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in 2022

[육아단상] 아이들에게 받는 사랑과 치유

옥포동 몽실언니 2022. 6. 13. 08:00

오늘은 요즘 아이들과 온전히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아이들에게 내가 받고 있는 사랑과 치유에 대한 글을 써볼까 한다. 

 

전업주부로의 전환과정에서 얻은 소득: 육아에 여유가 생겼다!

요즘 아이들을 혼자서 돌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나와 아이들 간에 관계에 변화와 발전이 좀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아이들과 서로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래서 아이들을 집중적으로 훈육해야 하는 시간이 있었다. 아이들도 나와 있는 시간에 적응이 필요했다.  갑자기 어린이집에 가지 않고 엄마와 온종일 있으니 앞뒤 가리지 않고 그저 떼만 쓰려 하던 아이들.  특히, 첫째 잭의 떼와 고집, 말썽이 심했다. 

아이들의 그런 모습에 나도 적잖게 당황했다. 이건 뭐지, 도대체 아이들이 왜 이러지, 난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하지.  이런 상태로 내가 어떻게 아이들을 돌볼 수 있지.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정해진 규칙과 일과 속에서 생활하다가 갑자기 자유로운 날이 생기니 고삐 풀린 망아지들마냥 신이 났던 것 같다. 신이 나는 건 괜찮은데 고삐 다 풀고 제 멋대로 하는 건 안 되지 않는가.  

그리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내 말을 듣게 해야 한다. 

첫 주, 둘째 주는 집중적인 훈육의 주간이었다. 

아이들과 나는 첫번째 전업육아날 서로에게 적응하는 시간을 가졌다.  서로가 서로에게 적응하고,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 늘 함께 해온 부모고 자식이라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가만보니 그게 아니었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에서는 서로가 서로 낯설었고, 그래서 우린 서로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 필요했다.

어느 정도의 적응기가 지나가 나도 한결 수월해졌다. 여전히 팔다리는 힘들지만 심적으로 부담이 줄었다. 여전히 몸은 힘들지만, 아이들을 다루는 요령이 느는 것 같아 자신감도 함께 늘었다.  아이들을 다룰 때의 여유도 생겼다.  여유가 생기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주는 사랑

내 일도 다 정리가 됐고, 중요한 행정일도 몇 가지는 처리했고, 이사 준비와 큰 아이 잭 학교 입학 준비만 남은 상태.  날씨는 좋고, 어린이집을 줄이면서 이제야 겨우 경제적으로도 숨통이 트였다.  여름이 다가오니 아이들 감기 횟수도 잦아들었다. 

그런 덕분에 이제야 내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지, 요즘 들어서야 아이들이 내게 주는 사랑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끼고 있다. 나를 보고 활짝 웃어주고, 내 품에 안겨 행복해하고, 내 손을 잡고 좋아하는 아이들. 

서로 눈맞추고 웃는 시간이 늘어나서 그런가.  아이들을 바라보며 충만감을 느낄 때가 많아졌다. 

이전에는 아이들이 이쁘면서도, 동시에 이쁜 우리 아이들을 뒤로 하고 어떻게든 내 일을 시간 안에 마쳐야한다는 부담이 많았는데, 그 부담이 사라진 게 내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정말 큰 요인이 되는 것 같기는 하다.  그런 점을 생각했을 때 당분간 전업주부 생활을 하는 것은 제법 괜찮은 생각 같다.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는다면 경제적인 쪼달림도 훨씬 나아진다.  공짜로 얻어지는 건 아니다. 그걸 위해서는 내 육아 노동을 투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육아는 그저 노동만으로 이뤄지지 않고 그 과정이 끊임없는 상호작용과 감정교류, 영감과 교감을 주는 시간, 켜켜이 사랑과 추억을 쌓아가는 시간이란 점에서 그냥 노동으로 치부할 수 없다.  

요즘 아이들이 주는 사랑을 더 크게 느끼게 되는 데는 아이들이 사랑 표현을 많이 해줘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다. 

자기 전에 항상 내가 아이들에게 하던 말.  "잘자~ 사랑해! 우리 이쁜이!"

그 말을 얼마전부터 아이들이 내게 돌려주기 시작했다.

"엄마, 잘 자~ 사랑해! 엄마, 예뻐~~"

아이들이 말하는 엄마 예쁘다는 말은 진짜 내가 객관적으로 어떻게 생겼냐와 관계없이 그저 내가 좋다는 의미의 '예뻐'이다.  그래서 그런가 그 말을 아이들이 내게 처음 돌려줬을 때 순간적으로 가슴이 몽글몽글해짐을 느꼈다.  

아이들이 내가 말해주는 "엄마, 예뻐!"는 가끔 외출 준비를 했을 때 틴틴이 예쁘게 했다, 이쁘게 차려 입었다는 말과는 분명히 다른 느낌!  (사실 틴틴이 이쁘다고 해 주는 말은 별로 영혼이 없는 느낌... ㅋㅋㅋ) 

혀 짧은 소리로, "엄마, 사랑해~ 예뻐~~" 하며 내 볼에 자기 볼을 부비는데, 그 때의 그 기분좋은 느낌은 뭐랄까 말로 설명하기가 힘들다.  그걸 첫째 잭과 둘째 뚱이가 동시에 하니, 그 감동이 두 배!  이쁜 녀석들.. 

 

그러나 며칠 전 그런 순간은 있었다.

첫째 잭이 내게, 

"엄마~ 사랑해~~ 잘자! 예뻐~~ 엄마, 예뻐~~"

하길래, 나도 같은 인사를 돌려줬다.

"그래, 잭, 엄마도 사랑해~ 잘자~ 우리 이쁜이~"

그러자 잭도 다시 말했다. 

"엄마~ 예뻐~~"

그래서 나도 답했다.

"우리 잭도 이뻐~~"

그러자 잭이 물었다.

"뚱이는?"

하고 되묻는다.  그래서 나는 대답했다.

"뚱이도 이쁘지~"

그러자 나온 잭의 대답.

"뚱이 똥! 안 좋아!"

아.. 푸훗 하고 웃음이 나는 걸 겨우 참았다. 

** 요즘 우리가 훈육하고 있는 포인트 중 하나가 바로 저 똥이다.  그냥 똥 똥 할 때는 괜찮지만, 타인에 대해(특히 동생에 대해) 화가 나서 그 화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똥을 쓸 때, 그걸 못하게 하는 거다.  욕 대신 똥을 말하는 거나 다름없기 때문에 그건 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는 중.**

"안 돼.  다른 사람한테 똥이라고 하는 건 안 돼."

그러자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내게 "사랑해~"를 반복했다.

 

사진: 내 소중한 보물들.  이젠 아이들에게 "엄마 보물 어딨어?" 하면 아이들이 자기라고 하며 내게 다가온다. 

 

아이들로부터 받는 치유

또 하나 요즘 내 가슴에 남아있는 것은 내가 아이들을 통해 치유받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네 남매 중에 셋째 딸이다.  큰 언니, 작은 언니, 나, 그리도 늦둥이 남동생, 이렇게 우린 네 남매이다.

남동생이 태어난 건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그때까지 난 우리집의 막내였고, 동생이 어릴 때도 난 여전히 막내같이 살았다.  동생이 막내이긴 했지만, 나도 나름 막내로 오래 살았다. 

감사하게도 어릴 때 물질적으로는 크게 부족할 게 없는 삶을 살았으나, 집에 자식이 많다보니 집 안에서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싸움과 질투가 많았다.

가령, 엄마가 언니들에게는 따로 음악 레슨을 오랫동안 시켜주는데, 나는 내가 좋아하는 피아노 학원을 몇 달만 다니고 못 다니게 하셔서 그게 그렇게 서운했다(나름 당시 난 내가 절대음감에, 타고난 피아니스트이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언니들은 언니들대로 나는 누렸으나 언니들이 못 누린 것에 대한 서운함이 있었을 것이다.  

가슴에 박히고 기억에 많이 남은 것은 언니들에게 구박받았던 일, 엄마 아버지께 서운했던 일 같은 것들이 있었다.

그러다 둘째를 낳고, 둘째가 자라는 것을 보고, 첫째와 둘째의 상호작용을 지켜보다 보니 내 어린시절도 저랬겠구나, 우리 엄마 아버지가 이런 마음이셨겠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될 때가 많다. 

나는 몰랐던 부모의 입장에 내가 서보니 부모님의 마음과 입장이 이해가 되고, 객관적 입장에서 첫째와 둘째를 보니 언니들이 겪었을 고충이 보였다. 또, 언니들이 내게 베풀어줬을 수많은 것들이 눈에 보였다.  사실 언니들의 존재 그 자체가 내게 주었을 기쁨과 혜택이 잭과 뚱이의 관계를 통해 눈에 보였다. 

우리 아이들이 둘이서 뭐가 웃기다고 한바탕 같이 웃음지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에는 내 마음에 나도 모르는 응어리들이 다 풀어지는 느낌이다.  맞다, 나도 어릴 때 언니들과 저럴 때가 있었지.. 생각나는 순간.  상처들만 기억에 남아있었는데, 행복했던 순간이 훨씬 많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내가 아이들을 통해 어린시절에 가졌던 크고 작은 상처들을 치유받고 있다고 느끼게 되는 강렬한 순간이다.

언니들과는 어릴 때야 투닥거리는 일이 많았지만 다들 성인이 되고 독립하고 나서는 정말 좋은 친구같은 사이인지라 어릴 때의 시기 질투 불평 불만 모두 옛 일이 되었지만, 나도 몰랐던 내 마음 속에 있던 무언가가 치유되는 경험.  그걸 요즘 아이들을 돌보며 겪고 있다.  전혀 생각해본 적도 없는 육아로부터의 혜택이자 아이들로부터의 선물이다.  이 모든 과정을 있게 해준 남편도 고맙다. 

아이들로부터 받은 치유는 또 다른 차원에서도 이미 일어난 바 있었다.  그건 바로 부모님의 나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매개체로서 아이들이 역할한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부터 엄마 아버지와 오랫동안 떨어져 살면서 엄마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어린 시절의 불평 불만을 가진 철없는 막내 딸인 상태로 집을 떠났던 만큼 부모님도 나를 어린 시절의 막내딸로만 기억하셨고 나라는 한 인간에 대한 이해는 별로 없으셨을 것이다. 

특히 아버지는 내게 우상같은 존재이면서도 너무 좋아하지만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였다.  엄하고 어렵고, 어떻게 아버지와 소통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몰랐다.  나의 의견을 있는 그대로 존중받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일방적이고 권위적이라고 생각했다.  난 아버지를 잘 몰랐고, 아버지도 날 잘 모르셨을 거다.  언니들은 나보다 아버지를 더 잘 알았고, 그런만큼 아버지와 의사소통하는 요령도 나에 비해 훨씬 많았다.  그런데 난 그게 안 됐다.  

아버지께 받기는 그렇게 많은 것을 받았으면서도 정서적 교감과 공감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해 난 불만이 많았다.  돌이켜보면 그랬던 것 같다.  모든 것이 완벽하기를 바랬던 것 같다.  내게 내 아버지는 그럴 것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나도 잘 몰랐는데, 아버지를 많이 좋아했지만 가까워질 수가 없어서 그게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랬던 상태로 서울과 지방, 그리고 급기여 한국과 영국으로 떨어져 산 세월이 길어지니, 아버지는 내게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었었다. 

그러던 중 전환점이 된 큰 사건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2년전 겨울, 그러니까 2020년 겨울에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 부모님댁에서 몇 달간 머문 시간이었다. 

엄마는 당연히 그러리라 예상을 했지만, 아버지도 그 연세에, 그 몸으로 우리 잭과 뚱이를 안아주고, 들어주고, 데리고 함께 드라이브를 가시고, 아이와 카페를 가시고, 내가 일을 해야 하는 날에는 엄마 아버지 두 분이서 육아를 도맡아 주시고.  아이들에게 듬뿍 사랑을 주시는 모습, 날 위해 헌신해 주시는 모습에 그간 쌓였던 모든 거리감이 다 사라졌다.  

두 분이 우리 아이들에게 주시는 넘치는 사랑은 사실 곧 나를 향한 사랑임을 깨닫고 얼마나 감격했던지. 

넉달간의 한국 생활로 난 부모님을 좀 더 잘 알게 되었고, 부모님의 사랑을 비로서야 더 잘 알게 되었고, 내 마음에 남아있던 아주 작은 응어리마저 다 녹아 사라졌다.  이제야 철부지 딸이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말게 된 시간이었따.  

아이들이 그 매개가 되어주었으니 아이들은 내게 정말 귀하고 감사한 존재!  아이들은 내게 끊임없이 치유를 베푸는구나.  그 아이들을 있게 해준 남편이 고맙고, 그런 남편을 낳고 길러주신 시부모님이 감사하고, 그런 남편이 결혼을 결심하게 할 만한 사람으로 나를 낳고 키워주신 우리 부모님이 감사하고.  그저 모두가 감사하다.  삶이 다 감사하다.  

 

먹고 사는 일의 팍팍함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기를...

아이들로부터의 사랑의 감사함을 제대로 인지하게 된 게 내가 올해는 일을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우리가 어린이집 출석일을 줄이면서 경제적으로 겨우 숨통이 트이면이다.  몇달간 아이들이 더 자라면서 육아가 조금이나마 수월해진 부분도 한몫 하는 것 같기는 하다.  심적으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니 이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먹고 사는 일은 정말 힘들다.  아주 운 좋고 먹고 사는 것에 여유가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은 소수이다.  대부분은 우리처럼 팍팍하게 살아간다.  이 정도로라도 사는 것도 사실 감지덕지고, 아주 감사한 일이다.  어쨌거나 내가 지금 사는 게 팍팍하다 보니 나도 내가 현재 무엇을 누리고 있는지 알 틈이 없었다.  내가 얼마나 크고 값진 아이들의 사랑을 누리고 있었는지 말이다. 

요즘은 코비드에, 전쟁까지 터져서 먹고 사는 일의 팍팍함이 두 배는 가중된 느낌이다.  난방도 하지 않는 한여름에 전기/가스비가 두 배로 올랐는데, 겨울에는 난방비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 

몇주후부터 온전한 전업주부가 되어 아이들 돌보는 일에 엄청나게 치이더라도 하루 하루 서로 주고 받은 웃음을 소중히 여길 수 있기를.  나의 육아 일상을 돌아보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상에서 삶의 소중한 의미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계속되는 전업육아로 몸이 다시 힘들어지고, 계속되는 물가인상 속에서 먹고 사는 일이 다시금 더 힘들어지더라도 먹고 사는 일의 팍팍함에 매몰되어 눈앞의 기쁨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싶다.  그럴 수 있게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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