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공부하기/석박사과정 공부

혼자서 아프지 마세요! - 영국 유학 중 장애지원서비스를 받은 이야기

옥포동 몽실언니 2021. 9. 3. 08:45

영국에서 살면서 힘든 일도 많지만, 고마운 일도 참 많이 있었어요.

그 중 하나는 제가 몸이 많이 아팠을 때 많은 이들이 저를 도와주고 구해줬던 경험입니다. 저는 영국에 온지 2년 후 갑자기 몸이 아프기 시작해서 그로부터 6-7년의 시간을 정말 힘들게 보냈어요.

그리고 그 아픔이 좀 나아졌을 때, 나와 같은 사람들, 남들 모르게 혼자서 앓으며 힘겹게 시간을 보내는 이들을 위해 내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티스토리에 블로그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만 해도 제가 아팠던 이야기를 하기가 쉽지가 않았어요. 너무 힘들었던 일이라 그 시간들을 다시 떠올리는 것 자체가 생각보다 많이 힘들더라구요.  몸도 정말 많이 힘들었고 그로 인해 파생된 일들은 몸의 고통 못지 않게 제 마음과 정신을 힘들게 했기에 그 시간을 떠올리는 일 자체로 상당히 고통스러웠어요.

이제 시간이 흘러 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고, 그리고 또 낳고 기르며 4년이 좀 넘는 시간이 지나자 이제야 그 시절의 이야기를 끄집어내어집니다. (그러면서 제가 개설했던 블로그는 영국 사는 이런 저런 이야기로 시작해서 지금은 완전 육아 블로그가 되어 버렸다는..😂)

저는 영국에서 박사과정을 하던 중에 몸이 갑자기 아팠고, 그 바람에 몸 아픈 걸로 공부가 타격을 받으면서 학업 진행과 학교 생활이 참 힘들었어요.  그러나 동시에 그 바람에 학교로부터 매우 큰 도움을 받기도 했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섬유조직염을 진단받다

박사과정 2년을 마친 후, 그 해 가을 겨울부터 몸이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단순 근육통으로 생각해서 물리치료를 받았는데, 잠시 받는 물리치료로는 절대 나아지지가 않았어요.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긍긍하다가 몇 달에 걸친 온갖 치료 끝에 제가 받은 진단명은 fibromyalgia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섬유근육통, 섬유조직염 등으로 불리는 병입니다.

섬유조직염은 몸의 특정 부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병입니다. 이것은 만성 통증진환(chronic pain)으로 제가 학교를 복학한 그 시기(2011년)에는 이 진단명 자체로 disability 로 분류되었습니다. 몇년 전 레이디가가도 섬유조직염이 있다고, 그로 인해 갑작스레 콘서트를 취소해야 했다는 것이 뉴스상에 보도된 적이 있었지요.

제가 몸이 아프던 시기는 마침 논문 자료 수집을 위해 한국에 와 있던 시기였어요.  몸이 본격적으로 아프면서 저는 휴학을 하고 치료와 재활에 힘썼습니다. 문제는 많은 돈을 들여 좋다는 치료는 다 받는데도 몸이 썩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그게 참 속상했던 저는 어느날 의사선생님께 여쭤봤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치료받고 재활 운동도 열심히 하는데 왜 더 좋아지지가 않는거죠, 선생님?"

그 때 선생님의 대답.

"네. 이건 계속 관리해줘야 하는 병이에요. 아프기 전처럼 돌아가는 걸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그 전처럼은 되기 힘들고, 꾸준히 관리하면서 생활하셔야 해요."

쿵..

Photo by  Yuris Alhumaydy  on  Unsplash

 

그 이야기를 들은 제 마음은 쿵 내려앉았습니다. 예전처럼 돌아갈 수는 없다니. 대신, 계속 관리하면서 지내야 한다니, 그렇다면 계속 휴학을 한 상태로 치료만 할 수는 없는 노릇. 그리하여 저는 학교로 복학하기로 결심했고, 영국으로 돌아와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부딪혀보기로 했습니다.

대학 내 장애지원서비스의 도움을 받다

학교로 돌아온 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엄청나게 아프고 힘든 상황 속에서 공부를 해 나가는데, 그런 저의 사정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제 딴에는 그 힘든 상황에서 힘겹게 공부하고 있었지만, 그건 제 사정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학교의 장애지원센터(disability advisory service)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한 친구를 통해 알게 됐어요. 이것을 알게 된 계기는, 제가 너무 아파서 힘들었던 어느 날 혼자서 통증에 괴로워하다 페북에 남긴 두어줄짜리 글을 남겼는데, 그걸 본 한 친구가 저에게 개인 메세지를 보내며 같이 차/커피 마시자고 제의를 한 것입니다.  저와 만나 제 이야기를 듣더니 자기 엄마와 매우 비슷해서 얼마나 아플지 이해한다며, 혹시 교내 장애 서비스 쪽에서 지원 받을 수 있는 게 있는지 한번 알아보라는 이야기를 해줬어요.

그래서 찾아보니 장애지원서비스라는 조직이 있더군요.  홈페이지를 보니 제 병명이면 지원대상이 된다고 떡하니 적혀있었습니다.  이럴수가!  그리하여 저는 그곳으로 이메일을 남겼고, 거기서는 제 병명이 지원대상이 되니 사무실로 나와서 학업욕구사정(study needs assessment)을 진행해서 제게 필요한 지원을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학교 담당자를 만나 교육욕구사정을 진행하고 제게 필요한 여러 물품들과 소프트웨어, 그 와 기타 여러 서비스를 지원 받게 되었어요.

여기가 바로 옥스퍼드대학교 장애지원센터(Disability Advisory Service) 입구.  사진출처: https://www.accessguide.ox.ac.uk/3-worcester-street 

학교로부터 지원받은 것들

첫 해에 지원받은 내용들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거의 7000파운드 상당의 물품과 서비스, 비용 지원이었어요.  이 금액은 한국 돈으로는 약 천 만원이 넘는 금액이에요.  제가 직접 나가서 벌려면 정말 큰 돈인데, 그 만큼의 지원을 제공받았으니 참 감사한 일입니다.

당시 저는 몸이 너무 힘들어서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게 힘들었어요.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고가의 높이조절책상과 고가의 의자를 제공해줬고, 학교 수업과 세미나를 오갈 때 이용할 수 있도록 택시비를 지원해줬습니다.  도서관에 가는 것도 힘들어서 책을 사야 할 일이 너무 많다고 했더니 책 구입비도 지원해줬고, 직접 도서관을 가지 않고도 필요한 책을 대출 받아 제게 보내주고, 필요한 부분을 스캔해서 제게 이메일로 보내줄 도서관 서비스 지원 활동가를 붙여줬습니다. library support worker 인데, 제 학과 친구 중에도 이 일을 아르바이트로 하는 친구도 있었어요.  시간당 8파운드 좀 더 되는, 당시 최저임금보다 조금 높은 돈을 받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도서관 서비스를 대신 해 주는 일이었지요. 

그 외에도, pdf로 된 논문을 말로 읽어주는 소프트웨어, 종이에 필기를 하면 그걸 디지털화해주는 공책과 펜, 누워서도 책을 읽을 수 있게 해주는 도구도 제공해줬습니다.  사실 이런 것들은 생각보다는 유용하지는 않았어요.  몸이 힘들어서 누워있는 상태에서 책을 본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웠고, 이런 소프트웨어들을 이용하더라도 몸이 좋지 않으면 다 소용이 없더라구요. 

뿐만 아니라 수업에 함께 참석해서 저 대신 노트필기 해줄 사람을 붙여줄 수 있다고 했는데, 노트필기가 중요한 수업이 있던 건 아니었던지라 그건 필요없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제 친구 중에는 학부에서 법을 전공하는 몸이 불편한 친구를 위해 그 친구 대신 수업에 들어가서 노트필기 해주는 일을 아르바이트로 하기도 했어요.  자기 전공은 아니지만 수업이 너무 괜찮아서 재미있게 그 일을 하고 있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추가적으로 받은 서비스는 멘토링 서비스였습니다. 이는 건강상의 이유나 장애가 있는 학생들의 학업 및 정신 건강 관리를 위해 전문 상담가외의 상담 세션을 제공해주는 서비스였어요. 일년에 최대 38회 전담 선생님과 상담을 할 수 있도록 할당되었습니다. 방학 기간을 빼면 학기 중 매주 선생님과 만나 상담하고도 남은 횟수였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이런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에 깜짝 놀라 담당 직원에게 어떻게 서비스가 가능한지 물어보니 담당자 말이, 원래 영국 학생들에 대해서는 영국 정부에서 지원되는 기금으로 이런 서비스가 제공된다고 해요. 실제로 저희 과에 허리가 좀 불편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제가 학교로부터 제공받은 의자와 동일한 의자를 학과에서 사용하고 있었어요.  알고보니 그 친구의 의자도 바로 그렇게 제공된 의자였습니다.  그 친구 앞으로 할당된 금액 내에서 필요한 지원이 이루어진 것인데, 그 친구는 영국인이었으므로 영국 정부에서 재원이 지원된 거죠.   그런데 외국 학생들은 이런 서비스를 못 받으니 학교 측에서 자체 기금으로 외국 학생에 대해서도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 덕에 저는 병으로 휴학을 1년 좀 넘게 (4학기..) 하고 나서 학교로 돌아와서 혼자 끙끙 앓으며 8개월을 고군분투하다가 학교의 이런 서비스 덕에 공부를 마치는 시기까지 학교 장애지원서비스로부터 큰 도움을 받으며 공부를 잘 마칠 수 있었다는 훈훈한 이야기입니다.

그 외에도 참 힘든 일이 많았는데, 그 때마다 이 disability advisory service 에서 저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면서 물심양면으로 큰 도움을 받았어요.

복지 수혜의 경험

살면서 내가 복지서비스의 수혜 대상이 되어 보는 경험을 처음 했고, 그 경험을 하자 나도 뭔가 사회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강한 책무감도 올라오더군요.  복지감축을 주장하는 이들은 복지가 사람을 무임승차하고 싶게 만든다고 하지만, 제가 겪어 본 복지는 오히려 내가 속한 공동체에 감사하고 이 공동체에 소속감도 강화해주고, 나도 뭔가 기여를 해여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 주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학교의 도움으로 학위를 잘 마쳤고, 저는 뭔가 사회에 기여를 하고 싶었는데 결혼과 동시에 임신까지 하는 바람에 그간 애만 둘을 낳고 키우고 있네요.....  늘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혼자 아프지 마세요. 이야기 하세요.

몸이 아프던 당시 몸이 아픈 것도 힘들었지만, 그 외에도 저를 힘들게 한 것은 내 몸은 아파 죽겠는데 겉보기에는 사람이 너무 멀쩡하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Invisible disability 라고도 하죠.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

혼자서 아픈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들, 혼자 앓지 마세요. 절대로.  아픈 티를 내세요. 아프다고 주변인들에게 알리세요. 그리고 도움을 받으세요. 의외로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도움과 지지를 받고, 필요한 정보를 얻으실 수도 있어요.

니가 왜 아프냐, 도대체 어디가 아프냐, 엄살 아니냐, 술 마시면 낫는다, 아프다 생각하지 않으면 안 아플 것이다, 공부에 집중하면 아픈 것도 못 느낄 것이다 등등 저도 별에 별 소리를 다 들어 봤는데요. 여의치 마세요. 아파서 아픈 걸 어쩌겠어요.

좋아질 수 있어요. 완전히 낫지 못해도 좋아질 수 있어요. 극적으로 좋아지지 못해도 그 아픔과 사이좋게 지내는 법을 터특하게 될 수도 있어요.  나아지지 않아도 괜찮아요.  사는 게 중요해요.  안 살면 그 고통에서는 자유로워질지 몰라도, 안 살면 그 고통 틈틈이 찾아오는 행복도 느낄 수가 없어요. 안 살면 내 몸이 나아지는 것도 볼 수가 없어요.  그러니 버티세요.  한 숨 크게 돌리고 그리고, 움직이세요.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게 뭐든 뭐라도 해보세요. 그럼 살아집니다.  그리고 그 살았음에, 버텼음에 기쁘고 감사한 날이 올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