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생활

옥스포드에서의 크리스마스 먹방

옥포동 몽실언니 2016. 12. 29. 10:31

2016년 크리스마스는 옥스포드에서 보내게 될 마지막 크리스마스일 것이다.  영국에서의 크리스마스는 그다지 기억에 없다. 학기가 끝나고 도시가 비면 덩달아 내 마음도 비어버리기 일쑤였고, 결국은 하지도 못할 공부를 그렇다고 완전히 손에서 놓지는 못하면서 춥고 어두운 겨울을 기숙사에서 게으름 피며 보내는 것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올해는.. 다행히 시간도 있고, 놀기로 작정하기도 했고, 즐겁게 함께 보낼 친구도 몇몇 있어서 우리끼리 크리스마스 디너를 계획했다. 12월 23일 금요일 저녁부터 박싱데이인 26일까지.. 거의 3박4일이 하나로 이어진 휴가처럼 그저 놀고 먹고 즐기는 휴일이었다.  아기예수님의 탄생을 축복해야 하는 성스러운 날임에도 불구하고.. 미사를 드리는 동안 잠시 holy한 시간도 있었지만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은 내 인생에서 잊지 못할 방탕한 3박4일의 놀고먹은 추억이다. 


매우 다양한 종류의, 그리고 대단한 양의 음식과 술을 쉬지 않고 먹은 휴가.  먹음에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정도.  몽실언니는 이 기간동안 도대체 뭘 먹고 마신 것일까?! 


23일 저녁..일단 한식으로 시작한다..영국에서 두번째로 먹어보는 감자탕.  이 감자탕이 태어나서 딱 세번째 먹어보는 감자탕이다. 얼큰하고 진한 돼지고기 육수가 제맛!



감자탕에도 와인이 빠질 수 없다. 뭔가 매콤한 소시지와 잘 어울린다는 와인과 주인댁이 갖고 있던 와인들에..  소주까지 함께.. 곁들임..



드디어 대망의 크리스마스 이브.  예쁜 상차림과 맛난 음식을 만드는 데에 탁월한 재주가 있는 동생이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하더니.. 이건 태어나서 처음 받아보는 멋진 크리스마스 저녁 상차림이다!  테이블을 보자마자 꺄악!! 하고 환성이 나왔는데, 준비하느라 애쓴 동생이 내 리엑션에 상당히 만족해했다는..^^


불을 끄고 초를 켜면.. 요렇듯 분위기가 좋으다.  내가 너의 솜씨를 블로그에 자랑하마, 라고 호언장담했는데, 내 사진기술이 C의 상차림 솜씨를 따라가지 못하는 듯 ㅠ


아래의 이 예쁜 장식품도 C의 작품.  뭘 보고 만든 것도 아닌 손수 창작하여 만들었단다. 이것 저것 장식품을 사고 (솔방울), 전기초도 사고, 집에서 말린 예쁜 꽃을 곁들이고 거기에 계피향을 살짝 뿌려서.. 이렇게 예쁜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만들었다.  동그란 투명 볼은 쵸코렛 상자에 들어있는 플라스틱 볼을 활용했다고.. 심지어 eco- friendly!! 


크리스마스 이브 스타터.  작고 동글납작한 빵에 크림치즈, 훈제연어, 케이퍼를 올리고 레몬즙과 딜 (dill)이 살짝 올라갔다.  샴페인에 잘 어울리는 안주라 디너를 여는 샴페인과 함께 냠냠!  그 우측엔 크리스마스 크래커~


오늘의 메인: 터키.  아니, 한국사람이 이렇게 크리스마스 이브에 터키 로스트를 멋지게 해도 되는 거냐구요..  장식까지 멋들어지게 하고, 그래비 소스도 고기육수로 직접 만드셨다. 대단..!


터키에 사이드는 당근과 parsnip 구이, 그리고 소세지베이컨말이, stuffed 소세지.  겨울이면 내가 즐겨먹는 당근과 파스닙 구이를 남이 해주니 이건.. 더욱더 천상의 맛.  겨울야채가 제 맛이다! 


나의 선호부위는 터키의 drumstick. 터키다리? ㅋ 닭고기도 닭다리를 좋아하는 나는 터키도 다리를 뜯었다. 예쁜 냅킨까지 준비하신 C도 자신의 작품을 카메라에 담는 중. 


이렇게 거한 상차림에 초대를 받았으니, 선물을 준비해야지. 얼마 되지 않지만 선물과 카드를 쌓아놓으니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한층 더 난다. 


디저트는 쵸코렛 퐁뒤.  쵸코렛을 쵸코에 찍어먹고, 마쉬멜로를 쵸코에 찍어먹고, 쵸코쿠키를 쵸코에 찍어먹는.. 쵸코로 우리를 기절시킨 퐁뒤. 


디저트에도 와인은 빠질 수 없다.  이브 저녁에 먹어치운 와인들. 


밤 11시20분.. 학교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고.. 

돌아와서도 우리의 파티는 계속 되었다.. 


비빔면을 먹고.. 그리고.. 김치찌개베이스의 라면도 먹었는데 사진은 비빔면 밖에 없다 ㅠ



그리고, 다음날은 지난번 포스팅에서 소개한 펍 런치 



크리스마스 이브 때 두고 간 물건이 있어서 C에게 다시 찾아감. 간단한 간식을 먹으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기 위해 Nativity라는 영국 BBC에서 만든 가족 영화 관람. 커피를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이 영화에 반대한 이만 영화전체를 관람하고, 나머지는 모두 잠이 들었다는.. 



낮잠과 함께한 영화가 끝나고 나니.. 벌써 저녁 시간.. 기왕 이렇게 된 거 저녁을 먹자..고 한 것이.. 결국 또 술판이다. 


우리의 쉐프 C는 어제 먹고 남은 터키를 활용하여 볶은 야채를 추가하고, 치킨스톡으로 맛을 낸 stuffed turkey를 뚝딱 완성하였다. 


터키에 어울리는 레드와인.. C와 Y가 20분을 넘게 걸어가서 공수해온 와인이.. 순식간에 비어버렸다. 


같은 고기를 이틀 연속 먹어도 이렇게 다른 맛, 그러나 여전히 참으로 맛있더라는.. 


요로코롬 구운 마늘과 페퍼가 들어있는 소금과 통후추를 갈아 먹으니 더 맛있었다. 


다음 와인에 안주는 베이컨숙주계란볶음.  결국 우리는 남은 밥을 모두 싹싹 긁어먹고, 


일본라면을 또 끓여서 따뜻한 국물에.. 이번엔 냉동실에서 차갑게 식혀둔 보드카를 오픈.. 



일본라면으로도 부족.. 이번에는 신라면.. 


23일 저녁에 감자탕으로 시작한 파티가 26일 새벽에 신라면으로 끝난 3박4일의 먹고놀자판. 


이렇게 생각없이 노는 휴가는.. 부끄럽게도 내 생애.. 처음인 듯.. 절제를 모르고 놀아본 잊지못할 3박4일.  이 시간을 함께 해준 좋은 친구들에게 모두 땡큐를 날리며.. 크리스마스 연휴 먹방 포스팅을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