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2017-20

영국에서의 첫 연말 연휴: 끈끈한 가족의 시간

옥포동 몽실언니 2020. 1. 2. 08:11

이번 연말연휴는 우리 세 식구가 처음으로 영국에서 보낸 시기였습니다.  길고 길었던 연휴 같은데 그 연휴도 어제로 (아직 영국은 밤 10시 반이라 오늘이지만) 끝이 났네요. 

영국은 크리스마스 연휴가 한국으로 치자면 설연휴처럼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영국의 가장 큰 명절입니다.  공식 공휴일은 크리스마스 당일과 크리스마스 다음날, 그리고 1월 1일, 이렇게 딱 3일 뿐이지만, 대부분의 회사들이 크리스마스 이브날에는 업무를 일찍 끝내는 편이고, 크리스마스부터 1월 1일 사이에 있는 3일간의 평일 동안 업무가 거의 중지되다시피 하기 때문에, 아예 문을 닫는 회사들도 제법 됩니다.  문을 닫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3일은 휴가를 써서 크리스마스 당일부터 1월 1일까지 긴 휴가를 가지는 편이지요.  1월 1일이 지나면 새 해의 휴가가 새롭게 시작되니 1월 2일에서 3일 정도도 휴가를 쓰는 사람이 많아요.  물론 크리스마스 이전부터 휴가를 쓰는 사람도 많구요.  그렇다 보니 영국은 크리스마스즈음 해서부터 연초까지는 연중 업무가 가장 더디게 진행되고, 가장 여유로우면서,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여유로운 시간입니다. 

저는 그간 영국에 살면서 영국에서 연말을 보낸 적은 많지만, 틴틴과 잭과 함께 세 식구가 되어 이 연휴를 영국에서 보낸 것은 처음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2년전 잭이 처음 태어났을 당시에도 셋이 영국에서 연말을 보냈지만, 당시에는 잭이 태어나서 황달로 병원 다니기 바빠서 크리스마스 이브날이며, 크리스마스 이틀 후.. 거의 하루 걸러 하루 병원을 다니느라 연말이 있기는 한 건지도 모른채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그 후 작년 연휴는 아이와 함께 첫 한국행을 한터라 한국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지요.  그리고 2019년 크리스마스 연휴.  이 연휴는 저희 세 식구가 2019년 들어서 가장 처음으로 긴 휴가를 가지는 시간이었고, 또 그 연휴를 영국인들처럼 저희도 저희 나름대로 '가족의 시간'으로 채워간 시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기나긴 이 연휴를 틴틴과 함께 아이를 돌보니 내 개인 시간이 조금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 기대는 언감생신.  아이는 요즘들어 더더욱 엄마바라기가 되어 제가 화장실 가는 시간 조차 저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고 화장실 문을 열거나, 아니면 문을 두드리거나 하기 일쑤입니다.  게다가 틴틴은 보름 넘게 감기를 앓는 바람에, 이 긴 연휴는 어느때보다 '가족돌보기'로 꽉 찬 시간이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치고 힘들었지만, 하루 종일 집에서 엄마 아빠와만 시간을 보내는 잭의 지루함은 저희의 힘듬을 넘어서는 수준이었습니다.  매일 집에서 끊임없이 엄마 아빠와의 놀이를 요구하는 아이를 감당하기 힘들다 보니 인근지역에서 아이를 데리고 갈 만한 곳을 찾아 이곳 저곳 방문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하다 보니 아이도 재밌어 하고, 저희도 재밌고, 시간도 잘 가고, 뭔가 연휴를 이용해 아이에게 '가족과 함께 하는 다양한 체험활동' 시간도 되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저희가 연휴 동안 다녀온 곳은, 먼저 집에서 멀지 않은 (차로 20분 거리) 곳에 있는 기차박물관을 방문한 것이었습니다.  옛 역사를 이용해서 오래된 증기기관차도 전시하고 관련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는 Didcot Railway Centre 입니다.  증기기관차 중 한대는 탱크엔진 토마스로 분장하고 있는데, 이 기차는 크리스마스 연휴 동안 아이들을 태우고 신나게 행사를 했다고 합니다.  저희가 방문한 날은 이미 크리스마스 이후라 행사가 없던 날이어서 아쉬웠어요.  토마스를 탈 수 있는 날은 이미 입장권이 다 팔려서 구할 수가 없었거든요.  내년 3월에 또 이 토마스를 운행하는 주말이 있다고 하니 그 때는 미리 표를 사서 재도전을 해볼까 합니다.   

이 기차 박물관 안에는 옛날 기차들의 신호 조작법을 전시하고 있었고, 방문객들이 실제로 직접 작동해 볼 수 있도록 해주고 있었어요. 

영국에서는 크리스마스 당일과 다음날인 이 이틀간의 연휴 때는 버스는 물론 기차도 모두 쉬는 날이에요.  마트도 당연히 닫구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 하지 않고 쉬는, 정말 명절인 것이죠.  한국의 설날에 비해 더더욱 심하게 모든 상업/교통활동이 중지됩니다.  그러다 보니 저희도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가족끼리 오붓하게 성탄을 기리고 가족끼리의 조용한 시간을 보냈고, 그 다음날은 이 나라의 명절 답게 저희도 친지와 함께 하는 시간을 보냈어요.  바로 자동차로 45분 거리에 사는 잭의 고모집을 방문한 것이지요.  잭의 고모는 두 마리의 이쁜 새와 함께 살고 있는데, 고모가 휴가를 떠날 때마다 그 새들을 저희 집에서 돌보아줬기 때문에 저희 잭도 그 새들과 아주 친숙해요.  오랫만에 고모네에 가서 고모의 새들을 만나며 잭이 아주 즐거워했습니다.  공원에서는 이렇게 가까이에서 새를 볼 수가 없는데, 고모네에서는 가까이에서 새를 볼 수 있으니 잭에게는 특별한 경험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집에서도 잭은 새로운 활동들에 눈을 떴어요.  일단... 크리스마스 선물로 케임브릿지에 사는 제 친구가 보내준 잭의 색연필.. 그 색연필로 온 집을 휘젓고 다녔습니다.  물에 씻기는 색연필이긴 한데.. 벽에 칠해진 건.. 잘 안 씻겨요. ㅠㅠ 처음에는 계단 옆 벽면에 칠해둔 것을 물티슈로 닦으니 제법 잘 닦여서 감쪽같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 계단 벽면은 조명이 어두워서 남은 얼룩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었고, 다른 벽면에 아이가 칠한 것은 닦는다고 닦는데도 잔상이 좀 남네요.  ㅠㅠ 대신 냉장고나 유리창에 그린 것은 아주 말끔하게 잘 지워집니다.  그래봤자 소용은 없습니다.  아이는 저희가 잠시 한눈 판 사이 색연필을 들고 거실이며 부엌이며.. 벽이든 뭐든 가리지 않고 다 그으며 신이 났습니다. 

저희는 잭이 청소기를 너무 좋아하면서 잭이 사용하기 편하도록 청소기의 가운데 봉을 모두 제거하고 청소기 머리를 짧게 달아서 청소를 해 왔는데, 요즘 제 배가 너무 불러서 청소하기가 너무 힘들어진 탓에 틴틴이 모든 청소기에 봉을 다시 연결했어요.  그랬더니 저희 잭,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잭의 눈에는 청소기가 대변신을 하며, '새로운 청소기'로 재탄생한 거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잭은 신이 나서 다시금 청소기에 대한 사랑을 불태우며 온 집을 청소하고 다녔습니다.  봉이 달린 청소기를 보는 것에 신이 난 잭 덕에 저희는 1층부터 3층 다락방까지 간만에 묵은 청소를 다 해치울 수 있었답니다.  

가족, 친지와 함께 하는 연휴답게, 연휴 중 이웃 방문도 빼먹을 수 없죠.  안타깝게도 친한 친구들은 모두 배우자가 유럽인들이라 배우자의 가족들을 만나러 배우자의 나라로 떠난 터라 이번 연휴 중 제 친한 친구들은 만날 수가 없었어요.  대신 옥스퍼드에 살고 있는 친한 후배네 집은 두번이나 다녀왔습니다.  그 곳은 친애하는 후배네 가족이기도 하지만, 저희 잭이 좋아라하는 두 형아네 집이기도 하기 때문에 잭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동네에서 자주 보는 누나, 형아들에게는 잘 다가가지도 않는 잭이건만, 후배네 가족의 두 아들에게는 잭이 얼마나 스스럼없이 다가가고 좋아하는지..  심지어 집에 가자고 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가기 싫다고 해서 저희 부부를 당황하게 하기까지 했답니다.  아래 사진은 형아네에서 놀고 있던 잭! ^^

지난 월요일에는 아이와 함께 인근 지역의 놀이방?  키즈카페?  영국에서는 soft play 라고 불리는 그런 곳을 다녀왔어요.  서너번 가 가 본 곳이었는데, 이번 연휴에만 두 번을 연속해서 가니 아이가 확실히 좀 더 편하게 느끼면서 이번에는 처음으로 그곳에 도착하자 마자 놀이기구를 타러 들어갔어요.  그 전만 해도 아이가 놀이기구로 가려 하지 않아서 한번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간식만 먹고 돌아온 적도 있었거든요.  이날은 마침 연휴 중 유일하게 화창하게 해가 떴던 날이라서 야외 놀이공간에서 해도 마음껏 쬐고 돌아왔습니다.   재미있었던 것은.. 이 날 soft play 자리가 만석이었는데, 아이들만 신이 났지 부모들은 모두 긴 연휴 동안 아이를 돌보느라 이미 지칠대로 지친 표정들이었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명절신드롬이나 다름 없는 장면을 목격하며 이 또한 맥락은 달라고 만국공통이라는 생각에 남편과 둘이 한참을 웃었답니다. 

이번 연휴 기간 중에 이곳 저곳 많이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사실 잭의 카시트를 바꾼 덕도 빼먹을 수 없습니다.  차 안에서 20-30분 이상을 버티지 못하는 잭 때문에 저희의 이동반경은 늘 인근 지역으로 한정되어 있었는데, 이번에는 큰 용기를 내어 45분 거리의 고모집까지 다녀온 것도 바로 이 카시트 덕분이었죠.  이전까지는 내내 여러 지인들이 물려준 카시트를 아이 개월수에 따라 돌려가며 썼었는데, 둘째 아이 카시트를 준비하면서 이 참에 우리 잭도 좋은 카시트에 한번 태워보자 하고 아이의 카시트를 좋은 것으로 바꿔줬더니 놀랍게도 아이가 차 타기를 더 편해 하는 것 같았어요.  무엇보다도 이전 카시트보다 높이가 높아서 창밖이 잘 보니는 것도 한몫 하는 것 같고, 카시트의 쿠션이 더 포근하고 좋은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아이는 30분이 넘어가니 소리를 지르며 카시트에서 나오고 싶어 하고, 창문을 열어달라고 떼를 쓰는 등 난리법석을 떨긴 했지만 그래도 아이가 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이전에 비해 훨씬 평화로워졌어요.   단점이라면.. 4세까지 쓸 수 있는 카시트라서 남은 2년이라도 편하게 태우자고 산 카시트인데, 아이의 앉은 키가 이미 최대수준에 도달했다는 것..!!  아래 사진의 목받침이 가장 높이 조정한 목받침인데, 이미 아이의 현재 키에 딱 맞는 수준이거든요.  

그렇지만 아이와 차 타는 시간이 항상 너무 곤욕스러웠던 저희 부부는.. 이 상태로 6개월만 편하게 차로 이동해도 본전은 충분히 뽑는 거라는 생각으로 이 카시트를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둘째도 태어나면 형아랑 같은 카시트를 이용할 예정이에요. 

어찌 보면 알차고 즐거웠던 시간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너무 개인시간이 없어서 지치고 힘든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잠시라도 혼자 산책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저희 잭은 저에게 그런 시간을 허락해주지 않았어요.  그래도 오늘 아침 엄마가 길게 목욕도 할 수 있게 해주고 오후에는 짧은 낮잠도 잘 수 있게 해 준 것에 아주 많이 감사하고 있지요.  저도 실은 곧 둘째가 태어나면 아이와 이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줄 수 없다는 생각에 아이를 두고 저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해서 굳이 애 써서 그런 시간을 만들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둘째는.. 아직도 나올 기미는 보이지가 않습니다.  아마 다음주 토요일, 저희 엄마가 오실 그날까지도 아이는 제 뱃속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 같은 예감입니다.  

아이는 이번주까지 어린이집이 방학인데, 틴틴은 내일부터 출근입니다.  저 혼자는 너무 힘들 것 같아 내일도, 모레도 틴틴은 오후 반차를 예약해둔 상태이긴 한데, 오전 3시간을 저 혼자 아이를 잘 감당할 수 있을지 벌써 겁이 나네요.  잘 할 수 있겠죠?  아이는 에너지가 넘쳐나는데, 엄마는 나이도 많고 체력도 딸리는데 배까지 만삭이라 아이가 원하는 만큼 해 줄 수 없는 게 참 미안합니다. 

저는 내일을 위해 이만 자렵니다.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고 행복한 한 해 되시기 바래요!  올 해는 어떤 이야기들로 저희 가족의 삶이 채워질지 기대되고 궁금합니다.  새해에도 저희 블로그 많이들 찾아주시고, 함께 이야기 나눠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