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2017-20

오늘의 육아: 생후 8개월, 5초간 손 놓고 선 둘째, "따분하다"는 첫째와의 기싸움

옥포동 몽실언니 2020. 9. 15. 07:35

일을 하지 않는 날에는 짧게라도 이렇게 육아기록을 남겨볼까 합니다.

기억력이 나쁜 저는 이렇게라도 기록을 해 두지 않으면 아무 것도 기억을 못 하더라구요.

둘째 뚱이의 하루: 7개월 29일

저희 둘째 뚱이는 내일이면 8개월을 꽉 채우게 되는데, 벌써 혼자 서기 시작했어요. 

한 손만 잡고 서 있는 건 쉽게 하는데, 어제는 양손 모두 놓고 혼자 2초 정도 서 있더니 오늘은 5초 이상 서 있었던 것 같아요. 

저도 놀라고 본인도 놀라고. 

응? 뭐야, 지금 손 다 놓고 선 거야? 생각하며 아이를 바라보는데, 아이의 표정도 "나 지금 뭐 하고 있는거야?" 하는 표정이라 웃음이 납니다.  자기가 하면서도 자기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모르는 듯한 표정.  

둘째 뚱이는 확실히 대근육 발달이 빠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목을 잘 가누더니, 허리에 힘도 좋아 기기도 잘 기고, 앉아있을 때도 허리가 꼿꼿이 서 있습니다. 

그런데, 소근육 발달은 아주 더뎌요.  오늘 쌀 튀밥을 줬는데, 단 한 알을 제대로 주워먹지 못해요.  잭은 이 시기에 손가락으로 부드러운 딸기도 집어먹고, 블루베리는 당연하고, 작은 쌀 튀밥도 문제 없이 집어먹었거든요. 

그러는 사이 뚱이는 치아가 어느새 6개가 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났던 두 개의 앞니 옆으로 이가 두개 모두 나왔어요.  이 끝만 살짝 보이지만, 아이도 자기 잇몸에 나온 새 이빨이 신기한지 연신 혓바닥으로 자기 새 이빨의 감촉을 느껴보는 듯합니다.  그 때마다 혀를 낼름 낼름~ 귀여움도 폴폴~


첫째 잭의 하루: 33개월 4일

요즘 잭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있어요.

"따분해."

아이들의 언어 습득 능력은 정말 놀라워요.  아이 앞에서 따분하다는 말을 써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고, 아이 책에서도 따분하다는 표현이 나온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은데, 아이가 이 단어를 듣는 순간 "아, 이건 내 단어야!" 하는 듯한 반응, 씨익 웃으며 "응, 따분해."라고 하더니 이젠 걸핏하면 "엄마, 따분해." 하고 저에게 와서 보챕니다.

이 표현을 즐기게 된 데에는 사연이 길어요. 

*****

아이가 지지난 금요일.. 그러니까 9월 4일 금요일이네요.  그날 큰 사고를 쳤어요.  자기 마음대로 해 주지 않는다고 화가 난 나머지, 물 컵에 들어있던 물을 일부러 바닥에 쏟아 부었는데, 그걸로 저희가 자기를 혼내려 하자 아이는 더 큰 반항의 의미로 그 물 컵을 바닥에 집어 던진 사고였지요.  그 컵은 저희가 아이용으로 올 봄에 사 준 포트메리온 모카컵.  아이 손 크기에 딱 맞는 에스프레소 잔이었어요. 

쨍그랑.....

아이는 그게 깨지는 그릇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 머그잔을 던지기 전 0.1초 가량 머그를 보며 망설이는 게 눈에 보였어요.  아이가 그 잔에 있던 물을 바닥에 쏟기 무섭게 제가 그 컵을 아이 손에서 뺏으려고 했는데... 아이는 0.1초 망설임 뒤에, 저에게 그 머그를 빼앗기기 전에 재빨리 그 컵을 던져버린 거지요.  부엌 바닥을 향해, 아주 힘차게!

(사진: 그 사건 이후, 아이는 다시 이케아 플라스틱 그릇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저희는그 다음 한 주간 내내 고난의 한 주를 보냅니다.

아이의 나쁜 행동을 고치기 위해 일관성 있게 아이를 혼내기로 명확하게 원칙을 세웠어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나쁜 행동 3가지: 공이 아닌 물건 던지기, 다른 사람 때리기, 음식으로 장난치기.  그 행동들을 했을 때는 2분간 거실 구석에서 아이와 함께 침묵의 시간을 가지는 거죠. 

아이는 그 시간에도 반항. 저희는 아이를 제압하려 하고, 저희가 제압하려 하면 할 수록 아이는 더 거세게 반항.  

그렇게 지지고 볶으며 돌파구가 없는 듯한 힘든 시간을 보내다가 며칠 전 전환점이 찾아왔어요. 

아이가 나쁜 행동 (공이 아닌 다른 물건 던지는 것, 다른 사람 때리는 것, 음식으로 장난하는 것)을 하면서 "나쁜 행동 할 거야!" 라는 말을 하며 책을 던지는 게 아니겠어요.

그 때 저는 아차.  이 아이가 자기가 무슨 행동을 하는지 다 알고 있구나.  알면서 하는 거구나.  이 아이는 내게 자기를 알아달라고 메세지를 던지고 있었던 거구나.  그제야 깨달았어요.

그리고 그날 저녁,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가 잭에게 "화 나요." 라고 말을 하라고 부탁해보라는 조언을 해 줍니다. 

그리고 저희는 그날 저녁 대타협의 시간을 가졌지요. 

"화 나요." 혹은 "나쁜 행동 할 것 같아요.", "나쁜 행동 하고 싶어요." 등 뭐라고든 말하면 엄마 아빠가 바로 달려가서 나쁜 행동 하지 않게 도와주겠다고.  왜 화가 났는지, 왜 나쁜 행동이 하고 싶은지 물어본 후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했어요. 

그럼, 잭은 나쁜 행동을 하지 않아서 좋고, 벌을 받지 않아도 되니 더 좋고, 엄마 아빠도 잭이 나쁜 행동 하지 않아서 좋지 않겠냐고.

그랬더니 아이도 대답합니다.

"좋아."

자기도 그게 좋대요. 

그래서 그 다음날부터는 아이가 "화나요." 혹은 "나쁜 행도 하고 싶어요.", "나쁜 행동 할 것 같아요." 등 다양하게 자신의 심경을 표현하기 시작했어요.

그럼 저는 당장 달려가서 왜 그러냐고 이유를 물었죠.

"심심해? 배고파서 그래? 피곤해서 그래? 졸려서 그래? 따분해?"

하는데 아이가 "따분해?"에서 눈이 번득이더니, 씨익 웃으며 "응, 따분해."

아이의 그 반응에 저는 깜짝 놀랐어요.  얘가 이 단어를 어디서 배웠나. 어떻게 알고 따분하다고 하는 걸까.

저는 언니에게 코칭받은 대로 대답해줬어요.

"그럼 뭘 하면 안 따분할 것 같은지 생각해봐. 그럼 엄마가 그거 같이 해 줄게."

그랬더니 아이가 잠시 생각하다가,

"브리오 기차 놀이"

라고 대답했어요. 브리오 기차 갖고 놀면 안 따분할 것 같다구요. 

그래서 저희는 한동안 창고에 넣어두었던 브리오 기차 세트를 다시 꺼내 거실을 난장판으로 만들며 놀았습니다. 

그 뒤로 아이는 따분하다는 것이 표현이 재밌는지, 소리가 재밌는지, 새로운 단어라 마음에 드는 것인지 걸핏하면 제게 와서 "엄마, 따분해" 타령 중입니다.

오늘도 그 따분해를 몇 번이나 들었나 몰라요. 

그러다가 저를 또 발로 찼고 (아주 살짝, 아주 약하게 손가락으로 건드리는 정도의 강도로 찼지만, 찬 건 찬 것인지라..) 그걸로 아빠에게 호되게 혼났어요. 구석에서 벌을 오래 섰죠. 

그 바람에 저는 아이의 나쁜 행동에 속상하고 화가 나서 아이와 놀아주기가 힘들다고 태세를 전환하였고, 아이는 열심히 혼자 노는 신공을 펼쳤습니다.  따분하다고 타령을 하던 아이가 저렇게나 혼자서 잘 놀다니.  너무 재밌게 놀아서 가서 저도 같이 놀 수 있게 해 달라고 사정하고 싶었을 정도입니다. 

어쨌든 그 시간 덕분에 저는 책을 서 너정 정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서너권이 아닌 서너장 정도 갖고 뭘 이리 좋아하냐구요?  그게 어딥니까.  이 전에는 애 보면서 책을 읽을 수 있었던 날이 단 한번도 없었는데, 그랬던 시간에 비교하면 엄청난 발전이에요.  제가 몇 장도 못 읽는 그 와중에도 잭은 몇 번을 제 옆에 와서 제 독서를 방해하던지.  서너장이라도 읽을 수 있었던 것에 전 감지덕지합니다.  그게 제 신세입니다.

이렇게 저와 아이들의 하루가 또 갔습니다.

오늘 다른 일을 좀 하고 자려고 했는데, 오늘은 피곤해서 그냥 자야겠어요. 저도 하루 이틀은 좀 쉬어가야지요. ^^  블로그 글을 자주 못 쓸 거라 했는데, 생각보다 자주 올리고 있어서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그럼 모두들 즐거운 한 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