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2017-20

[육아단상] '낳기만 했는데 알아서 자라는' 우리집 육아의 진흙탕 전모

옥포동 몽실언니 2020. 8. 24. 07:11

안녕하세요. 

몽실언니입니다. 

지난 번 '아이들은 낳기만 하면 자란다구요?’글에 제가 “겪어보니 그렇더라”고 이야기한 바가 있는데, 그에 대해 좀 더 소명해야 할 듯하여 오늘 글을 적습니다.


제가 '첫째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둘째는 낳고 보니 정말 알아서 자라더라'고 하였지요. 

그런데 그 '알아서 큰다'는 것이 저희가 제대로 신경을 써 주지도 못했는데 기특하게도 잘 자라주어 고마운 마음에서 그리 표현하는 것이 하나요, 아이가 하루 하루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제대로 살필 경황이 하나도 없는 현실이라는 것이 또 다른 하나입니다. 

사실 아이 둘 키우며 이런 이야기하기 참 민망하기도 합니다. 저출산 시대라고는 하지만, 제 주변에만 애 셋 키우는 친구와 지인이 제법 있고, 넷, 다섯, 혹은 그 이상을 키우시는 분들도 계실텐데, 그 분들이 듣기에는 다소 가소로운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모든 관점은 상대적이고, 사람은 각자 자기의 관점이 있으니!  저희 기준에서는 저희의 과거와 비교하여 저희의 현재가 인생 그 어느 때보다 바쁘고 고단한 시기이니, 그걸 누구와 비교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이 글을 쓰게 된 경위는 이러합니다.  

며칠전 잠자리에 누워 친언니와 카톡을 하다가 (네, 가끔 이런 호사를 누릴 때도 있습니다!  또 이런 순간들 덕분에 숨통 트이며 사는 것이겠지요), 난 도대체 언제 애들을 언니만큼 키우냐고 푸념을 했더니 언니가 웃음을 터트리며, 

낳기만 하면 다 큰다며~ 푸하하하하!

하고 답장을 보내온 것이지요. 

그 때 '아차!  내가 내 무덤을 팠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내가 설명이 충분치 않았구나, 우리의 현실은 매일이 진흙탕에, 매 순간이 전투인데, 그 바람에 아이가 어찌 자라나 제대로 살필 겨를도 없이 시간이 지나간다는 말이었는데… 내가 너무 룰루랄라 좋은 이야기만 적은건가? 

후회하면 뭐합니까. 그럴 시간에 이렇게 다시 오해를 풀 글을 적으면 되지요. ^^

저희 부부의 실제 현실은 매일 블랜더에 육신과 영혼이 모두 곱게 갈아지는 느낌입니다. 

“윙~윙~윙~~”

이 소리는 늦깎이 부부가 노산에 자녀 욕심 부리다 40대에 어린 두 자녀 돌보며 영혼과 육신이 갈리는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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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유난히 힘든 상황인 것은

첫째, 저희 부부는 40대에, 체력이 워낙에 약한 편이고,  
둘째, 두 아이들은 모두 우량아에 에너지 덩어리들인데다,
셋째, 주위에 가족과 지인 없이 부부끼리만 아이 둘을 온전히 돌봐야 하다 보니 힘든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좋은 점은 있습니다.

첫째, 나이도 많고 체력도 약하다 보니 큰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아니, 내지 못합니다.  
둘째, 부모가 힘이 없는데 애들이라도 힘이 넘치니 그것도 다행입니다.
셋째, 주위에 가족과 지인이 없어 아쉽고 외롭지만,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이 길어 가족이 돈독합니다.

그렇게 저희 아이들은 알아서 자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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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마음을 많이 내려 놓았어요. 

그 전이라고 마음에 뭐 대단한 걸 꼬옥 품고 있지도 않았지만,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인생 하루 하루 참 알 수 없는 일인데다, 계획하는대로 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지금은 그냥 모든 마음 내려놓고 아이들에게 집중해야겠다구요. 

이렇게 말하면서도 일 욕심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해서 지난주 수요일부터 이번주 화요일까지는 남편 휴가를 내서 제가 일을 하고 있고, 그렇게 일을 해서 8월 말과 9월초에 털어내야 할 일이 두 가지나 있습니다.

마음을 내려놓았다면서 이건 무슨 모순된 행동인지!  

그렇지만,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꼭 저 자신을 내려놓는 일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완벽한 엄마가, 일도 하고 육아도 잘 하는 그런 엄마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았다는 것이지요.

사실 ‘완벽한 엄마’라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고, 그 누구나 자신의 자식에게만은 최고의 엄마일테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기준에서, 자기만의 가치관 속에서, 자신이 그리는 최고의 엄마, 부족함이 없는 엄마로 서고 싶은 욕심을 내면 깊숙한 곳에 조금씩은 가지고 있고, 그 욕심이 우리의 진흙탕 같은 현실에 부딪히며 좌절을 겪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요, 진흙탕은 진흙탕일 뿐! 

이렇게 생각하면 그 누구도 부족한 엄마가 아닙니다.  그냥 ‘엄마’로 존재함으로써 우린 온전하고, 아이들은 그저 그 온전한 엄마가 곁에 있어주기만 하면 될 뿐.

이렇게 쓰고 보니, 또 곁에 있어주기만 하는 것에 절대 만족하는 법이 없이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디테일하게 요구하는 두살 반 큰아들이 떠오르네요. 

네…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절대 만족하는 법이 없죠.  그러나.. 아이의 요구를 다 들어주지 못하더라도.. 아이가 말을 태워달라고 내 등에 올라탔지만 도저히 힘이 들어 그냥 풀썩 누워버리더라도, 그런 엄마라도 아이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싫다고 투정 부리고 울고 짜증부리며 엄마에게 말을 제대로 태워달라고 하지만, 그 울음은 그저 그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현일 뿐, 그것 때문에 엄마가 싫다는 마음의 표현이 아니니까요. 엄마는 왜 그리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 주지 못하냐는 비난은 더더욱 아닐테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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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뒷끝 없는 아이.  

저는 제 큰 아들을 그렇게 불러요. 

저는 소심하고 유치한 편이라 뒷끝이 상당한…… 네.. 제법 상당현 편인데요 (네… 그래요..ㅠ).  그런데, 첫째 아이를 보면 정말 세상에 이렇게 뒷끝 없는 인간이 있을 수 있나 싶어 항상 놀랍니다. 저희 애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모두 그럴테지요.  아이의 그런 모습을 보면 스스로가 참 부끄러워진답니다. 

엄마에게 실망하고, 엄마에게 화내고, 엄마에게 투정부려도, 이내 돌아서서 엄마를 찾고 엄마에게 안아달라 하고, 엄마에게 기대고, 가끔은 “엄마, 사랑해요” 라고 먼저 말도 해주는 그게 바로 아이니까요. 

그렇게.. 낳기만 했는데 알아서 아이들이 자라주고 있는 저희 집 현실은 사실 진흙탕이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시작한 글인데, 결국은 그 진흙탕도 제법 괜찮다는 이야기로 결말이 내고 있네요.

제 안에 어떤 병이 있나봅니다.  아마도 진흙탕에서도 진주를 찾아낸 척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병!

이 진흙탕이 그저 진흙탕이 아닌 이유는 딱 두가지 입니다. 함께 뒹굴어주는 남편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아이가 주는 사랑의 크기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사진: 아빠가 애써 당근 씨앗 뿌린 텃밭을 손수 진흙탕으로 만들고 있는 큰 아들, 잭. 그렇게 당근밭은 초토화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