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목요일부터 오는 수요일에 걸친 일주일, 우리는 남편의 남은 육아휴직을 써서 내가 내 데드라인이 걸린 일을 하고 있다. 즉, 내가 일하는 주간이고 남편이 두 아이를 돌보는 기간.
평소 육아참여도가 매우 높은 남편이건만, 아무래도 내가 전업으로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보니 나는 아이들을 다루는 스킬이 점점 늘고 (그래도 한참 부족하다 ㅠ) 남편은 상대적으로 더 서툴러진터라 남편에게 애들을 맡기기로 해 놓고도 여간 맘이 불편한 게 아니었다.
이런 저런 팁을 남편에게 전수하였지만, 내가 남편이 아니듯 남편도 내가 아니니. 아이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거실로 내려가 구원투수 역할을 하다 보니 첫날과 이틀날 내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은 두어시간이나 되었을까.
그러다 오늘, 또 아랫층에서 고성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을 하고 있던 나는 정신을 번쩍 차리고 하던 일을 손에서 놓고 곧장 거실로 달려갔다. 우리의 잭은 우리가 벌을 세우는 거실 구석에서 틴틴과 씨름 중이었다. 내가 "무슨 일이야?" 하고 달려갔더니 감정이 격할대로 격해진 틴틴은 "얘가 자꾸 나를 때리잖아 2C" 라고 말 끝에 C 까지 붙였다. 그 순간 나는 틴틴의 팔을 살짝 꼬집었다. 애들 앞에서 절대 C 라는 표현은 쓰지 말자고 했건만, 이미 이성을 잃은 듯했다.
결국 남편을 퇴장시키고, 나는 잭에게 잭이 뭘 잘못했는지, 왜 그러면 안 되는지 다시 한번 설명하고, 아빠에게 사과하라고 했다. 사과하라는 말에 이 녀석은 더 큰 소리로 울어댔다. 이 쬐끄만 녀석도 자존심은 있나보다.
그 때 부엌에서 아직 화가 가라앉지 않은 남편이 하는 말이 들렸다.
"쟤는 내가 그렇게 만만한가, 왜 나만 이렇게 때려!"
그 소리를 듣고 나는 잭에게 물었다.
"잭, 너 아빠가 만만해?"
그 때 아이의 뜻밖의 대답.
"응."
터져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이 아이가 만만하다는 뜻을 알기나 아는 것일까. 하는 짓을 가만 보면 알기는 아는 것 같은데. 다시금 확인된 우리집 서열.
우리집 서열: 나 몽실 - 잭 - 틴틴 - 그리고 뚱이.
잭이 아빠가 그리 만만하다면, 나는 잭에게 아빠의 위상을 확인시켜줘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잭에게 말했다.
"잭, 너 엄마가 널 엄~~청 사랑하는 거 알지?"
"응."
"그런데, 네가 잘 모르는 게 하나 있는가 본데, 엄마가 널 엄~~청 사랑하지만, 엄마는 아빠도 엄~~~~청 사랑해! 너, 엄마랑 아빠가 어떤 사이인줄 알아?"
하니 아이가 궁금하다는 듯이 날 올려다봤다.
"어떤 사이인지 엄마가 보여줄까?"
"응."
하길래, 난 틴틴을 불렀다.
"오빠~ 이리로 와봐!"
틴틴이 오자, 난 틴틴에게 입맞춤을 하자고 했다.
"잭, 엄마 아빠는 이런 사이야~~"
하며 우린 아이 앞에서 입맞춤을 했다.
그랬더니 아이는 그게 뭐가 재밌는지 "한번만 더!!" 하고 외쳤다.
그래서 우린 또 입맞춤을 했고, 아이는 한번 더 "한번만 더!" 를 외쳐, 우린 하하 웃으며 또 입을 맞췄다.
그리고, 아이에게 아빠 때리면 안 된다고, 다른 사람 때리는 나쁜 사람은 엄마는 싫다고 말하고 상황을 종료시켰다.
그리고 잭은 버블 바스를 하고 싶다 하여 목욕을 하기로 했다.
목욕하러 가기 전에 아빠에게 사과를 하라고 했더니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빠에게 달려가 "아빠, 미안해요!" 하고 밝게 인사하고 돌아온다. 세상에서 제일 뒤끝이 없는 아이. 그러자, 틴틴도 아이를 안아주며 "그래. 아빠도 미안해."라고 한다.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애한테 그리 맞아 놓고선.
이러니 잭이 아빠를 만만하게 보나 보다. 맘 좋은 아빠인 걸 아니까.
***
사실 잭의 이 목욕은 오늘의 두번째 목욕이었다. 오전에 목욕을 하면서 자연성분으로 된 아이들용 목욕거품 제제, 자그마치 한통에 9.99파운드나 주고 산 목욕제제를 15분만에 다 써버리는 기염을 토하며 첫 목욕을 이미 한 바 있었다.
그리고, 저녁 목욕은 내가 비누로 거품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잭을 씻기는 김에 뚱이도 씻기려고 틴틴에게 뚱이도 데려오라고 했다. 체력이 약한 부모를 만난 탓에 우리 뚱이는 더운 날도 목욕을 건너뛰기 일쑤였다. 그래서 요즘 하게 된 것이, 잭 씻을 때 뚱이도 같이 씻기는 것이다. 잭 혼자 욕조에서 씻으면, 그 옆에 아기 욕조에 물을 받아 뚱이도 씻긴다. 그러다 최근에는 잭 씻는 목욕물에 내가 뚱이를 안고 들어가서 같이 씻었다. 옷 입은 채로 아이를 안고 물에 들어가서 아이를 대충 물에 한번 담궜다 빼는 수준이다.
오늘도 그렇게 뚱이를 씻기자고, 매일 배밀이하며 기느라 땀을 뻘뻘 흘리는 뚱이, 잠시 물에라도 담궜다 빼자고 데리고 왔다.
잭에게 뚱이와 함께 목욕해도 되겠냐고 하니 뚱이만 들어오고 나는 들어오지 말란다. 그럼 아빠가 뚱이랑 들어가도 되겠냐 하니 아빠도 안 되고 뚱이만 된단다. 이런.. 뚱이는 아직 큰 욕조에 혼자 못 앉는데. 그래서 아이에게 뚱이는 물 안에서는 혼자 못 앉으니 (물 밖에서는 혼자 아주 잘 앉는다!) 누가 뚱이를 안고 있어야 한다고, 그 역할을 엄마가 할지, 아빠가 할지 물으니 엄마쟁이 잭은 당연히 "엄마!"하며 나를 골랐다.
겨우 허락을 받아낸 욕조행. 욕조에서 뚱이를 안고 뚱이를 대충 씻기는데, 잭이 갑자기 세면대에서 차가운 물을 한컵 받더니 그걸 뚱이에게 뿌리려고 한다.
"안돼!! 뚱이는 아직 너무 어려서 그렇게 차가운 물 뿌리면 깜짝 놀라!"
그랬더니 이제 그 물을 나에게 뿌리려 한다.
"안돼!! 엄마 앗 차가워라 한단 말이야~ 안돼!"
라고 소리치니 이제 그 물을 욕조 앞에 서 있는 아빠에게 뿌리려 한다.
"안돼, 잭! 아빠한테도 뿌리면 안돼!"
내가 소리치자, 틴틴도 잭에게 눈을 흘기며 한마디 했다.
"너? 네가 아빠한테 그 컵에 있는 물을 부으면, 아빠는 너한테 두 컵 부을거야!!!"
푸하핫! 난 정말, 예상치도 못한 그의 발언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뭐야? 잭 큰 형이야?? 내가 못 살아, 정말!"
여전히 아빠에게 그 차가운 물을 부을까 말까 고민하는 잭에게 틴틴이 다시 한번 더 말했다.
"너, 아빠가 말했지? 니가 한 컵 부으면 아빠는 두 컵 붓는다고!"
그렇게 으름장을 놓자 잭도 웃으며 컵에 든 물을 욕조에 부어버리며 차가운 물 사단은 끝이 났고, 둘째 뚱이 목 사이에 손을 비집고 넣어 씻기며 틴틴 들으라고 한마디 했다.
"형아 맞네, 형아 맞아. 잭, 이제 아빠를 형아라고 불러."
그리고 생각했다.
결혼을 하고, 나는 내가 낳지 않은 아들을 하나 얻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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