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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단상] 아이는 낳기만 하면 알아서 큰다구요?

옥포동 몽실언니 2020. 8. 15. 07:14

아이를 낳기 전에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말이에요. 

애는 낳기만 하면 자기들이 알아서 큰다고, 걱정 말고 낳기나 하라는 말씀.

그런데 말이죠. 둘째를 낳고 보니 이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하. 어른들 말씀이 다 맞더라구요~

첫째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둘째는 낳고 보니 자기가 알아서 크더라구요. 어떻게 그러냐구요? 그럴 수 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엄마 아빠는 힘이 들어 늘 체력이 부족한 상태에, 두살 터울의 형아는 한창 부모 모두의 관심을 독차지 하고 싶어하는 나이에..  엄마 아빠는 둘이서만 집안일 하랴, 바깥일 하랴, 애들 돌보랴.. 모든 것을 최소한으로만 하는데도 워낙 정신이 없다 보니 둘째에게는 첫째 때와 같은 집중적 관심, 지긋한 관심, 아이에 대한 몰입이 불가능합니다.

엄마 아빠가 그렇게 허덕이는 와중에도 시간은 가고, 그렇게 아이는 저 혼자 알아서 크더라구요. 

그렇게 저희 둘째 뚱이는 7개월을 자랐습니다.  벌써 그렇게나 말이죠. 


동생의 존재가 익숙해진 첫째


그런 와중에 첫째는 이제 동생의 존재가 제법 익숙해진 것 같아요.  처음에는 시기하고, 미워하기도 했었고, 그러면서 동생이 하는 것을 모두 다 따라하려 했었는데, 이젠 동생을 보다 더 귀여워할 뿐만 아니라 엄마 아빠를 도와 동생 돌보는 것에 협조할 때도 더러 있습니다. 잭 인생의 20% 이상을 뚱이와 함께 한 셈이니, 익숙해질만도 하지요. 

요즘 아이가 말이 트이면서 동생 얼굴을 만지며 "귀여워!" 라고 말하기도 하고, "이쁘다" 하고 말하기도 해요. 

동생이 앉으면 "선재 앉아" 라고 말 해주고, 동생이 뒤로 넘어지면 "엄마, 선재 (뚱이 이름) 벌러덩" 이라고 애가 뒤로 누웠다고도 말 해줘요. 

목욕도 함께 해요. 잭 씻는 욕조 물에 뚱이를 함께 넣어 살랑 살랑 씻겨주면 잭이 뚱이를 씻겨줍니다. 물 묻힌 손으로 아이 얼굴을 마구 비벼요. ㅋㅋ 자기는 제가 얼굴 씻겨주는 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면서, 자기가 가장 싫어하는 그것을 동생에게는 자기가 합니다. 다행히 뚱이가 그걸 싫어하지 않아요. ㅋ 형아에 비해 덜 예민하고 덜 까탈스러워 참 다행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운명 같은 존재


아이들을 바라보면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잭에게 뚱이는 참 좋은 선물같다고.  그리고 뚱이에게도 형아의 존재가 참 든든한 버팀목이겠다는.  물론 많이 싸우겠죠.  지금도 종종 싸웁니다.  뚱이가 혼자 앉아 장난감 하나 들고 잘 놀고 있는데, 잭이 괜히 동생에게 가서 그 장난감을 휙 뺏어오면 뚱이는 바로 으앙 울음을 터뜨리죠.  뚱이가 어린 데도 힘도 좋고 깡도 좋아서 어떨 때는 절대 뺏기지 않고 악을 써서 버티기도 해요.  그럼 형이 나가떨어집니다.  

그럼, 동생은 낮잠 자는 형아 위에 올라타며 복수를 하기도 하지요.

그렇게 투닥거리 하는 시간들이 있긴 하지만, 잭이 동생을 바라보는 눈빛의 70% 이상은 귀엽고 사랑스러워 하는 눈빛이에요.  동생 이야기를 하면 늘 씨익 웃구요.  자기에게 "동생" 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게 재밌고 좋은 눈치입니다. 

동생에게도 형은 때때로 자신을 괴롭히는 존재이지만, 대부분의 시간 자기 앞에서 흥미로운 행동들을 보여주는 재밌는 상대 같아요.  잭이 하는 행동들을 유심히 보고 있을 때가 많거든요.  형아를 쫓아 다니기도 하고, 형아가 갖고 노는 물건을 뺏으려 들기도 하고. ㅋ 형아가 나타나면 형아 근처로 기어가서 형아가 뭘 하나 지켜볼 때가 자주 있어요.  그럼 형아는 가끔 뒤로 돌아 동생 얼굴 만지며 "이이이이잉~ 귀여워!" 라고 말 해주기도 하고.. 물론 이유 없이 그런 동생을 뒤로 밀어 넘어뜨려 버릴 때도 있구요. ㅋ

이렇듯 늘 사이가 좋은 건 아니지만, 태어나면서부터 형의 관심 (&시기) 과 사랑을 받고, 형이 자신의 최고의 엔터테이너가 되어 주니 동생도 형이 좋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면 둘째를 낳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때때로 우리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저지른 거냐고 한탄할 때도 물론 있지요. ㅋ)


둘째를 낳고서야 깨닫게 된 가족의 사랑


둘째를 낳고 저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그제서야 부모님께서 저에게 주신 사랑을 제대로 알게 되었고, 언니들과 동생에 대한 고마움도 더 커졌다는 것입니다.

부모님께 참 많은 것을 받고 자랐으면서도 형제자매가 많아서인지, 타고난 시기심 때문인지 어린 시절부터 전 부모님의 사랑이 늘 부족하다고 느끼고, 부모님께 서운한 마음도 많이 가지고 있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둘째를 낳고 나니 부모님께서 나에게 해 주신 것들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둘째도 아닌 셋째를 키워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지, 그렇게 낳은 나에게 그렇게 헌신해주신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제야 제대로 알게 된 것 같아요. 

계기는 특별한 게 없었습니다. 그저 어린 시절의 작은 에피소드들이 하나 둘씩 떠오르는데, 사랑인지 몰랐던 것들이 이제 보니 사랑이었던 많은 장면들이 있더라구요.  주말마다 가족들과 함께 등산을 하며 제가 힘들어할 때마다 손을 잡아주셨던 아버지.  업어주기도 하셨던 아버지.  한참 나이가 들 때까지도 엄마 아버지 옆에서 자고 싶어했던 저를 단 한번도 내친 적 없이 방에 들어와서 함께 자도 좋다고 해 주신 엄마.  우리 잭이 뚱이를 즐겁게 해 준 것처럼 언니들이 나에게 해 주었을 수많은 엔터테인먼트.  태어나면서부터 내게 좋은 동지가 되어 줬던 귀여운 내 동생.  지나간 수많은 시간들이 모두 가족들의 사랑으로 채워져있었다는 것을 깨닫자 마음에 행복이 더 차올랐습니다. 


아이는 낳기만 하면 알아서 자란다


정말 그런 것 같아요. 특히 둘째부터는 더더욱 말이죠.  첫째처럼 신경써서 키울 여력이 안 되거든요. 웃기면서도 슬픈 이야기 같지만, 그리 슬플 것도 없어요.  첫째가 받은 것 같은 부모의 집중적 관심을 장시간 받지는 못하지만, 둘째, 셋째, 넷째는 첫째가 받지 못한 다른 많은 것들을 받으니까요.  그것이 비록 자신이 원하는 것이었냐고 한다면 그건 또 별개의 이야기겠지만, 둘째, 셋째도 나름의 좋은 점들이 있더라구요.  


아이를 키우면서 다시 세워가는 부모 자신의 자아


아이를 키우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인 것 같아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백배, 천배는 되는 것 같아요.  현실은 그 누구도 직접 경험해보기 전에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에 있는 것 같거든요. 

어려움도 많고 괴로움도 많아요. 

그런데 확실한 보람도 있는 것 같아요.  아직 아이가 어려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이를 키워낸 보람 보다는 아이와 깊어지는 상호작용에서 오는 보람이 있구요. 제가 받은 부모님의 사랑을 더 제대로 알게 되어 보람있어요.  그저 주어진 상황이었던 형제자매의 존재에 대해서도 더 큰 의미가 부여되어 그 또한 보람있어요. 그런 과정을 통해 저의 자아가 다시 세워지는 것 같아 그것도 정말 큰 보람입니다. 

특히, 아이와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갈등과 화해. 남편과의 계속되는 파트너쉽 속의 동업육아. 그 과정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자신을 더 잘 알게 되고, 상대에 대해서도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어


이렇게 좋지만 세상에 정말 공짜가 없어요.  육아에 올인하는 대가로 치르고 있는 저의 경력 단절.  저도 남편도 취미도 없고 자유시간도 없이 일상이 그저 육아로 꽉 차 있습니다.  틈이 없어요.  빈 틈이 없고 여유 공간이 없습니다.  가끔은 이런 일상이 정말 숨이 꽉 막혀요.  그리고 아동학대가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도 들구요.  아동학대를 저지르는 이들을 옹호하려는 말이 아니라, 학대라는 것이 정말 쉽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매일 절감해요.  그게 육아의 현실입니다.  그런 현실 속에서 대부분의 부모들이 학대를 하지 않고 아이를 키워낸다는 것은 평범한 모든 이들이 보여주고 있는 위대함이라 생각해요. 

저희의 이런 육아 현실은 언제쯤 새로운 국면에 들어설까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향후 2-3년은 이렇게 여유 없는 생활이 지속될 것 같아 막막하지만, 그래도 언젠가 또 다른 국면에 접어들겠죠?  그 때가 되면 분명 오늘의 이 빡빡한 생활을 그리워 하리라 생각하며 현재의 어려움을 위로해봅니다.  이 빡빡함을 그리워하지는 않겠지만, 어쩔 수 없이 이런 빡빡함을 수반하는 "나이 어린 자녀"를 돌보면서 얻는 기쁨과 재미난 기억들은 분명 그리워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