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언니 다이어리/일기

과거에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된 경우

옥포동 몽실언니 2021. 11. 13. 01:29

이건 뭐랄까.. 데자뷔는 아니고..

 

어릴 때 어떤 이야기를 들으며 저 상황이 내 미래 상황이 되는 건 아닐까 생각했던 일이 실제 내 일이 된 것들이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내가 결혼을 늦게 하는 일.

 

대학 시절, 이성에 대한 관심이 매우 얕았던터라 나는 결혼을 아주 늦게 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대학원을 진학하며 나의 그 두려움은 현실에 가까워졌고, 내 미래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긴 했다.

 

사실 결혼을 늦게 하는 게 요즘같은 때에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20대 초반이던 시절에 여자가, 그것도 내가 마흔이 다 되어서 결혼할 거라는 생각은 그리 일반적이거나 사회적으로 각광받는 생각은 아니었었다. 게다가 나는 두 살, 네 살 많은 두 언니가 모두 20대 중반에 결혼한 터라 내 결혼이 늦어지는 것은 나만 부모님께 종속(?)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자식에 대한 헌신과 사랑이 대단하시지만, 그만큼 자녀에 대해 관심도 과다하고, 우리 기준에서는 우리를 좌지우지하시려는 것 같아 어릴 때는 우리에게 참 힘든 존재이셨던 적이 자주 있었다.

 

결혼을 늦게 할 거 같다는 두려움은 나의 성향과 성격을 생각할 때 결혼을 일찍 하지는 못할 것 같다는 분명한 지각이 무의식중에 깔려있었던 것도 같다.

 

사실 난 결혼을 늦게는 커녕, 아예 하지 못하고, 아이도 못 가지고 못 낳을 줄 알았는데, 결혼도 하고 아이도 둘이나 낳은 것을 보니 그거 참 용하다. 어찌 우리 남편같은 이를 만나서 결혼할 엄두도 내고, 아이를 낳을 생각까지 하다니. 그것도 둘씩이나. 그런 변화를 일으켜준 남편이 참 고마운 사람이다.

 

두번째 일은 내가 나이 마흔이 되도록 진로고민을 하고 있는 일

 

나는 사범대를 졸업했다. 사범대에서는 교생실습이 필수이수과목이다. 교생실습을 비롯한 필수 과목들을 수강하면 2급 중등교사자격증이 나온다.

 

나는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교생실습을 하게 됐는데, 교생 실습 기간에 기억에 남는 일이 몇가지 있었지만 그 중 가장 뇌리에 남은 일은 진로지도부장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셨던 이야기였다.

 

교생실습 중에는 각 부서별로 부장선생님들께서 자신의 부서에서 하는 일을 소개해주시는 시간이 있었다. 그 중 진로지도부가 있었는데, 부장선생님은 나이가 지긋하신 여자 선생님이셨다.

 

그 선생님은 교생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우리 앞에 나와 앉으셔서 진로지도부에서 하는 이런 저런 일을 이야기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저도 아직 제 진로고민을 해요."

 

라고.

 

난 말씀을 듣다가 그 이야기에 고개를 벌떡 들어 선생님을 뚫어져라 바라본 것 같다.

 

아니, 진로지도부장 선생님께서, 게다가 나이까지 지긋하신 분께서 진로고민이라고? 선생님께서 진로고민?

 

내겐 나름 충격적인 일이었다. 당시 나도 내 진로고민을 한참 하던 중이었는데, 교사라는 아주 안정된 직장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고 계시고, 심지어 학생들의 진로지도를 하시는 분께서 본인의 진로 고민을 하고 계시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이해할만한 일이다. 당시 선생님 연세가 아마 40대 중반쯤 되었으리라 생각되는데, 현직에 오래 몸 담은 후 새로운 삶을 꿈꿔볼 만도 한 때이기도 하다.

 

그게 아니더라도 교사라는 직업이 있는 이라고 해서 자신의 현재 커리어에 불만이 없거나 변화를 원치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누구나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겐 그 일이 두렵게 들렸다. 당시 20대 초반의 나에게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뭘 하고 살아야 할지가 너무나 중대차하고 끝이 나지 않는 고민이었는데, 누군가가 나이 마흔을 넘어서도 그 고민을 지속하고 있다니. 그건 마치 내가 지금 지고 있는 무거운 삶의 무게가 절대 쉽게 끝날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에 대한 예고 같이 들렸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마흔 넘어서도 진로고민하는 삶을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이 또한 나라는 사람의 성격상 그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당시의 나도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것이 결국 내게도 올 미래라는 것을 알기에, 부디 그 미래야 오지 말아라고 빌었던 것일까.

 

마흔이 넘은 현재의 나는 아직도, 심지어 그것도 이 영국 땅에서, 여전히 진로를 고민하고 있다. 내 또래의 친구들은 이미 십년 이상의 경력자가 된 마당에 나는 제대로 된 경력 하나 없이, 가방끈만 긴 경력단절 엄마가 되어있다. 어떻게 해야, 뭘 해먹고 살아야 우리 아이들을 먹여 살릴 수 있을까 고민하는 엄마가.

 

큰 거 바라는 거 아니다. 돈 걱정 않고 우리 아이들 먹을 것 사줄 수 있고, 돈 걱정 없이 부모님 뵈러 한국가는 비행기표만 살 수 있으면 좋겠는데. 막상 살아보니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