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in 2022

아픈 아이를 어린이집에 들여보내는 마음...

옥포동 몽실언니 2022. 4. 1. 18:28

결국 일이 터졌다.

어제 아이의 어린이집에서 열이 많이 나니 아이를 일찍 데려갔으면 좋겠다고 연락이 왔다.  무슨 일인지 내게는 전화가 오지 않았는데, 내 전화가 안 된다고 남편에게 전화가 왔단다.  남편의 연락을 받은 나는 깜짝 놀라 얼른 아이들 간식을 싸서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시간은 오후 4시 남짓.  큰 아이 잭이 평소에는 엄청나게 활발한데 어제는 무슨 일인지 아이가 밖에서도 멀뚱히 서 있고, 자전거 타겠냐고 물어도 싫다고 하면서 가만히 있더란다. 

야외 놀이시간이 끝나고 방으로 돌아와서도 아이가 혼자 멀끄럼히 앉아있어서 평소와 다른 모습에 이상하다고 생각한 선생님이 아이를 만져보니 아이가 뜨거웠다고 했다.  체온계로 재어보니 38.6도.  선생님들은 아이에게 얼른 해열제를 먹이고 바로 나에게 전화를 했는데, 내 전화가 연결이 되지 않으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어린이집에 갔을 때는 오후 간식을 먹느라고 아이가 친구들 사이에 잘 앉아 있었다.  평소보다 일찍 온 엄마를 반기는 아이.  동생 뚱이는 영문도 모른채 엄마가 일찍 와서 동생도 신났다. 

아이들은 내가 집에서 싸온 딸기와 자두를 먹으며 집으로 갔다. 

집으로 돌아오자 잭이 기운이 없는지 소파에 기대어 앉아 티비를 보겠다고 했다.  몸도 안 좋은데, 그리하라고 하며 포 페트롤(퍼피 구조대)를 틀어줬다. 

아이들이 티비를 보는 사이 나는 오전에 사둔 닭고기에 각종 야채와 현미찹쌀을 넣고 얼른 닭죽을 끓였다. 

어린이집에서 먹은 약이 효과를 보였는지 열이 좀 식은 아이는 그제야 몸을 좀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같이 3층 방에 올라가서 레고도 좀 만들고 놀다가 다시 거실로 내려온 우리들.  우리가 레고 놀이를 하는 사이 닭죽이 완성됐다. 

그 때 잭은 케잌을 굽겠다고 해서 어제 사온 밀가루를 내어주니 혼자서 온갖 재료들을 준비하여 자기 나름의 레서피로 신나게 케잌 반죽을 만들었다.

아이가 반죽을 만드는 사이 나는 닭죽을 한대접 가득 퍼서 우리 잭과 뚱이 동갑 아이들을 키우며 약 3주 후 셋째 출산을 앞둔 옆집 Anna에게 닭죽을 가져다줬다.   Anna는 다음주까지만 일을 하면 이제 육아휴직을 한단다.  

나를 따라서 옆집에 다녀온 뚱이는 집으로 돌아오더니 자기도 형아 옆에서 밀가루를 하고 싶다고 했다.  둘째 뚱이에게도 큰 통 하나에 밀가루를 담고 물을 조금 넣어줬더니 뚱이도 밀가루 반죽을 뒤적뒤적, 주물주물 재미있어 했다. 

어제는 남편이 없는 날이라 나 혼자 아이들을 챙겨야 했다.  아이들이 한참 밀가루 놀이에 신이 났는데 밥을 먹어라, 정리하고 그만해라 잔소리하기가 힘들었던 나는 놀고 있는 아이들 옆에 서서 아이들 밥을 먹였다.  

밥을 먹을 때는 제자리에 앉아서 밥을 먹는 걸로 습관을 들여야 하는데, 말 안 듣는 아이들과 씨름하는 게 힘든 나는 자꾸만 나 스스로 이렇게 규칙을 어긴다.  이게 안 좋다는 걸 알면서도 잔소리하고 아이들 울음을 듣는 게 싫어서 내가 내 무덤을 파는 꼴.  그러나 어쩌랴.  나도 힘든데. 


그렇게 아이들 저녁을 먹이고 나니 남편이 도착했다. 

남편도 회사에서 어린이집 전화를 받고 아이도 걱정되고 혼자서 고생할 나도 걱정되어서 회사에 말을 하고 한시간 일찍 회사를 나섰다고 했다.  그런데 어제는 때 아니게 영국에 눈이 와서 교통이 엉망이었고, 예정된 기차는 연착에 연착을 거듭하여 한시간 일찍 나왔는데도 집에 돌아온 시간은 평소와 똑같았다.  

더 일찍 와주지 못해서 미안해하는 남편.  남편 먹을 닭죽을 한대접 퍼주고, 나도 한그릇 퍼서 남편이 옷 갈아입는 동안 나는 내 닭죽을 마셔버렸다.  그렇다.  그건 먹는 게 아니라 마시는 것에 버금가는 속도였다.  애들 컨디션이 안 좋고, 남편도 피곤하니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아낄 수 있는 시간은 먹는 시간 뿐이다. 

아이들 돌보기를 티비에 의존하면서 남편이 밥먹는 동안 남편과 대화를 좀 나누고, 남편은 뒷정리를 하고 나는 티비 보는 잭 가까이 와서 뚱이와 책도 보고 티비도 같이 보면서 다같이 쉬었다. 

잭은 잠시 열이 식다가 다시 열이 오르는 것 같아 해열제를 한번 먹이고 잠을 재웠다. 

누워서 같이 책을 좀 보다가 불을 끄자 큰 아이 잭은 혼자서 중얼중얼 말을 좀 하다가 엄청난 데시벨로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뚱이는 아빠 품에 꼭 안겨 잠들었다.

밤새 잭이 열이 더 심해지면 어쩌나 마음을 졸이며 잭과 뚱이 옆에서 잠을 잤다.  잭은 신나게 잘 자다가 몇 번을 뒤척이며 힘들어했다.  그때마다 나는 일어나서 아이 이마도 만져보고, 안아주기도 하고, 이불을 덮어주기도 하고, 누운 자리를 바꿔주기도 했다.  이래서 아이가 아프면 부모는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아침이 되었는데 아이가 아직 따끈따끈하다.  이럴 어쩐담.

나는 다음주가 데드라인이고, 이제 일이 밀려서 더이상은 시간을 뺄 수가 없는데.  꼭 이렇게 시간을 뺄 수 없는 때에 무슨 일이 생겨도 생기고 만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서 더 일찍 일을 끝내고자 노력했지만, 그 노력을 하는 중에도 아이들이 계속해서 번갈아가며 아프니 나의 그런 계획은 다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어제 먹고 남은 닭죽을 오늘 아침에도 데워 먹였다.  뚱이는 한그릇을 다 먹었고, 잭은 3분의 2정도만 먹고 남겼다. 

아이에게 해열제를 한번 더 먹이고 아이를 지켜봤다. 

얘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보내지 않자니 내 일의 압박이 너무 크고, 아이를 보내자니 열꽃이 펴서 얼굴이 벌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마음이 아팠다. 

그래, 다음주까지만이다.  이제 다음주에 내 일만 끝내면 이후에는 언제라도 아이가 아프면 마음 편하게 아이를 데려올 수 있고, 집에서 데리고 있을 수도 있다.

약속된 일은 해야 하니 일단은 어린이집에 보내자.  다시 안 좋아지면 연락 줄테니, 그 때 다시 데려오면 되니까. 

이럴 때 친정이 근처에 있다면 엄마 아버지께 아이를 부탁드릴텐데.  부모가 그러라고 있는 건 아니지만, 부모라면 그럴 때 언제라도 자식을 도와주고 싶은 심정이실텐데.  

영국에서 우리끼리 살면서 둘 다 전업으로 일을 하며 아이를 하나가 아닌 둘을, 그것도 나이가 2세, 4세로 어린 아이들을 온전히 케어하겠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잭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오늘은 등원길에 남편도 함께 따라나섰다.  우리 가족이 문 앞에 서자 Karen 선생님이 나와서 우리를 맞았다.

"Are you feeling okay, Sunwoo?"

아이에게 몸 괜찮냐고 묻는 선생님.  옆에 있는 우리에게 묻지 않고 아이에게 직접 물으셨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시나리오. 

아이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러자 Karen은, "Good!" 하며 아이를 반겨줬다.   

난 Karen에게 아이가 아직 열이 좀 있긴 한데, 마음 같아서는 내가 데리고 있고 싶은데 지금 중요한 데드라인이 있어서 시간을 뺄 수가 없어서 일단은 데려왔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선생님도 그러냐고,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이 상태가 안 좋아지거나 하면 언제라도 연락을 달라고 말하자, 옆에 있던 남편도 자기도 오늘 집에서 일하고 있으니 아이 상태가 안 좋으면 언제라도 데리러 올 수 있으니 연락달라고 덧붙였다.  어제 저 Karen선생님이 전화를 했는데, 남편이 지금 런던이라고 하자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은 집에 있으니 안심하고 연락달라고 덧붙인 거라고 했다.


형아가 이렇든 저렇든 상관없이 아빠 엄마 모두와 등원한 게 신난 뚱이.  

형아를 넣어주고 나서 자기 방으로 가는 짧은 산책에 신이 났다.  첫째 잭이 있는 Upper Pre-School 의 입구와 둘째 뚱이가 있는 Lower Pre-School 입구는 제법 떨어져있어서 어린이집 가든을 통해 몇 십미터 되는 거리를 걸어가야 한다.  아이는 한 손에 엄마, 또 다른 손에 아빠 손을 잡고 팔짝 팔짝 뛰며 즐거워했다.

오늘은 잭이 열이 있긴 하지만 적어도 울지 않고 어린이집에 들어가서 다행이었다.  아이가 어제나 그저께처럼 울기까지 했다면 내 마음은 더 무겁고 무너져내렸을 거다. 

집으로 돌아오며 마음이 무거웠다.  얼른 다음주까지 일을 끝내고 이 무시무시한 생활을 정리해야겠다는 마음만 들었다.  그 때까지만이라도 아이가 잘 버텨줬으면 좋겠다. 

지난 1년 간 아이들을 풀타임으로 보내본 결과, 아이를 온종일 맡기고 온종일 직업에 종사하는 것도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풀타임으로 아이들만 돌보는 것도 정말 힘든 일이다. 

엄마인 내가 일을 할지, 아이를 맡길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참 다행인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 둘의 선택에 댓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일을 한다면 힘들긴 해도 소득이 조금이라도 늘고, 일을 하지 않는다면 아이들 방학이나 방과후 돌봄을 신경쓰지 않아도 좋긴 하지만 우리 가족이 가용할 수 있는 소득도 줄어든다.  시간은 벌지만 소득은 줄어들고, 장기적인 내 커리어에 대한 불안도 생긴다. 

아이들이 지금같이 어린 때에는 아이를 맡기는 게 큰 돈이 들지만, 2년 반 뒤에 둘째 뚱이도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는 방학이나 방과후 돌봄에나 돈이 들지 평소에는 돈이 크게 들지 않을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건 그 때가서 고민하자.  

오늘 부디 아이가 잘 버텨주기를.  난 이제 내 일을 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