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밀이 나의 유학은 작년 3월로 종료되었다. 공부는 끝났지만 여전히 칼리지에 커먼룸 멤버 (Common Room Member) 로 소속이 되어 있어서 칼리지의 여러 소식들을 이메일로 받고 있다. 칼리지 미니버스 스케줄부터 매주 발간되는 뉴스레터며, 각종 소식이 메일로 전해지는데, 이런 일상적인 소식만 전해받던 중 어젯밤에는 한 친구의 사망 소식이 전해져왔다.
가끔 '원인'을 언급하지 않는 사망 소식을 전달받을 때가 있는데, 이럴 때는 대부분의 경우.. 자살인 경우가 많다. 나이 어린 학생이 사망을 하였는데, 특정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사망일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그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언급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 소식을 받자마자.. 가슴이 덜컥했다. 신학과 박사과정을 밟고있던 학생인데, 내가 학교를 다니던 중에 나와도 몇번의 이메일을 주고 받은 적이 있는 친구였다. '도대체.. 왜..어쩌다가...' 가슴이 먹먹해졌다. 동시에 칼리지는 얼마나 뒤숭숭할까.. 걱정도 되었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학교를 다니며 접했던 여러 죽음들이 떠올랐다. 이번에 사망한 그녀는 나의 지난 11년간의 영국생활 중에 접한 다섯번째 자살이다.
자살소식을 접할 때마다 그 죽음은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더 쓰라리고 아프다. 첫번째 접한 죽음은 친한 친구의 지도교수의 사망소식이었다. 영국 유수의 대학, 최고의 학과에서, 젊은 나이에 뛰어난 업적을 가진 훌륭한 과학자였던 그 교수는 부인의 질병사로 인한 충격에.. 부인 사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살을 하셨고, 그로 인해 내 친구는 물론 관계되는 많은 이들이 충격과 아픔은 물론 현실적인 고충까지 겪어야 했다. 유명한 대학의 교수도 이런 선택을 하기도 하는구나.. 하고 충격을 받았고, 그로 인해 여러 어려움을 겪는 친구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그지 없었다.
그래도 그의 죽음은 나에게는 간접적인 일이었다. 그로부터 몇달 뒤, 같은 기숙사 건물에 내 바로 윗층 건넛방에 사시던 한국분이 자살하셨다. 박사논문을 모두 마치고 심사까지 끝낸 후에. 심지어 심사도 통과하였는데. 추모식에 오신 그의 박사 지도교수는 그의 논문은 정말 훌륭했고, 책 출간 이야기까지 오갔다고 그의 죽음을 매우 안타까워하셨다고 한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논문심사 중에 받은 날카로운 비판들에 비관하여 죽음을 택한 것 같다고 하는데.. 그 속이야 누가 알랴.. 기숙사와 도서관을 오가며 그와 주고 받았던 목례와, 어딘가 우울해 보였던 그의 모습, 다가가서 말을 걸고 싶으나 타인의 접근을 거부하는 듯한 그의 행동들.. 그래서 나는 선뜻 다가가 말을 걸지 못 했었는데.. 그게 그리 후회가 되었다. 내가 다가가 말걸고 이야기 나누며 지냈다고 해서 뭐가 크게 달랐겠냐 싶지만.. 그래도 그렇게 안면있고 인사를 주고받은 이가, 그리고 겨우 2층짜리 아주 작은 기숙사 동에서 나와 위아래로 살던 이가 그렇게 자살을 하고 나니.. 그의 죽음은 늘 잊을만하면 떠오르는 아픈 기억이었다.
그리고 몇년 후.. 2011년 여름.. 또 한 언니가 자살을 했다. 이번에도 한국인. 나보다 늦게 박사과정을 시작한 그 언니는.. 전공이 독특한 인문학 분야라 딱 한번 만났음에도 그 언니의 이미지와 전공이 기억에 남았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언니였다. 짧은 머리에. 학기 초에 한번 인사를 나눈 뒤로는 만날 기회가 없은 채로 몇년이 흘렀는데, 그 후에 처음으로 듣게 된 소식이 바로 사망소식이었으니 이렇게 황망할데가. 죽기 전까지도 얼마나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었는지, 그녀의 사망 소식은 그녀가 다니던 영국 교회의 목사님을 통해 영국대사관으로 연락이 왔고, 영국대사관에서 다시 이곳의 마당발인 한인가족에게 연락이 왔다. 이런이런 학생이 사망했다고 하는데, 누군지, 어떤 학생인지 아느냐고. 그 댁에는 당시 연구년으로 영국에 와 계시던 한 교수님이 함께 살고 계셨는데 그 교수님께서 내게 물으셨다.
"혹시 그분이랑 친한 사람이나, 왕래가 있던 사람을 알고 있나요?"
"아... 모르겠어요... 입학 초에 한번 뵙고.. 그 뒤로는 못 뵈어서.."
"그 분이 그럼 어떤 분인지는..?"
"인사만 한번 한 사이라서.. 잘 모르겠...어..요.."
"아니, 여기에 한국학생이 얼마나 된다고 이렇게 서로를 모를 수가 있어요?"
".... 그러게요.... "
그 때 내가 느낀 부끄러움은.. 지금껏 살면서 '가장 부끄러움을 느꼈던 순간'으로 손에 꼽을 수 있는 순간 중 하나이다. 그 교수님 말씀대로 이곳에 한국 학생이 얼마나 된다고.. 누구라도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연결되어 있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일 수도 있었을테다.
나는 그 때부터 더이상의 자살소식은 듣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까지는 몰라도 최소한 내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자살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대단한 힘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주변에 힘들어보이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관심이라도 가지자 마음을 먹었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 대한 일정 부분의 책임이 있다는 마음으로. 그게 '이웃'으로서의 도리라는. 내 이웃을 돌보지 못하는 자가 박사면 뭐하고, 교수가 되면 뭐하랴.. 적어도 주변인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을 갖고 살아가는 것 또한 중요한 인간된 도리이리라.
그 뒤로는 한동안 자살 소식이 없었다. 한국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연예인들의 자살소식 외에는. (아.. 그리고 어린 10대들의 자살뉴스도.. 정말.. 마음이 아프다. ㅠ)
그 후 2017년. 기숙사를 청소하는 아저씨께서 내 건너건넛방 아이를 요 근래 본적이 있느냐고 물어오셨다. 방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이게 그 아이가 방을 비워서 문이 안 열리는 것인지, 아니면 혹시 뭔가 나쁜 일이 생기거나 해서 그런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무슨 소리냐고 되묻자, 당시 내가 살던 기숙사의 아랫층에서 2-3년쯤 전 한 학생의 방문이 한동안 열리지 않아서 강제로 문을 열어봤더니 그이가 자살을 했더랜다. ㅠㅠ (이 기숙사는 예전에 살던 기숙사와 다른 기숙사 건물이었는데.. 왜 내가 사는 기숙사에서는 매번 이런 일이.. ㅠㅠ ) 박사 논문 심사에서 떨어지고 비관하여 자살을 했다는 것. 다행히 당시 문이 잘 열리지 않던 내 이웃방은 단순한 문고장으로 인해 문이 열리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어쨌든 박사논문 탈락.. 그게 뭐라고.. 물론 몇년간 고생한 논문이 제대로 되지 않았으니 막막하고 속상하고 힘들 것이야 당연하다.. 그러나 그게 목숨과 바꿀 일은 아니지 않은가.. ㅠㅠ
그리고 바로 어제 들려온 소식, 또 하나의 자살 소식. 이번에도 인도 학생. 미국의 유명주립대에서 학부를 하고, 유명사립대에서 석사를 하고, 우리 칼리지에서 박사를 하던 학생. 내가 이 친구를 알게 된 것은 이 친구가 우리 칼리지에서 봉사활동으로 '복지담당관 (Welfare Officer)'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Welfare Officer라 불리는 이 자리는, 학생들의 복지를 담당하고, 함께 공부하는 동료들에 대한 정신건강 상담을 위해 대학에서 제공하는 상담교육과정을 이수해야만 가질 수 있는 직책이다. 나도 한때는 심각한 자살충동까지 느낄 정도로 우울증이 심각했던 적이 있었던지라,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이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에 Welfare Officer가 되어볼까 하여 지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상담교육과정이 생각보다 빡빡해서 도저히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지 않는 것 같아 포기했었다. 그 때 내가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이 봉사활동에 대해 이야기 주고 받았던 이가 바로 이번 사망 소식의 주인공이었다.
이번에 알고 보니 이 친구는 전공도 신학이란다. 신학의 핵심은 사랑일지언데... 사랑을 연구하던 이가..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앗아가다니.. ㅠㅠ
오늘 아침에는 사실 달리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들지 않았다. 너무 오랫만에 달리기를 한 탓에 근육통이 여전히 남아있었고, 어제 하루 쉬었더니 오늘도 그냥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게다가 새벽수유와 함께 잠이 깨서 놀던 우리 잭이 6시가 좀 넘어 다시 잠이 들었고, 그 덕에 틴틴과 나도 꿀맛같은 아침잠을 즐기고 있었다. 그저 그 잠을 좀 더 즐기고 싶었으나.. 무거운 몸을 일으켜 뛰러 나갔다. 밖에 나가 달리기라도 해야 어젯밤 접한 이 가슴아픈 사망 소식으로 인한 착잡함을 떨쳐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나다를까.. 달리기의 속도가 느려서였을까.. 지금껏 접했던 이 모든 죽음들이 하나씩 하나씩 머릿속을 지나갔다. 거기에 더하여 10대였던 딸이 약물복용으로 사망한 틴틴의 동료 생각도 났고, (그 아버지도 딸의 죽음으로 인해 생긴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리기를 할 때마다 모금을 하여 전액을 청소년 정신건강 관련 자선단체에 기부를 한다.) 노회찬 씨의 죽음도 생각이 났다 (몇년전 노회찬씨가 우리 칼리지에서 강연을 하셔서 강연도 듣고, 함께 사진도 찍고, 저녁도 함께 먹었었는데.. 그 마음 좋던 호빵맨.. 너무 마음이 좋아 보여서 저분은 대통령이 될 수는 없겠구나.. 싶었던 그 정치인이 사망했다..ㅠ). 약 15년 전에 칼리지에서 자살소동을 벌인적이 있다는 칼리지 재정담당 남자 직원분도 떠올랐다. 그 소동을 벌였으나 그는 지금 같은 칼리지에 행정직원 한분과 사귀며 점심시간마다 손을 잡고 인근 공원을 산책하며 잘 살아계신다. 볼 때마다 참 기분이 좋다.
오늘 아침에는 틴틴에게 경고를 하고 집을 나섰다.
"나 뛰고 올테니, 애 보면서 알아서 출근준비 틈틈히 하고 있어요. 나 집에 오면 좀 늦을거야"
그리고 나는 예정된 3마일 (4.8킬로)을 넘어 5킬로를 채워 달린 후 집으로 돌아왔다.
달리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를 보더니 틴틴이 묻는다.
"몽실, 잘 뛰었어? (내 얼굴을 보더니) 왜 그래? 달리기 하던 중에 무슨 일 있었어? 이상한 사람이라도 마주친 거야?"
"아니.. 아무 일 없었어."
"그런데 왜 그래?"
".... 응.. 어젯밤에... 칼리지에서 이메일이 왔는데..."
하고 이야기를 했다. 틴틴은 나를 그저 꼬옥 안아줬다.
오늘 틴틴은 나 때문에 2-3분 정도 지각을 했을 것이다.
"틴틴, 오늘 늦게 가니까, 10분 더 일 하고 돌아와요.."
라고 하며 출근길 인사를 건넸다.
하루종일 기분이 착잡했다.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 또 한번 일어났구나. 정신건강이 이렇게 중요하다..
현재 나의 첫째 조카가 중학교 2학년. 고등학교 입시로 한창 바쁘다고 한다. 조카와 통화할 때면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수경아, 공부 너무 열심히 안 해도 돼~ 공부 잘 하면 좋지만, 못 해도 괜찮아. 공부 잘 해 봤자 고생길이야. 공부 잘 하고 좋은 자리에 있어도 행복하지 못한 사람도 너무 많고. 이모가 주변에서 그런 거 엄청 많이 봤잖아. 그러니 공부 잘 하면 좋지만 못 해도 그만이니, 힘들게 생각하지 말고 편하게, 너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싶은 만큼만 적당히 해~ 알았지?!"
이제는 나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다. 이제 겨우 오늘로 8개월이 된 아이지만, 이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오만가지 생각이 모두 다 떠오른다. 나는 이 아이가 어떤 아이가 되기를 바라는가, 이 아이는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인가, 나는 이 아이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가, 나는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할까.
다른 건 몰라도 나는 우리 아이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주변의 아픔을 지나치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대단한 학교를 나오지 않고도, 대단한 직업을 갖지 않고도,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고, 소소한 행복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웃과 마음을 나누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런 아이로 키우고 싶은데, 과연 내가 그럴 역량이나 깜냥이 못 되는 것 같아 걱정이다. 두렵기도 하다.
* * *
글로 적고 나면.. 좀 떨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여전히 마음이 무겁다. 한동안 또 여파가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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