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일상

[엄마일기] 오랫만에 맞이하는 새벽 - 돈 안 받고 일하는 엄마의 속사정

옥포동 몽실언니 2024. 12. 7. 12:21

예전부터 나는 새벽을 참 좋아했다.  블로그를 켜고 시계를 훌쩍 보니 오랫만에 내가 새벽에 깨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예전에 좋아했던 새벽은 일찍 일어난 새벽이었으나, 지금 깨어 있는 새벽은 잠 이룬 새벽이라는 점이다. 


일을 했다.  밀린 일을 했다. 그러느라 잠 못 자고 새벽을 맞았다.  새벽 2시 37분.  태풍이 온다더니, 창 밖의 바람소리가 내 마음마저 심란하게 하고 있다.


아이를 낳고 나름대로 열심히 이 일, 저 일, 기회가 닿는대로 일을 하며 지냈다.

그렇게 내가 해 온 일들은 사실 8할이 돈이 지급되지 않는 일들이었다.  자발적으로 하는 일들이었고, 내가 좋아서 하는 일들이었다.  내가 느끼는 기쁨과 보람을 위한 일들을 하느라 집안살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늘 마음에 걸리긴 했다. 그렇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내가 살 것 같았다. 그렇게라도 해야만 언제라도 내 학위를 활용한 커리어를 갖게 될 수 있을 거라는 실날같은 희망의 끈을 품고 있을 수 있었다. 

그마저도 하지 않으면 긴 시간을 들였던 내 석사시절 공부와 박사시절 공부가 모두 추억거리로만 만게 될 것이 두려웠다. 

그리고, 학위를 활용해서 커리어에 진입하는 것이 내가 가진 돈벌이 옵션 중에서도 나은 옵션일 거라는 생각에 이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봐도 내가 밥벌이를 안 하고 살아도 될 처지는 아니니, 이것 저것 다 따져볼 때 어떻게든 연구활동을 이어가서 연구직 일자리를 구하는 게 나한테는 제일 실현가능성이 높은 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들은 최근들어 내가 가졌던 연구에 대한 열정과 열망을 삼켜버린 것 같은 생각마저 들게 했다. 애초에 내게 그런 것이 있기나 했던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살다보면 꿈도 변하기 마련인 것을.  내 처지도 변하는데, 꿈만 변하지 않는 것은 인생에 괴로움만 더할 뿐이다. 


아이의 ADHD 진단은 예상했던 결과라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그게 나름 큰 충격이었던 것 같다.  결과를 받고 내내 심란했고, 이번주 월요일이나 화요일 쯤이면 마무리할 거라 생각했던 일을 금요일 새벽까지 끌고서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자꾸만 한숨이 났고, 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이에게 최고의 것만을 주고 싶은 것이 어미의 마음. 그러니 고민에 끝이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최고의 것'은 주관적이며, 언제나 변하며, 아무리 최고의 것만이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인지 또한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아이의 진단명이 나온 날, 같은 반 학부모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았다. 그것도 내 심란함을 가중시키는 일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한국에서 들려온 계엄선포를 시작으로 한 정치적 혼란. 

놀란 친구 둘에게 연락이 왔다.  소식을 들었을 당시에는 나는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그런 내 모습에 한 친구가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난 한국 민주주의 수준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국의 정치적 수준이 그런 일로 완전히 무너질 수준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소식을 들은 이틀 뒤부터는 나도 동요했다.  이건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어수선한 국제적 정세 속에서 중장기적으로 한국이 어떻게 될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영국은 어떻게 될지, 우크라이나 전쟁은 언제쯤 끝이 날지.. 이러한 어수선한 정국에 우리 가족은 어떻게 가계를 꾸려가야 할지, 어떻게 아이들을 키워내야 할지, 모든 것들이 얽히고 얽혀서 고민이 가중되었고, 마음이 복잡하기만 했다. 


그러다 오랜 지인들과 통화를 했다.  어제는 옥스퍼드에 있는 ㅇㅅ 언니와 통화를 하며 아들 양육의 고충을 토로했고, 오늘은 어제 통화에서 잠시 등장했던 옥스퍼드에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간 ㅅㅎ이와 통화를 하며 근황을 주고 받았다. 몇 년만에 한번 하는 통화였음에도 나를 품어주고, 내 상황을 이해해주며 따뜻한 마음을 내어주는 고마운 이들.  마음이 따뜻해졌다.  


코로나19로 시작된 팬데믹 정국에 영국의 모든 공식 문헌에 사용되던 문구가 있었다. 전례없는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표현이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며 이제 그러한 시대가 끝났다 생각했는데, 우크라니아 전쟁, 계속되는 물가인상, 지속적인 영국의 경기침체, 트럼프 대통령 당선, 한국의 계엄령 사태... 코로나19는 끝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이었던가!  아니, 우리에게 있어서의 불확실성과 혼란의 시작은 애초에 영국의 브렉시트부터 시작된 것이었던가.  


고민들에 머리가 아팠지만, 그럴수록 생각난 것은 건강! 

아이가 ADHD가 있어도 건강하니 다행이고, 우리도 건강을 잘 챙기는 게 뭣보다 중요하다는 생각.  그런 점에서 늦은 새벽까지 깨어있는 건 건강에 안 좋으니 얼른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기로. 

그리고, 이번 주말, 건강한 집밥과 건강한 생활을 하며 활기차게 보내기로 한다!  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