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일상

[영국일상] 영국 여름에는 미세먼지 대신 헤이피버가 있다!

옥포동 몽실언니 2022. 6. 20. 22:19

영국의 온화하고 아름다운 여름날씨

영국의 여름은 짧고 아름답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그 때부터 봄을 알리는 꽃들이 올라오기 시작해요.  대신 봄은 여전히 날씨 변화가 심해서 모두들 감기를 앓는 시기.  이 때를 지나고 난 이후 5월부터는 영국이 정말 아름다운 시기입니다. 

영국의 여름은 기온이 올라가야 27-28도, 시원한 날은 22-24도 사이로 선선하고 살랑살랑 바람불며 해가 쨍해요.  건조하고 해가 긴 게 특징입니다.  봄, 가을, 겨울에는 바람이 매우 심한 편인데(바람 많은 제주도 정도의 바람이 이곳 평상시의 바람수준이에요) 여름에는 그나마 바람이 적어요.  그런 날씨가 5월부터 8월까지 지속됩니다. 

30도가 넘는 날은 여름 중에 많아야 두세번? 정도밖에 안 되는 거 같아요.  30도가 넘을 거라 하면 그날은 뉴스에서 내내 날씨 얘기를 할 정도예요.  한국의 초여름, 초가을 같은 날씨가 영국의 여름과 비슷해요. 

사실 8월에도 날씨가 좋긴 하지만 8월 중순만 지나도 이미 좀 추워지기도 하고, 가을로 넘어갈 준비를 하면서 날씨가 변덕을 많이 부려요.  한국의 따사로운 가을 햇살과 기온을 생각하면 영국 8월은 한국의 9월 중순에서 말 같은 느낌이라 할 정도로 선선합니다.  그래서 '여름'이라 부를 만한 시기는 5월부터 7월 정도 같아요. 

이 좋은 시기가 되면 다들 신이나서 야외활동이 많아집니다.  놀이터 물놀이장도 개장을 해서 아이들이 물을 맞으며 뛰어놀고, 각자 집 가든에서는 바베큐도 많이 하고, 공원에 드러누워 해를 쬐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납니다.  

(사진: 집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들)

 

오후에도 해가 길어져서 9시, 10시까지도 밝아서 저녁 시간에도 놀기가 좋죠.  어린 아이들을 가진 부모들에게는 다소 고충이 있습니다.  저녁인데 어둡지가 않으니 아이들을 재울 때 좀 힘들어져요. 

그래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겨울 내내 4시면 해가 져서 깜깜한 생활을 했던 영국인들에게 여름의 긴 해와 따뜻한 날씨는 선물이자 축복입니다. 

이렇게 좋은 여름에도 두려운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헤이피버! 

헤이피버가 기승을 부르는 여름

영국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봄부터 여름까지 '헤이 피버(Hay Fever)'로 고통을 받습니다.  한국말로 하자면 꽃가루 알러지예요.  이건 기존에 알러지가 없던 사람들도 영국에 와서 생기기도 하고, 영국 와서 증상이 심하지 않던 사람들(=몽실 본인)도 임신 출산을 겪으며 체질이 달라져서 극심한 알러지가 생기기도 해요. 

알러지가 뭐라고, 그걸로 '고통'까지 운운하느냐 하겠지만, 이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고충이 있어요.  저도 제가 이렇게 심하게 겪어보기 전까지는 이 정도 수준인 줄 정말 몰랐어요.  심하게 겪는 이들을 보며 정말 힘들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직접 겪어보니 와.... 매년 이렇게 하면서 어떻게 사나 참담할 정도예요.  일상 생활이 정말 불편하고 힘들거든요.  

사실 헤이피버가 여름에만 기승을 부리는 건 아닙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시기별로 피고 지는 꽃들이 많아요.  한국에서 '꽃' 생각하면 진달래, 개나리, 벗꽃, 코스모스, 카네이션...  뭐 이런 계절이나 이벤트와 큰 연관성을 가지는 꽃들만 생각하게 되는데, 영국에서는 꽃과 자연이 훨씬 일반인들의 일상 가까이에 있어요. 

영국에는 동네 곳곳마다 공원과 초원이 있다 보니 사시사철 피고 지는 온갖 꽃들이 참 많습니다. 여러 나무들에서 피고 지는 꽃들, 잔디밭에서 피고 지는 온갖 잡초들, 들판에 피어나는 온갖 야생화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게다가 영국에서 일반적인 주거형태가 가든이 있는 주택이다 보니 가든에 피는 온갖 꽂과 잡초들... 이를 어째야 할까요.  알러지가 없을 때는 그저 아름다운 자연의 선물이었는데, 알러지가 생기고 나니 이쁜 자연들이 그저 이쁘지만 않고 두렵고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면 믿으시려나요.

없던 알러지가 갑자기 생긴 이유

사람마다 이유가 다를텐데, 저 같은 경우에는 둘째 임신 중에 알러지가 엄청 심해졌어요.  그 전까지는 꽃가루가 기승을 부리는 계절이 되면 목이 살짝 까끌거리고, 공원에 나가면 가끔 콧물이 찔끔찔끔 나오는 정도.  그게 전부였어요.  그래서 제가 알러지가 있나 없나 인지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지요.  증상이 매일 있는 것도 아니고, '가끔 오늘 왜 이렇게 목이 간지럽지?' 생각됐다가 이내 그 생각도 잊어버리는 정도였어요.  눈이 가끔 가렵긴 했지만, 눈에 뭐가 들어갔나 왜 이렇게 가렵지.. 하고 좀 씻고 나면 다시 괜찮고.  일상생활에 크게 지장이 없었어요.  가끔 조금씩 불편은 했지만,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지요. 

그러던 중.  둘째 임신 중기쯤 되었을 때 갑자기 마른 기침이 계속 나고 목이 부었어요.  내가 감기가 걸렸나 재채기가 목이 왜 이렇게 붓고, 재채기와 콧물이 왜 이렇게 나나 하고 하루 이틀 지나다가 그게 1주, 2주, 3주.. 계속되는 거예요!  감기라고 하기에는 증상이 악화되지도 않고 완화되지도 않고, 여타의 감기 증상이 하나도 없었어요. 

보통 감기에 걸려서 재채기가 난다면 재채기가 나아지면서 콧물 기침 감기로 넘어갔다가 이게 나아져야 하는데, 나아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더 심해지지도 않았어요. 

이상하다 하고 찾아보니 제 증상이 헤이피버 증상이었어요!!! 

그리하여 한 달 넘게 목 부음과 재채기, 콧물로 고생을 했는데, 아이를 낳고 나서는 더 심해지고, 더 일찍 증상이 시작됐어요.  임신 중에는 6월, 7월 정도에 시작했던 증상이 출산 이후에는 3-4월쯤 시작됐고, 그 이듬 해(작년)에는 아예 2월부터 시작됐어요.  

흥미롭게도 영국에 사시는 한국 분들 중 이전에 없던 알러지가 아이 임신 중에 새로 생겼다는 분들을 많이 봤어요.  두 종류의 혈액형이 한 몸에 공존할 수 있는 상태가 임신 중의 상태라는 거!  나와 다른 한 인간을 몸에 품으면서 생겨나는 신체의 변화! 참 신기하죠?!  비록 알러지로 인해 힘들긴 하지만, 임신이라는 일 자체는 참 신비로운 일인 것 같아요.

어쨌거나 다시 돌아와서 이 헤이피버는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요?

헤이피버 관리하기

저도 헤이피버 때매 병원을 찾았습니다.  영국의 일반의이자, 가정의학 전문의라고 할 수 있는 GP를 찾아갔죠. 

바세린

의사가 하는 말: 코 밑에 바세린을 바르세요.  영국인의 바세린 사랑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 정말.. ㅠㅠ 그런데, 의외로 바세린을 바르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긴 한답니다.  놀랍죠??  코 밑에 바르면 눈에 보이지 않는 꽃가루 입자들이 바세린에 붙어서 코 안으로 흡입되는 양이 좀 줄긴 하나봐요. 

2019.04.15 - [영국육아/좌충우돌 육아일기 2017-2020] - 습진에 바셀린을 "듬뿍" 바르라는 영국 간호사의 조언

 

습진에 바셀린을 "듬뿍" 바르라는 영국 간호사의 조언

안녕하세요.  몽실언니예요. 좀 전에 저희 아이 중이염에 항생제 복용을 시작한 이야기를 올렸는데요. 지난주 목요일, 잭을 데리고 병원에 간 날, 병원에 간 김에 간호사 선생님께 제 손의 피부

oxchat.tistory.com

 

알러지 약

그리고, 매일 알러지 약을 먹으라고 합니다.  매일 먹으래요.  하루 한 알. 하루 용량이 한 알인데, 그냥 그걸 먹으라고 합니다.

저도 매일 먹고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약을 먹어도 콧물 줄줄, 양 코가 다 막혀서 코로 숨을 쉴 수 없는 상태!!

코 스프레이

그 때는 알러지로 막힌 코를 뚫어주는 코 스프레이가 있어요.  이걸 뿌립니다.  

이 스프레이는 코 혈관을 축소시켜준대나..하는 독한 약이에요.  그래서 일주일 이상은 연속으로 사용하지 말고 의사와 상담을 꼭 받으라고 안내가 되어 있어요.  이 약을 쓰면 코가 금방 뚫리긴 합니다.  그런데 오래 쓰면 안 된대요.   게다가 몇 번 쓰다 보면 약효가 줄어들어요.  처음에는 한번만 뿌려도 밤새 코를 뚫어줄 정도로 효과적이었는데, 이젠 두번씩 뿌려줘도 한 쪽 코만 뚫어주고 다른 한쪽 코는 막힌 상태라는 슬픈 현실. 

눈에는 안약

눈도 정말 가려워요.  올해는 특히 눈에 증상이 매우 심해요.  눈은 항상 충혈되어 있고, 각막이 퉁퉁 부어서 각막이 밀리는 게 거울로 보면 눈에 보일 정도예요.  눈 안만 가려운 게 아니라 눈 밖에 눈커플 쪽도 너무너무 가려워 죽을 것 같아요.

그래서 Amazon에 들어가서 눈 안에 넣는 안약, 눈 밖에 뿌려주는 스프레이까지 다 총동원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불편합니다.


사실 이렇게 해서도 관리가 안 될 경우 의사에게 연락하면 스테로이드 성분이 든 약을 처방을 해준다는데, 저는 미련하고 겁도 많고 영국생활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져서 불편하고 힘들어도 견디는 훈련이 되어 있어요.  그래서 그냥 힘들지만 버팁니다.  여름, 너무 아름답지만 이 여름이 곧 가고 다시 추운 가을 겨울이 올 거라는 것을 알기에. 

영국의 여름은 정말 아름다워요.  한국에서 봄과 초여름에 겪는 황사와 미세먼지는 영국에 없지만(런던 시내는 공기오염이 높기는 하답니다), 영국에는 영국대로 꽃가루 알러지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답니다.  저같이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이 나라에는 소수가 아니라 아주 많아요.  영국의 국민보건의료서비스(NHS)에 따르면 잉글랜드 지역에만 1,0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헤이피버를 갖고 있다고 하니 참 많죠?  거기에, 제가 바로 그 천 만명 중의 한 명이네요.  저희 남편 틴틴도, 저희 큰 아들 잭도!  

희한하게도 둘째 아들 뚱이를 가졌을 때 헤이피버가 생겼는데, 정작 저희 뚱이는 헤이피버가 아직은 별로 증상이 없어요.  일단 기관지나 몸속 내장기관이 잭에 비해 좀 더 건강한 편인 거 같기도 하구요. 

어쨌거나 영국의 아름다운 여름 날씨 이면에는 이렇게 알러지로 고통받은 수많은 인구가 있답니다.  오늘 하루도 고통스럽지만 따뜻한 햇살에 감사해하기로 합니다.  이 따사로운 햇살도 길어야 두달이 전부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연관글: 

2021.05.15 - [영국에서 먹고 살기/영국 생활정보] - 영국살이의 복병, 헤이 피버(hay fever)의 계절이 오다

 

영국살이의 복병, 헤이 피버(hay fever)의 계절이 오다

헤이 피버(hay fever)의 계절이 왔습니다. 헤이 피버는 꽃가루 알러지예요. 알러지가 있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렇지 않으신 분들은 꽃가루 알러지가 뭔지 이해하기 힘드실 거예요. 그리고 그게

oxchat.tistory.com

 

2020.07.12 - [영국에서 먹고 살기] - 바야흐로 수확의 계절! 우리 가족의 소확행.

 

바야흐로 수확의 계절! 우리 가족의 소확행.

안녕하세요. 몽실언니입니다. 저희는 저희 집에 전에 살던 분들이 가든에 심어둔 과실수와 덤불 덕분에 여름이면 가든에서 열리는 여러 열매로 풍성한 한 때를 보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oxchat.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