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유학/석박사과정 공부

유학 중의 정신건강 관리의 중요성

옥포동 몽실언니 2017. 1. 6. 22:39

뭔가.. 더 차분히.. 시간이 있을 때.. 더 진중하게 생각을 해 본 뒤에 영국유학이야기의 첫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잊기 전에 뭐라도 써 둬야 할 것 같아서 급하게 키보드를 잡는다. 


짧게나마..mental health.. 정신건강의 문제의 중요성에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어제는 매주 한번 있는 기숙사 청소날.  청소해주시는 아저씨가 "Housekeeping!"이라고 노크하고 들어오시는 아저씨.  어저씨께서 어찌된 일이신지 혹시 203호 학생을 요사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셨다. 

"아니요, 못 봤어요. 왜 그러세요?" 

"내 키로 문이 안 열려서 그래.  혹시 저 안에 사람이 있는데 문을 걸어잠궈서 문이 안 열리는 건가 해서.  예전에 한 방에 문이 안 열려서 문을 따고 들어갔더니 한 학생이 자기 손목을 긋고 욕실에 쓰러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거든.. 그래서 혹시 이 방에도 뭔가 누가 문제가 있어서 문을 걸어잠그고 있는 건가..걱정되어서.."

"헉!!! 정말이에요?!! 그럴수가!!!! 이번주에 별 인기척을 못 느꼈는데, 제 방문 같은 경우에 뭔가 문에 문제가 있어서 문이 잘 안 열릴 때가 있어요.  여기 한번 보세요.. (방문을 닫고 나와서 아저씨 열쇠로 문열기를 시도하자, 뭔가에 걸려서 열쇠가 안 돌아감을 보여주며) 자, 문을 열쇠로 열려고 하면, 마치 안에서 걸어잠근 듯이 잘 안 열리죠?"

"내 열쇠는 주로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흠.. 다시 시도해볼게."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저는 청소를 피해.. 밖에 나와서 칼리지 가든으로 캠브릿지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방금 들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했다.  "J, 어떡해!! ㅠㅠ 칼리지 직원 아저씨한테 끔찍한 소리를 들었어 ㅠㅠ 누가 손을 긋고 죽은 채로 발견됐었대 ㅠㅠ", 내 이야기를 들은 J는 자기 친구도 private accommodation에 방을 구했는데, 뭔가 쿰쿰한 냄새가 너무 나서 잘 살펴봤더니 카펫에 핏자국이 있었다고.. 알고 보니 그 방에서 누가 죽었었다는.. (그런데 집주인은 카펫 조차 갈지 않고 새 세입자를 받다니..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 


친구가 이야기한 집에서 일어난 사건은.. 세입자가 학생이었는지 어땠는지 알길이 없지만,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이런.. 안타까운 죽음들은.. 당연히 학생의 죽음이고.. 그런 죽음은.. 정말.. 막을 수 있는 죽음인데 막지 못한 죽음이며, 주위에 함께 살고 생활하고 공부하는 동료학생으로서, 또 이웃으로서..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그 죽음에 대한 슬픔 뿐만 아니라 죄책감과 미안함이 함께 몰려든다.  


친구와 통화를 마치고 청소가 끝났을 때쯤 기숙사로 돌아와 아저씨께 여쭤봤다.  좀 전에 안 열리던 방문이 열렸느냐고.  아저씨가 다행히 문이 잘 열렸고, 그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사고가 있었던 게 언제인지, 정확히 그 방이었는지, 그 학생은 어떻게 된 일인지.. 여쭤봤더니.. 글쎄 박사논문을 마치고 논문 심사에서 불합격을 받은 한 인도학생이었다고 한다.. 2-3년 전의 일이라고 하면서.. 위치는 정확히 내가 사는 기숙사 건물이 아닌 다른 곳인데, 타인 보호를 위해 정확한 장소는..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어쨌든 그 곳에서 청소 직원이 노크를 하는데 답이 없어서 의례히 부재중이겠거니 하여 방문을 따고 들어갔더니.. 욕실에 학생이 손목을 그은채 쓰러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박사논문이 뭐라고..  당연히 몇년간의 세월을 받쳐 한가지 일에 몰두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온 열정과, 노력과, 헌신과, 희생과.. 집념의 결정체이긴 하지만.. 그것이 뭐라고... 논문심사 불합격의 결과를 자신의 목숨과 바꾸는지.. 


멀쩡한 정신에서는 절대 이해될 수 없는 일인데, 사실 그 상황에 매몰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사람이 이성을 잃을 수 있으며, 그렇게 이성을 상실한 상황에서는 그런 극단적인 결정을 아주 드물게지만 할 수 있다는 것은 이해가 간다.  나는 심사결과로 인해서는 아니지만.. 나 또한 스스로도 모르게 자꾸만 끔찍한 상상이 들어서.. 너무 무서워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한 적도 있었다.  나에게는.. 그나마..직업적 배경과 전공 특성 때문일지 아니면 나 개인의 성격 때문인지.. 아니면 주변의 그런 사건사고에 대한 의식이 강해서인지,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만은 분명했고, 본인의 정신건강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자칫하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변해버리고 그런 변해버린 자신으로 인한 여러 원치 않는 결과들이 생길 수도 있음을 늘 주의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적어도 솔직하게 도움을 요청할 주위 사람들이 하나 둘은 있었고, 그들은 내가 손내밀때마다 늘 나를 따뜻하게 품어주며 이해해주고 격려해주는 말과 행동들을 보여줌으로써 나의 어리석은 생각들을 부끄럽게 하고 한 순간이라도 웃음을 지을 수 있게 해주고, 내가 가치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유학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인간관계에서 고립되고, 각자 본인의 공부에 바빠 남을 돌봐줄 겨를이 없으며, 교수들 또한 아주 운좋게, 또 특별하게 학생을 잘 챙기는 교수가 아니고서는 본인들의 연구와 업무에 바빠 학생들을 잘 챙기지 않는/못하는 교수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본인 스스로 자신의 정신건강에 대한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자신의 정신건강을 챙길 수 있는 방법들을 좀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유학 오기 전에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나 또한 전혀 무방비 상태로 와서 유학 후 닥치는 여러 일들에 대한 내 멘탈의 반응과 그에 따라오는 신체적 반응들에 당황하고 힘들었던 적이..그야말로 셀 수가 없다.  


영국유학 이야기는.. 사실 영국 유학에 대한 팁, 요령, 조언, 가이드 뿐만 아니라..  이렇게 좀 더 실질적인.. 이야기들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 만든 카테고리이다.  사실 정신건강은.. 유학생 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참으로 중요한 부분이다.  유학생의 경우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고립되어 외국인으로서, 또 소득이 없고 소비만 있는 학생으로서의 신분이라는, 그래서 대개의 경우 나이로는 성인이지만 진정한 성인으로서의 자율성과 재정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특수한 환경이 제공하게 되는 특수성이 있기는 하지만, 유학생의 정신건강에 대한 이야기들은 비단 유학생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도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한다.  


결국 정신건강의 중요성에 대해 짧은(?) 이야기를 쓰며 시작하게 되는데, 추후 시간이 나는대로 좀 더 이야기를 써볼 것이다.  일일이 내가 손을 뻗어 누군가를 도울 수는 없지만, 이렇게 나의 끄적거림이 그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길에 핀 꽃 한 송이, 새 한 마리.. 우리 주변의 작은 생명들이 모두 하나 하나 소중하듯이.. 본인의 생명도 정말 소중하다는 것.. 그 생명 덕에 살아가고 있는 이 인생, 오늘 하루 하루가 참 소중하다는 것을 모두 기억했으면 한다.. 


사진: 스페인 알메리아의 알카자바 성의 세 부분 중 기독교 영향을 받은 부분에 성벽에 새겨진 십자모양.  그 틈으로 보이는.. 저 넓은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