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락다운 7주차.
이렇게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이제 저도 남편도 아이도 점점 적응이 되는 듯합니다.
남편은 끊임없는 방해 속에 일을 (제대로 못) 하는 것에 적응하고 있고, 저는 두 아이를 동시에 돌보는 나름의 요령이 조금씩 생기고 있고, 잭은 동생이 함께 지내는 것에 적응하는 듯하고, 뚱이는 뚱이대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가고 있는 것 같아요.
둘째가 태어나면서 주 5일을 차일드마인더 (가정어린이집)에 가서 놀던 아이가 집에만 있어야 해서 이 아이가 지루해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아이는 집의 한정된 놀이공간 (사실, 아이가 다니던 차일드마인더의 집은 저희 집보다 더 좁았어요), 한정된 놀잇감 속에서도 혼자서 이것 저것 놀이를 만들어내며 노는 기발함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래서 오늘은 요즘 저희 아이가 집에서 하고 노는 놀이를 소개할까 합니다. 사실 '놀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하지만, 그걸로 아이가 즐거우면 그게 놀이겠지요~ ^^
꽈당, 벌떡 놀이
요즘 저희 아이가 가장 오랫동안 즐기고 있는 놀이는 "꽈당, 벌떡" 놀이입니다. 그건 바로 아래와 같이 "꽈당" 하고 말하면서 바닥에 벌러덩 누워버리는 것이지요. 아이 옆에 자동차 장난감들이 모두 옆으로 누워있는 게 보이시나요? 장난감 자동차를 "꽈당!", "꽈당", "꽈당" 하며 한대씩 차례로 눕힌 후 자기도 "꽈당"하며 누워버려요.
그럼, 제가 "어, 누가 선우 자동차를 구해줘야 하나? 선우까지 꽈당해서 선우가 구해줄 수가 없네~ 엄마가 구해줘야겠다!" 하고 다가가서 누워있는 자동차들을 한대씩 바로 세우면 아이는 이내 "벌떡!"하고 소리치며 일어나서 제가 일으켜세운 자동차들을 다시 "꽈당!", "꽈당!", "꽈당!'하며 눕힌 후 자기도 "꽈당!" 하고 바닥에 누워요. 그런데 웃긴 건, 이게 뭐라고 아이는 이게 그리 즐겁다고 저렇게 웃습니다. ㅋㅋ 매번 다가가서 "엄마가 구해줘야겠다!" 하고 허리를 숙여 자동차들을 세워주는 게 너무 귀찮지만, 아이가 저리 웃으니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정 하기 싫을 때는 저도 "엄마도 꽈당!" 하고 눕기도 합니다. 그럼 아이가 얼른 일어나 달려와서 저를 일으켜세워요. "엄마, 벌떡 (하세요)!" 하면서 말이죠.
화초 관리 (=물놀이)
아이는 집에 있는 화분들도 관리합니다. ㅋ 관리랄 것도 없고, 가끔 물뿌리개로 물을 주고, 고추나무에 열린 고추를 따는 정도예요. 최근 격리생활이 길어지면서 작년에 사 둔 토마토 씨앗도 뿌렸는데, 그 많던 씨앗 중 4개만 발아에 성공해서 토마토도 키우고 있어요. 아래 사진은 고추 화분에 물을 주는 잭의 모습입니다. 고추화분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아이 손에는 물뿌리개가 쥐어져 있어요.
아이 손에 물뿌리개가 있는데 화분에 물만 주고 끝날 수는 없겠죠? 아이는 갑자기 그 물뿌리개를 들고 자기 발바닥에 물을 뿌리기 시작했어요. 부엌바닥 청소를 잘 안 했더니 아이 발바닥에 먼지들이 좀 묻어있었는데, 그걸 물을 뿌려 닦아내기 시작하는 잭. --;;;; 미안.. 엄마가 청소 더 열심히 할게..
발바닥에 물을 뿌려보니 재미가 있었는지, 급기야 다리에까지 마구마구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와중에 수건 하나를 받쳐 물을 닦아 내면서 물을 뿌리는 아이. 뭐가 묻고 이런 것에 약간의 결벽증이 있는 아이라 그런가.. 뿌리고 닦고, 뿌리고 닦고를 반복하고 놀더니..
갑자기 그 물뿌리개를 들고 부엌 라디에이터 벨브에 뿌려대기 시작합니다. 뜨아!! 안돼! 사실 안 될 건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위험을 생각하여 아이의 물뿌리기 놀이를 중단시켰습니다. 아래 사진에서도 저희 아이는 물을 뿌리면서 수건으로 흐르는 물을 받치고 있는.. 특이하죠? ㅋ
얼마전에는 아이가 지저분한 손을 씻으러 화장실 가기를 거부해서 부엌의 작은 볼에 손을 씻겨줬어요. 손을 씻으면 핸드솝이 거품을 일으키는 게 재밌었던 아이는 물뿌리개에 비누를 넣어달라고 요청해서 아까운 물비누를 물뿌리개에 넣어줬어요. 그랬더니 물뿌리개에서 거품이 나오는 것을 보며 아이가 한참 신나게 재밌게 놀았어요.
식물 키우기
최근 영국은 격리생활이 시작되면서 온갖 화초와 작물 씨앗들이 바닥나기 시작했어요. 다들 집에서 뭐라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주문이 급증하면서 인터넷으로 씨앗과 화초, 흙을 구하는 게 예전보다 많이 힘들어진 거죠.
저희도 새로이 씨앗을 구하려다가 작년에 사뒀던 씨앗이 있어서 일단 그것부터 심었습니다. 방울토마토와 상추였어요. 마침내 얼마전 심은 토마토 모종은 아래와 같이 싹이 트기 시작했고, 지금은 키가 제법 더 자라서 10센티미터는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상추를 더 기대했는데, 상추도 몇개 싹을 잘 틔우고 자라고 있었으나 저희의 관리부실, 플러스 잭의 참여 (식물에 대한 관심이 새싹 파괴로 이어지는 ㅠ)로 상추는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쑥쑥자라라, 토마토야~ 매일 자라나는 모종을 바라보는 재미도 솔솔합니다. 잭과 함께 씨앗을 심은 틴틴은 잘 자라는 토마토가 너무 기특하고 이쁘다며 저희 중에서 가장 좋아하고 있어요.
빨래 널기
빨래널기는 예전부터 죽 해 오던 놀이 (?) 입니다. 사실 아이에게는 놀이인데, 저희 입장에서는 저희가 빨래를 너는 것을 방해하는 것인지라 빨래 놀이는 즐거움과 갈등이 함께 불러일으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빨래 널기를 오랫동안 함께 해 온 저희 잭이 요즘 빨래 너는 실력이 한층 좋아졌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부엌 서랍에 있던 빨래집개를 꺼내오더니 빨래집개를 이용해서 빨래를 널기까지 하는 것 아니겠어요! 저희가 빨래집개를 꺼내서 쓴 것은 작년 여름 잠깐이었던 것 같은데, 아이는 어떻게 집개의 용도를 기억하고 자그마치 빨래집개를 8개나 이용해서 수건을 걸어두었습니다. 아이들이 이렇게 해 놓은 것을 보면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납니다. 빨래는 어떻게든 마르면 되는 거니까 아이가 널어놓은 수건은 저 상태로 건조되었습니다. ㅋ
가드닝
영국생활에서 가드닝이 빠질 수 없죠? 하우스 (주택)에 살아보니, 가드닝은 정말 고된 집안일 중 하나예요. 즐거움도 있지만 번거롭고 힘든 일이기도 하죠. 한국에서 바닥 물걸레 청소가 힘든 일이라면, 영국에서는 카펫생활 중에 먼지관리와 가드닝이 가장 힘든 집안일이라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특히, 어린 아이까지 있으면 가드닝이 더 힘든 일이에요. 아이는 계속 함께 하고 싶어하는데, 가드닝 툴이라는 것들이 대부분 위험한 것들이기 때문이죠. 아래 사진에서는 아빠를 따라서 작은 가위로 현관문 옆 나무를 손질하는 잭입니다.
틴틴은 아이에게 날카롭고 위험한 것들은 절대 바닥에 던지면서 내려놓지 않고 바닥에 조심스레 내려놓는 것을 가르쳤고, 날카로운 도구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때 손잡이 핸들쪽이 상대방을 향하게 전해줘야 하는 것도 가르쳤어요. 아이는 놀랍게도 이 모든 규칙을 계속해서 잘 지키고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가드닝에 참여를 못 하게 하기 때문이지요.
플레이 도 (Play Doh)
아이 어린이집이 문을 닫으면서 갑자기 석달된 아기와 두돌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를 함께 돌봐야 하면서 저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이것 저것 장난감을 구입한 것입니다... 라고 쓰고 생각해보니 새로 구입한 장난감이 별로 없네요. ㅋㅋ 이것 저것 사려고 고민만 하다가 결국은 몇개밖에 사지 않았는데, 그 중 가장 잘 쓰고 있는 것이 플레이 도예요. 이전에는 집에 있는 밀가루로 반죽놀이를 했는데, 영국 코로나 사태 이후 밀가루가 금가루가 되면서 밀가루 구하기가 상당히 힘들어졌어요. 격리 7주쯤 되어가는 요즘에서야 밀가루가 조금 시중에 풀리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러다 보니 저희는 밀가루 소비가 적은 집임에도 불구하고 비상시를 위해 밀가루 두어팩은 갖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아이에게 밀가루 놀이를 해 주지 못했어요. 대신 Argos에서 플레이 도를 사서 아이에게 주었습니다. 한 박스에 16개나 들어있는 플레이도를 자그마치 3박스나 샀어요. 한번에 2개씩만 꺼내 주면서 놀다 보니 격리생활 두달이 다가오자 한박스를 모두 소진했고, 이제 두 박스가 더 남아있습니다. 한번 배송받기 위한 배송비도 있는데다가 2박스를 사면 2파운드가 할인이 되길래 마음 같아서는 4박스를 사고 싶었으나 (그래서 4파운드 할인 받으려고), 개인 당 최대 구매 가능 갯수가 3박스로 한정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3박스를 주문했지요. 한박스를 다 쓰고 나서도 아직 2박스가 더 남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합니다.
저희 아이는 아직 어리다 보니 플레이 도로 뭘 만들거나 하는 수준은 못 됩니다. 주물럭거리며 만지고, 저에게 플레이 도로 구슬이나 공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는 정도예요. 뭔가를 만들어주면 재미있어 하는 정도.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부엌에 있는 온갖 도구들을 꺼내오더니 자기만의 놀이를 시작했습니다. 바로 아래처럼 말이죠.
사실 이것도 아이 입장에서나 놀이이지, 저로서는 대략난감.. 처치곤란입니다. 아래는 감자 으깨는 도구로 플레이 도를 꾸욱 누르고 있는 아이.
아이의 놀이 후, 와인오프너는 아래와 같은 모습으로 변신하였습니다.
어제는 제 목걸이에 달린 흰 구슬들을 모두 달라고 해서 줬더니 (안 쓴지 10년이 되어가고 있는 목걸이), 그 목설이의 구슬들을 자기 플레이도에 박아 넣었어요. ㅋ
의자 조립 및 해체
저희 아이는 어릴 때부터 공구놀이와 공구를 갖고 뭔가를 조립하고 해체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작년 여름 저희 부모님께서 저희 집에 와 계시면서 아이가 공구를 갖고 노는 것을 보신 저희 엄마는 너무 위험하다며 아이 손이 안 닿는 곳에 치워두라 하셔서 한동안 공구는 창고에 보관 중이었어요. 그래서 한참동안 공구를 갖고 놀지 못했던 저희 아이는 얼마전 창고에서 틴틴이 가드닝 툴을 꺼낼 때 그 옆에 있는 공구를 발견, 제발 제발 갖고 놀게 해달라고 떼를 쓰는 통에 그나마 안전하게 갖고 놀 수 있을 만한 것들로 몇 개를 꺼내줬습니다. 아이는 오랫만에 재회한 공구들을 얼마나 좋아하던지. 그리고는 집에 있던 이케아 의자를 분해하고 조립하기를 여러번 반복하고 있어요. 저희가 생각하는 저희 아이 최고의 장난감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의자랍니다. 이케아에서 판매하는 실제 아이들용 의자인데, 조립도 해체도 쉽고, 사용하는 툴도 비교적 안전한 것인지라 아이들이 조립하고 분리하기에도 큰 어려움이 없거든요. 게다가 가격도 12파운드 (1만8천원) 로 비교적 저렴하니, 의자로도 유용한데, 아이가 갖고 놀기에도 너무나 좋으니 아이에게도, 저희에게도 효자템입니다.
그 외
아이는 닥치는대로, 자기 마음 내키는대로 뭔가를 합니다. 그 뭔가를 위해 엄마나 아빠를 적극 이용하기도 하구요. 그러다보면 집이 엉망진창이 되는 건 정말 시간문제. 아니, 단 1분은 커녕 30초도 걸리지 않습니다. 저희 소원은.. 애들이 좀 커서 깨끗하고 잘 정돈된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입니다. 아직은 요원한 일입니다.
야외 산책
대부분의 시간, 특히 평일에는 매일 이렇게 집에서 놀지만 주말이 되면 날씨가 좋을 때 짧은 산택도 나갑니다. 사람이 적은 곳으로. 그런 곳에는 동물이 많은 법이죠. ㅋ 아래 사진은 잭이 Wittenham Clumps에서 소를 보고 좋아서 자꾸만 가까이 가려 하는 통에 틴틴이 아이를 붙잡고 있는 사진. 소들 입장에서는 잭처럼 작은 아이는 아주 만만해보여서 자칫 잘못했다가는 소에게 공격을 당할 수도 있다며,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합니다.
격리 생활 7주 동안 저희 아이가 하고 지낸 놀이들을 소개해드렸어요. 사진으로 남아있는 것들을 추려서 올려본 것인데, 놀이라고 적고 보니 대부분 아이가 뭔가를 어지럽히고, 저희와 집안일을 함께 하는 것들입니다.
아직 어린 둘째 때문에, 또 코로나로 인해 외출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이 불가능해지면서 아이에게 특별히 무엇인가를 해 주지 못해 미안한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와 "생활"을 함께 하는 것 그 자체가 아주 좋고 중요하다고 하신 저희 엄마의 말씀을 생각하며 현재의 시간을 즐기고 있습니다. 다만, 이런 시간이 장기화된다면 (거의 장기화가 확실한 것 같은데 ㅠㅠ) 앞으로 어떻게 생활을 이어나갈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좀 해봐야겠죠? 아이를 키운다는 게, 부모가 된다는 게, 참 쉽지 않은 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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