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언니 다이어리/일기

긴 침묵의 시간, 그리고 그 침묵을 깨기까지...

옥포동 몽실언니 2019. 11. 4. 08:10
블로그에 근 한달여 시간동안 업데이트를 못 한 것은 아마 아이를 낳았던 출산 초기를 제외하고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9월 한달, 아이를 새 어린이집에 적응시키면서 나는 나대로 보고서 챕터를 작성하기로 한 일을 마감해야 했던지라 정신 없이 아이를 돌보면서 일을 하느라 바쁘게 보냈다.

9월 30일 데드라인을 맞추고 난 뒤 간만에 가졌던 휴식시간.  옥스퍼드로 가서 동생들과 맛난 점심을 먹고, 몇달째 미루고 있던 지인과도 점심을 먹었다.  

빡빡했던 한달의 일정 탓인지, 나름의 번아웃을 겪은 시간 같았다.

힘들었던 몸은 쉬이 회복되지 않았고 (특히, 보고서 마감을 맞추느라 마지막 날은 밤을 꼬박 새었다), 몸이 힘드니 마음도 덩달아 힘들었다.  영국 날씨는 완연한 가을날씨로 접어들면서 10월 초에는 옥스퍼드지역에 홍수경보가 있었을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비가 내렸다.  해를 보기 힘든 날씨에 몸도 지친 상태면 우울감이 찾아오는 것을 피할 수 없다.  특히, 일을 하는 동안 여러 집안일을 미루게 되면서 집은 엉망진창이면서, 10월 중순까지는 또 비자 연장까지 진행해야 하는 일정.  

그런 일정 속에서도 일 욕심으로, 임신 때문에 제쳐두기로 했던 일들을 다시 떠맡기로 하고, 거기에 새로운 일까지 들어오는대로 다 받아버리면서,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에서 오는 딜레마에 빠졌고, 해결책이 없는 그 딜레마는 나를 다시 우울감에 젖어들게 했다. 

다행히 아이는 새 어린이집에 잘 적응을 해나가는 듯하였는데, 너무 잘 적응을 한 것인지 어린이집에만 갔다 하면 집에서보다 낮잠을 더 잘 자면서 집에서는 밤 10시, 11시가 넘어서야 자는 날이 허다했고, 그러다 보니 나와 틴틴은 밤늦도록 아이를 돌보고 아이가 잠든 후 집안 정리를 끝내고서야 잠에 드는데, 아이는 어디에 시계가 있는지 아침 7시면 잠이 깨니, 우리는 둘 모두 개인적인 시간이 전무한 것은 당연하고 그렇지 않아도 약한 체력이 더더욱 고갈되면서 둘 다 우울해졌다. 

각자의 우울에 상대의 우울이 더해지니, 그건 틴틴도 나도 견디기 힘든 상황인데, 계속된 수면부족과 체력고갈로 회복의 돌파구도 찾기 힘들었다. 

나는 아이가 잠들기 무섭게.. 아니, 대부분 아이가 잠들기도 전에 정신없이 잠에 들기 일쑤였고, 아침에 눈을 뜨면 잭과 틴틴의 도시락을 싸느라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  그렇게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아이를 어린이집으로 보내면 또 다시 온 힘이 빠지고, 일을 해보려고 끄적이다 잠들어버리곤 했다.  그 바람에 9월은 9월대로 바빠서, 10월은 10월대로 날씨도 나쁘고 몸도 힘들어서 제대로 된 산책 한번 할 시간이 없었다.  영국 살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산책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지내다 보니 블로그를 하고 싶어도 블로그를 할 시간도 없고, 블로그를 할 시간이 조금 생겨도 이제는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그러다 내가 써 둔 지난글을 살펴보니, 뭔 개인적 이야기를 이리도 구구절절 적어놓았는지, 내가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무슨 생각으로 그래왔는지 의아했을 정도!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11월.  아이는 이 가을에 영국 사는 많은 이들이 그렇듯 아이도 어김없이 감기에 걸렸다.  증상을 보니 모세기관지염 증상인데, 영국에서는 어린아이의 모세기관지염이라 하더라도 기침이 3주 이상 지속되거나 고열이 있지 않는 이상은 집에서 진통제를 먹이며 “Home Care” 즉, 집에서 아이를 잘 돌볼 것을 권한다.  거기에 지난주는 아이 어린이집 방학 주간.  아픈 아이와 함께 한주 내내 집에서만 머물며 지겹디 지겨운 시간을 보냈다.  물론 아이와 함께 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매일 같이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씨에 감기 걸린 아이와 나는 어디를 나가지도 못하고 일주일을 꼬박 집에만 머무니 아이도 지겹고 나도 지겨울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아이와 남편이 아닌 그 어떤 인간과의 접촉도 없는 시간을 보냈고, 9월 일을 마친 후 추가로 받아둔 여러 일들의 마감 압박도 슬슬 몰려 오며 다시금 마음에 압박과 불안이 스미기 시작했다. 

임신으로 호르몬까지 한몫을 하니, 그렇지 않아도 울컥할 마음이 더욱 울컥해져서 어제는 남편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오늘은 내가 어떤 상태인지, 왜 그런지 남편에게 최대한 자세히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따뜻한 나의 남편은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 것을 미안해했고, 나는 나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경청해준 남편에게 감동했고, 나의 마음을 백분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그의 모습에 또 한번 감동했다.   

남편으로 인해 답답하고 화날 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남편 또한 나로 인해 부담스럽고 압박을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시간, 대부분의 상황에서 우리는 서로 잘 맞고, 서로에게 의존적이며, 그러므로 서로에게 서로가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이 사람 없이 이제껏 어떻게 살아왔나 싶을 정도로.

오늘 있었던 남편과의 긴 대화 덕에 나의 우울했던 마음이 많이 다독여진 것 같다.  그 덕에 긴 침묵을 깨고 다시 블로그에 글도 끄적여본다. 

긴 대화라 하기에는 오늘 낮 아이가 낮잠에 든 한시간 남짓한 시간의 대화가 전부였지만, 지난 몇달간, 아니 어쩌면 몇달 이상 이렇게 서로에게 집중하여 한시간여동안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시간과 여유가 없었기에 오늘의 대화는 더더욱 특별했다.

그래서인가, 대화 중에 남편과 나눈 눈빛, 나를 향해 뻗어준 그의 손길, 그리고 나를 따스하게 안아준 그의 품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나의 침묵을 깨어준 고마운 사람.  나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는 소중한 사람.  항상 고맙고, 깊이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