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공부하기/석박사과정 공부

학위 논문 쓰기: 교정을 꼭 받아야 하나요?

옥포동 몽실언니 2019. 12. 16. 01:46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오늘 갑자기 한글 교정이 가능한지 지인에게 연락을 받고 물론 가능하다고 덥석 승낙을 해 주고 나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간단히 쓰자면,
 
한국에서든 외국에서든 학위논문을 쓰고 나면 반드시 해당 언어의 원어민, 그 중에서도 그 분야의 전공자나 유사분야 전공자, 아니면 전문 교정가에게 반드시 교정을 받을 것을 권한다. 
 
나도 유학 중 처음에는 영어교정을 잘 받지 않았다.  짧은 글을 한번 두번 쓰는 것도 아닌데 그때마다 교정을 맡기는 게 번거롭기도 했고, 돈도 아깝고, 계속 해나가면서 영어가 늘 거라는 근거없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가끔씩 유학한 친구나 선배들 중 좋은 지도교수를 만나서 지도교수가 영어를 많이 고쳐준다는 훈훈한 이야기를 들은터라 나에게도 그런 행운이 있지는 않을까 바라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은 어느 순간부터 지도교수님께 제출하는 글은 무조건 영어교정을 받았다.  그 이유는,
 
첫째, 항상 마감에 급하게 글을 마무리하므로 내가 스스로 내 글을 찬찬히 다시 읽으며 내가 의도한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는지 확인할 시간이 없다.  그러므로 타인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최소한의 문법 교정과, 의미 전달이 안 되는 문장이나 표현에 대한 지적을 받아야 한다. 
 
둘째, 최소한 문법적인 문제라도 없어야지 지도교수와 만나는 수퍼비전 시간을 더 알차게 보낼 수 있다.  힘들게 미팅을 하는 그 시간 내내 내용에 대한 토론보다 내가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는지 내 글에 대한 부연설명을 하는 데 시간을 보낼 수는 없으니까. 
 
셋째, 내 글은 내가 봐도 잘 안 보인다.  특히, 글을 탈고한 직후에는 더더욱 안 보인다.  나는 그 글의 내용 속에 너무 깊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내가 쓴 글이 있는 그대로 읽히기 보다는 내가 읽고 싶은대로, 내가 썼다고 믿고 싶은대로 읽히는 경향이 있다.  
 
넷째, 영국에서 영어 전문 교정가에게 교정받는 비용은 한국에서 교정업체에 교정받는 비용보다는 저렴하다.  생각보다 어마무시한 비용이 드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매번 하려면, 또 몇년간 받으면 그 비용이 만만치 않기는 하다.  그러나 한국에서 생각하는 만큼, 혹은 한국의 일부 업체에서 청구하는 만큼 비용이 그리 높지는 않다.  
 
일례로, 비영어권 국가에서 영어로 학위논문을 쓰던 후배가 한국업체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교정서비스를 받았는데, 교정을 받은 후에 나에게 보내온 글의 문법 교정 수준이 형편없었다.  게다가 그 비용은 영국에서 24시간 내로 해주는 교정비용보다 더 비싼 수준이었다.  나는 그 후배에게 당장 그 업체 이용을 멈추라고 하고, 내가 당시 이용하던 교정가를 소개해주었다.  그리고 그 후배는 내가 소개해준 서비스에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교정에 대한 생각은 한국 논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국어 문법에 강한 편이었다.  한글 쓰기를 배운 것은 분명히 학교에 들어가서 배운 것 같은데 (공책에 ‘어머니’ 이런 단어를 배우며 글씨를 쓰던 게 기억이 난다) 어린 시절 받아쓰기시험에서도 한 두번을 빼놓고는 항상 백점이었고, 고등학교 때 선택과목으로 있던 ‘문법’ 과목도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항상 성적이 잘 나왔다.  공부를 따로 안 했기 때문에 100점을 맞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수'를 받은 것만은 기억이 난다.  뿐만 아니라 나는 희한하게도 글을 읽을 때 맞춤법이 틀린 곳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그게 내 눈에 잘 들어오는 편이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석사 논문을 썼을 때도 다른 사람들의 논문에 가끔 오타가 발견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최대한 오타가 없게 하려고 몇번을 탈고하는 과정을 거쳤고, 실제로 오타가 내 기억에.. 하나쯤 있으려나.. 아님 거의 없는 논문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 한글 논문도 글이 앞뒤가 맞지 않거나, 주술이 일치하지 않거나, 표현이 어색하고 문장이 장황하여 전달력이 떨어지는 상태로 탈고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나도 학위논문이 아닌 글에서는 그런 적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언제나 마감에 쫒기다 보니 정신없이 글을 써서 마무리하는대로 보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그러나 영국에 와서 논문을 쓰는 동안 글쓰기 훈련을 받으면서, 명확한 글쓰기, 정확한 의미 전달, 간략하고 명료한 표현, 정확한 논리적 연결고리 사용 등에 대해 배우면서 글쓰기에 있어서 좀 더 엄격해진 것 같다.  박사과정 하는 동안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이 ‘글쓰기 훈련’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한글로 글을 쓰다가 영어로 글을 쓰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이 막힌다.  그 이유는 영어로 글을 쓰려면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아주 정확하게 영어로 옮겨져야 하는데, 우리 머릿속에 있는 생각은 아주 명료하고 논리적이지 않은 상태에서도 한글로는 뭐라도 작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을 영어로 옮기려면?  불가능한 게 당연하다.  한국어 원어민이다 보니 말이 안 되는 소리도 한글로는 그럴싸하게 적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그걸 영어로 옮기려고 하다 보면 내가 적은 글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을 그제야 깨닫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한국어 글도 한국어 교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한국어 교정은 누구에게 받을 수 있는가?  가장 좋은 것은 믿을 만한 지인이다.  지인 중 같은 분야에 있고, 한국어를 깨끗하게 구사하거나 작문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쓴 글을 보여주고 코멘트를 받고, 어색한 문장을 지적받고, 틀린 문법 (맞춤법, 띄어쓰기 등)을 교정받는 것이다.  
 
박사 과정 중에야 알게 된 것이, 영국이 교수들도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많은 경우 영어교정자를 고용한다.  우리 지도교수님 같은 경우에는 유사분야에 종사하는 자신의 부인이 (현재는 전부인 ㅠㅠ) 자신의 오랜 시간 교정자였으며, 내가 박사를 하던 중에 우리 과 포닥이던 친구는 자기 아빠가 자신의 박사논문 전체를 읽고 교정을 해줬으며 (아빠가 유명 신문 에디터), 또 다른 영국 친구도 아빠가 자신의 논문을 모두 읽어줬으며, 심지어 우리 교수님도 자신의 사위 박사논문을 2박3일에 걸쳐 교정을 해줬다. 
 
그렇게 영국인들도 다른 사람을 고용하거나 이용하여 영어교정을 한다.  그런데 우리 한국인이라고, 한국어라고, 와이 낫?!
 
한국에서 이런 저런 경로로 학술논문이나 보고서 등의 평가를 할 일이 종종 있었는데, 보고서는 기관의 검토를 한번 거쳐 나와서 좀 덜 한 편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학술논문 심사용 제출본에서도 가끔 말도 안 되게 오타가 발견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글에 대한 첫인상이 그다지 좋지가 않다.  문법 교정은 정말 '최소한'의 예의이다.   
 
학위논문과 같이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기 위해 작성되는 글은 더더욱 그러하다.  기업채용이나 기관 임용을 위해 작성하는 글도 마찬가지이다.  어찌저찌 하다 보니 이런 저런 목적으로 작성된 자기소개서, 연구계획서, 학술 논문, 학위 논문 등의 한국어/영어 검토를 해 줄 일이 종종 있었는데 (영어의 경우, 내가 원어민이 아니니 완벽한 문법 교정은 힘들더라도 영어 글 구조 수정, 글 구성에 대한 코멘트, 더 나은 표현 제안 등등은 가능하므로), 하면 할수록 느끼는 점이, 내 글을 남의 눈을 통해 문법이든 구조든 수정하면 수정할 수록 더 나은 글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공부하는 여러분, 영어 글이든, 한국어 글이든, 다른 언어로 작성된 글이든, 중요한 글이라면 누구의 도움을 청해서라도 교정도 받고 코멘트도 받으며 수정하고, 또 수정하세요~~
 
(내 블로그글에도 오타가 있는 것은 블로그 글을 늘 급하게 써서 재차 확인할 겨를 없이 글을 올려 버리기 때문이다. ㅠㅠ 그리고, 양질의 한국어서적 독서를 손놓은지 너무 오래되어서 잘못된 언어습관이 나의 한국어 문법 지식을 갉아먹어버린 탓.  모든 오타와 잘못된 표현은 나의 잘못이니 너그러운 이해를 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