 내용을 기입하는 동안 우리 아이는 ‘key carer’라 부르는 아이의 담당선생님과 함께 상호작용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는 당연히 내 손만 잡고 끌고 다니려 하는 통에 정신없이 서류를 작성했고, 그렇게 한시간을 어린이집에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는 아이가 배가 고플까봐 어린이집의 다이닝룸에서 아이에게 바나나를 먹였다.  원래 예정된 11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우리 아이 키 케어러인 Coral은 우리와 함께 하며 계속해서 아이에게 말을 걸어줬다.  본인의 담당아이가 두명 더 있는데 이 애들이 이미 모두 낮잠에 들어 선생님이 시간이 여유롭다고 했다.

그렇게 첫날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고, 어제는 두번째 날로, 어린이집에 두시간 (2.30-4.30) 머무는 날이다.  엄마는 아이를 떨궈주기만 하고 (drop off) 돌아갔다가 두시간 뒤에 아이를 픽업하면 된다.  엄마가 원한다면 어린이집 안에 family room 이나 스탭 룸에 머물며 아이를 슬쩍 슬쩍 살피거나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할까 생각했는데, 내가 그리 하면 뭐하나, 마음만 더 아프고 불편할 뿐일 거란 생각에 그냥 드랍 오프하고 두시간 후 픽업하겠노라 했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일 할 시간이 없어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인데, 이 두시간이라도 내 시간으로 만드는 게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아이를 중간에 데리고 나올 게 아리나면 어린이집에 두시간을 머무나 안 머무나 아이에게는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이니까.  

아이를 놓고 올 때는 많이들 눈물을 흘린다는데, 나는 무슨 일인지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대신 아이를 데려다 주러 어린이집을 갔을 때 기어를 파킹으로 바꾸지도 않고 벨트를 풀려해서 차가 잠시 뒤뚱~해서 깜짝 놀랐다.  내가 정신이 나갔구나 싶었다. 

아이를 놓고 나올 때도 아이 울음을 뒤로 하고 나오자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심장도 터질 것만 같았다.  우리 아이의 우렁찬 울음은 건물 밖까지 다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머리도 멍하고, 그 자리에 더 있다가는 아이 울음때문에 나만 더 힘들 것 같아서 얼른 차를 빼서 나와버렸다. 

그렇게 집에 와서 허겁지겁  얼른 중요한 행정일을 몇가지 처리하고, 어린이집으로 다시 아이를 데리러 갈 채비를 하고 있는데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오후 4시.  아이가 너무 울고 불고 난리가 나서 전화가 온 게 아닌가,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여기는 St Mary’s 어린이집이에요.”
“네! 선우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요?
“선우는 아주 잘 하고 있어요.  첫 세틀링 치고 아주 잘 하고 있어요.  건포도랑 빵도 조금 먹었구요.  아이가 잘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아, 그래요? 정말 다행이에요! 마음이 놓이네요!”
"우리가 준 샘플 기저귀를 사용해봤나요?  선우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데, 기저귀에 알러지 반응이나 이런 게 있지는 않았나 해서요.”
“네, 오늘 아침에 사용해봤는데, 아무 이상 없었어요.”
“알았어요.  그럼 그렇게 알고 우리 기저귀를 사용할게요.”
“네, 저도 지금 막 아이를 데리러 집을 나서려던 참이에요.  좀 있다 뵐게요!”

그렇게 전화를 끊고, 캐임브리지에 있는 J에게 아이 두고 온 이야기를 잠시 나눈 후 얼른 차를 몰고 어린이집으로 달려갔다. 

어린이집으로 들어가는데, 아이들이 모두 가든에서 놀고 있었다.  바람이 많이 불고 찬데, 내가 가방에 넣어서 보낸 쟈켓을 입혔으려나 걱정이 되었다.  가든을 휘 둘러보는데, 가방에 넣어보낸 노란색 쟈켓을 입은 아이가 안 보인다.  우리 아이만 너무 울어서 밖에 못 나온 건 아니려나 걱정이 됐다.

얼른 어린이집 문을 열고 들어가서 실내공간을 둘러보는데, 이런, 선우가 안 보였다.  응..? 뭐지..?  어디에 있는 거지?  가든으로 눈을 돌렸는데, 앗.. 이렇게 추운데 아이는 쟈켓도 없이 내가 보낸 실내용 차림 그대로 밖에서 한 선생님에게 안겨 있다.

다급히 가든 문을 열고 가든으로 달려갔다.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고, 선생님은 바로 아이의 시선을 나 쪽으로 돌려줬다.  선우는 눈물 범벅이었다.  얼굴도 꽁공 얼어있다.  얼른 아이를 넘겨받아 안았다.  아이는 너무 울어서 흐흐흑 하며 어깨를 들썩 뜰썩이며 울고 있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두시간 내내 아이를 안고 달래주고 있었을 선생님들의 수고를 생각하니 울어서도 안 될 것 같아 눈물을 꾹 참았다. 

“아.. 우리 선우 많이 울었구나.. ㅠㅠ 선우야, 많이 울었어? 괜찮아. 엄마 왔잖아.  엄마야.  많이 울었구나.  우리 선우 춥겠다..”
“괜찮아요.  많이 울긴 했어요.  대부분 울긴 했는데, 그래도 이따금 다른 데 정신이 팔리기도 했어요.  그런데 엄마가 나간 방향을 알아서 그런지, 계속해서 차가 들어오는 입구 골목을 가리치며 엄마 엄마 하더라구요.  가끔 정신이 다른 데 팔려서 울음을 그쳤다가도 이내 엄마가 갔다는 게 생각이 났는지 또 골목을 가리키며 엄마 엄마 하고 울었구요.  티 타임에 티를 많이 하지도 않았어요 (영국에서는 간식시간을 티타임이라 부르는데, 간식을 많이 안 먹은 것을 티를 많이 먹지 않았다고 표현하더라).”
“아 그래요?”
“그래도 내내 안겨있었어요.  안아주면 그래도 잠시 잠시라도 그치긴 했어요.  다들 원래 이런 과정을 거쳐요.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요.”

선우를 안고 있던 선생님이 나를 안심시켜주려고 애를 썼다. 

“너무 걱정 마세요.  저희가 계속 안아줬고, 엄마 곧 올거라고 계속 이야기해줬어요.”
“고마워요.  사실 저희가 집에서는 모두 한국어만 써서, 사실 아이가 영어 환경에 노출되어서 그것도 좀 스트레스였을 거예요.”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럼 아이에게 자주 쓰는 표현들을 영어발음으로 적어서 주면 저희가 아이에게 그렇게 말 해 줄 수 있어요.  원한다면 부담 갖지 말고 한국어-영어 대치되는 말들을 적어서 보내주세요.  저희가 그걸 써서 아이에게 좀 더 친숙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으니까요. 가령, 손 씻자, 밥 먹자, 낮잠 자자, 이런 것들을 한국어로 뭐라고 하는지 적어보내주세요.
“네, 그렇게 할게요.  고마워요."

한국말을 영어로 적어주면 그렇게 말을 해 준다니.. 그건 어린이집을 처음 왔을 때 우리에게 시설 소개를 해줬던 리차드도 말해줬던 내용이었다.  이탈리아나 스페인 아이들도 가끔 있는데, 그럴 때 그렇게 해줬다고.  문제 없다고.  

그러나.. 한국어는.. 스페인어나 이탈리아어와는 달리 영어 알파벳으로 적었을 때 선생님들이 여전히 발음하기 많이 힘들텐데.. 그걸 어떻게 해보겠다는 것인지..  아이 돌보며 정신 없는 와중에 얼만큼 그렇게 해 줄 수 있을지, 또 영어와 영국인의 서툰 한국어가 섞여 나오게 된면 아이가 더 혼란스럽기만 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해서 말이야 고맙고, 노력도 고맙지만 우린 아무래도 그렇게 해달라고 요청하지 않을 것 같다.

“아이들이 밖에 얼마나 오랫동안 나와 있었어요?  아이 가방에 아이 쟈켓이 있었는데, 쟈켓을 넣어뒀다고 코랄 (담당선생님)에게 이야기해뒀는데 아이가 쟈켓을 입지 않아 많이 추웠을 것 같아요."
“아 그래요?  아이 쟈켓이 있는지 몰랐어요.  그렇게 오래 나와있지 않았어요.”
“네..  그렇다면 다행이구요.  선우야, 많이 힘들었어?  선생님들도 아이가 내내 울고 안아주느라 힘들었겠어요.”
“괜찮아요.  이게 우리 일인 걸요. 
“그나저나, 선생님 이름은 뭐예요? 저는 몽실입니다.”
“저는 레이첼이에요.  코랄의 버디 케어러죠.”
“네, 고마워요, 레이첼.  오늘 정말 고생 많았어요.”

이곳에서는 담당선생님을 키 케어러 (key carer) 라 부르고, 각 키 케어러마다 세 명의 아이를 돌본다.  각 키 케어러는 버디 케어러 (buddy carer)가 있어서, 키 케어러가 본인 담당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상황일 때 버디 케어러가 아이를 맡아준다.  우리가 갔을 때 우리 키 케어러인 코랄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 기저귀를 갈러 가야 해서 선우를 버디 선생님께 맡겨놓고 갔다.  

선우를 데리고 방으로 다시 가니 기저귀 교체실에 코랄 선생님이 있었다.  인사를 건넸다.  오늘 고생 많았다고.  아이 쟈켓이 가방에 있다고 내가 말을 했었는데, 아이가 옷을 안 입고 있어서 좀 추웠을 것 같다는 말을 잊지 않고 했다.  사실 아이 옷이 있다고 내가 말까지 했는데, 아이 옷을 입혀주지 않아서 좀 화가 났었다. ㅠㅠ 다른 아이들은 모두 두꺼운 겨울 코트를 입고 밖에서 놀고 있는데 우리 선우만 티셔츠에 조끼 하나 입을 차림으로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래도 이야기 할 건 이야기해야 한다 싶어서 선생님에게 그 말은 했다.  안 하고 돌아오면 후회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코랄은 “아, 가방에 쟈켓 있는지 몰랐어요.” 라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다.  그래.. 애들여럿 돌보는데 정신이 있었겠나 싶었다.  몰랐으니 안 입혔지 알았으면 입혔을 건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전혀 미안해하는 기색이나 아이가 추웠을 것을 걱정하는 기색은 없는 게 조금은 서운했지만.. 그건 뭐.. 그러려니 했다.  영국에서는 아이들을 추위에 내 놓는 것을 한국에서만큼 민감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는 첫 세틀링 치고 잘 했어요.  많이 울었지만 뭘 먹기도 좀 했구요.  똥도 싸서 기저귀를 갈았는데, 애가 화가 난 게 (upset) 똥 때문이었는지, 엄마가 없어서 그런 건지 그건 저희도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그래서 기저귀도 한번 갈았어요.”
“기저귀 갈 때 괜찮았어요?  (우리가 항상 고생하기 때문에)”
“그게 좀 힘들었어요.  아이가 내가 기저귀 갈 수 있게 해주지 않더라구요.  계속 몸을 뒤틀고 일어나려고 하고.  그래도 어떻게든 갈긴 갈았어요.”
“그쵸?  힘들죠? 우리도 항상 그것때문에 고생을 많이 해요.”
“괜찮아요.  나도 우리 아들 기저귀 갈 때 그렇게 고생했어요. 하하.”
“고마워요.  아무튼, 오늘 고마웠어요.  금요일에 뵐게요!”
“네, 그래요.  선우, 금요일에 보자!"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나는 아이를 데리고 나왔고, 아이는 울음은 이미 그쳤지만 카시트에 앉았을 때까지도 어깨는 들썩들썩이며 흑흑 거렸다.  너무 오래 울어서 진정이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아이가 좋아하는 과일 팩쥬스를 가방에 챙겨놓고 너무 정신이 없었던 나머지 가방을 집에 둔 채로 나왔다. ㅠㅠ 아이에게 얼른 집에 가서 맛있는 거 먹고 엄마랑 따뜻한 물에 목욕하자고 달래가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즐겁게 놀았다.  틴틴도 회사에서 15분쯤 일찍 퇴근했다.  아이가 걱정됐던 모양이었다.  오늘 처음으로 엄마와 갑자기 떨어져서 두시간이나 울며 보냈을 아이를 생각하니 나도 틴틴도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저녁시간 내내 아이를 더 많이 안아주고, 아이에게 더 잘 해 주기 위해 노력했다.  

오늘도 아이에게 내일 또 어린이집 가서 친구들과 놀자고 몇번이나 얘기한다고 했는데, 아이가 내일 일어날 일을 짐작이나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어제 저녁에도, 오늘 낮잠잘 때도, 오늘 저녁에도.. 아이가 자다가 중간에 잠이 살짝 깨면 “엄마~~ 엄마~~” 하며 흐느끼며 자꾸만 엄마를 찾았다.  어제 갑작스런 엄마와의 분리가 아이에게 꽤 큰 충격으로 다가가긴 한 모양이다. ㅠㅠ 

내일은 어린이집 적응기간의 마지막날.  총 4시간이나 보내는 날이다.  오전 10시에서 오후 2시.  11시 반이 점심시간이니, 가서 좀 놀다가 (=울다가) 점심 대충 먹고 (얼마나 먹으려나?ㅠ) 낮잠을 조금 자겠지..  그리고 일어나서 놀고 있으면 내가 데리러 가는 일정이다.  과연.. 아이가 낮잠을 잘 수 있을까..  유모차, 내 등, 아니면 차에서만 자던 아이가 낯선 공간에서 낯선이의 도움으로 낮잠을 잘 수 있을까..  당연히 너무 졸리면 어떻게든 자겠지만, 잠오는 동안 잠투정을 얼마나 심하게 해댈까 ㅠㅠ  모두들 아이들이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곧 적응한다고 말하긴 하지만, 결국에 적응한다고 해서 적응하기까지의 그 과정의 어려움이 어려움이 아닌 것은 아니다.  어떻게든 적응하겠지만.. 그 시간을 견뎌보내는 게 쉽지만은 않으리라.  내일 보낼 일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콩닥거린다.  그러면서도 그 시간에 내 일을 할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하니 그 시간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ㅠㅠ 

미안해, 선우야. ㅠㅠ 엄마가 너만 돌보지 못하고 일도 해야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