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둘째 임신 후 딱 두번째로 의사를 만난 날이다. 처음 임신을 알게 되었을 때 임신 사실을 알리기 위해 의사를 처음 만났고, 그 후.. 예정일을 딱 8일 앞둔 오늘, 의사를 두번째로 만났다. 한국의 기준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한국과는 상당히 다른 임신 중 진료 과정
그 전까지는 두어달에 한번 정도 미드와이프 (조산사)를 만나 배 길이를 재고, 혈압검사, 소변검사 후 아기 심장 소리를 들었고, 그간 딱 세번의 초음파 (12주, 20주, 36주) 검사가 있었다.
우리 가족의 주치의는 닥터 펑이다. 주디 펑. 홍콩계 출신으로 보이는 여의사 선생님. 우연히도 우리 아이 잭과 생일이 같은 선생님이다. 아기때부터 우리 잭을 진료해와서인지 내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는지는 몰라도 우리 잭의 이름은 잘 기억하고 아이의 안부를 물어주는 친절한 선생님이다. 이쁜 딸과 아들이 있는.
오늘 오랫만에 닥터 펑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혈압을 재고, 소변 검사를 하고, 배 길이 측정 후 아기 심장 소리를 확인하는 것이 미팅 중에 이루어진 일의 전부이다. 심지어 심장 소리는 심박 열번정도 뛰는 것만 확인하고, 분당 심박수 같은 것은 재지도 않았다.
한국에서는 임신 중 꾸준히 산부인과 전문의를 만나고, 최신식 초음파 기계로 초음파 검사도 하고, 임신 막바지에는 2주에 한번씩 검진을 하기도 한다는데, 여기서는 고위험 임신이 아니고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일상적으로 아주 평범한 검사와 진료만 이루어질 뿐이다.
첫 임신 당시 출산을 앞두고 여러 블로거들의 임신/출산 후기들을 읽으며 알게 된 것이 ‘출산 3대 굴욕’이라 불리는 ‘내진, 제모, 관장’이었다. 출산을 2-3주 앞두고 내진을 한다고 하는데, 나는 사실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른다. 아이를 낳으러 병원에 들어간 날 자궁경부가 얼마나 벌어져있는지 체크하는 과정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게 한국에서 말하는 ‘내진’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는 별도로 제모나 관장도 하지 않는다. 출산 후 회음부 절개도 본인이 꼭 해달라고 요청하거나, 의료적으로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우 외에는 회음부 절개도 하지 않는다. 관장의 경우, 출산을 앞두면 저절로 배변활동이 활발해지며 장이 비워지는 경향이 있고, 절개의 경우 여전히 논란은 있겠지만 이곳에서는 자연적으로 찢어지는 것이 덜 찢어지고 회복도 빠르다는 이유로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고서는 절개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방식이 무조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관장을 하지 않으니 만삭의 몸으로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탈수가 일어날 정도로 변을 볼 일은 없지만.. 출산 중에 뜻하지 않게 대변을 보게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회음부 절개의 경우도, 자연스럽게 찢어지다 보니 찢어진 부위를 꿰매는 것이 잘 잘려진 부위를 꿰매는 것보다는 힘들 수 있으며, 의료진 실력에 따라 열상부위를 봉합하는 실력에도 개인차가 크고, 염증이 생기기 전에는 항생제도 주지 않으므로 후처치 후 회복속도는 개인차가 크다. 아.. 이 모든 과정을 다시 거칠 것을 생각하니.. 벌써 겁이 난다.
39주를 앞두고 의사와의 짧은 진료
그렇게 오늘은 임신 마지막 주인 39주를 하루 앞두고 닥터 펑을 만나 근황을 이야기했다.
“잘 지냈어요?”
“네, 잘 지냈어요. 피곤해요. 잠을 잘 못 자서요. 선우가 감기에 걸려서 밤새 기침을 하는 통에..”
“밤새 애 때매 자다 깨다 했겠네요. 오늘 정기검진 하러 온 거예요?”
“네, 맞아요!”
닥터펑과 인삿말을 나누고 나서야 내가 왜 병원에 왔는지가 생각났다. 가방을 열어 산모수첩을 건네고, 소변통에 받아온 소변샘플도 건넸다.
닥터펑은 내 혈압을 재고, 협압측정이 완료될 동안 소변검사를 진행했다.
혈압은 정상. 107에 67이던가..
소변검사도 정상.
“배에 통증 있어요?”
“가끔 랜덤하게 수축이 일어날 때가 있고, 엉덩이 뒷쪽에 통증이 많아요.”
“아주 자연스러워요. 임신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에요. 소변검사도 모두 정상이네요. 자, 이제 침대에 누워서 체크해볼까요?”
침대에 누워 옷을 위로 올리니 불룩한 배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 손이 아주아주 차요.”
닥터펑은 줄자로 내 배 길이를 잰 후 “정상이에요”라고 한 마디를 한 후, 심박소리를 듣기 위해 아기 심장 위치를 찾느라 내 배를 여기 저기 꾹꾹 눌러보며 척추 위치를 찾고 적당한 곳에 젤을 발랐다.
“선우는 동생이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것에 대해 어떤 반응이에요?”
“잘 모르겠어요. 아이가 digger (굴삭기)를 아주 좋아하는데, 뱃속에 있는 동생이 조만간 선우에게 digger를 선물해 줄 거라고 이야기를 해 둔 터라, 아이가 새 digger를 아주 애타게 기다리고 있어요.”
그때 바로 아이의 심박소리가 들렸다.
“쿵쿵, 쿵쿵, 쿵쿵, 쿵쿵”
“자 들었죠?”
그리고 끝. ㅋㅋ
닥터 펑의 책상으로 돌아와서 닥터펑은 배길이, 아기 위치, 심박소리 확인 등에 대해 간단한 메모를 남겼다.
“행운을 빌어요. 다음에는 아기가 출생신고 되고, 산후 6-8주가 되면 아이와 함께 만나겠네요. (Good luck! I will see you with your baby next time when the baby is registered and between 6 to 8 weeks).”
그렇게 우리의 진료는 끝났다. 몇달만의 의사와의 진료가 맞나 싶을 정도로 아주 일상적인 진료과정.
재밌는 것은 그렇게 아주 잠깐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진료실을 나왔는데, 진료실을 나서면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더라는 것이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아이 어린이집 겨울방학 전부터 이미 나는 오랫동안 사회적으로 아주 고립된 생활을 하던 중이었는데, 아주 오랫만에 남편이 아닌 성인과 아주 평범한 일상적 대화를 나눈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의사와의 만남이긴 하였지만 만남 중에 이루어진 이야기들은 이웃과 주고받을 만한 일상적 대화였고, 그래도 의사가 나를 보살펴주는 마음으로 대화해준다는 느낌을 받아서인가 그 짧은 만남과 대화가 유쾌하고 즐거웠다.
얼마나 인간관계가 단절되어 있으면, 내가 별 것에 다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는구나 싶어 헛웃음이 났다. 그러면서도 온화하게 날 맞아준 닥터 펑에게 고맙기도 했다.
그렇게 진료를 마치고, 오늘은 몇달만에.. 아마도 몇달만일 것이다, 그렇게 몇달 만에 혼자서 카페에 앉아 아침식사를 주문하고 디카프 커피를 한잔 마셨다. 그리고 이렇게 오늘의 만남을 기록으로 남기는 중.
오늘 아침, 아이 어린이집이 드디어 다시 문을 열었다. 아이 보내기 전에 내가 먼저 병원에 가야 해서 아침부터 상쾌하게 샤워를 하노라니 (평소에는 아침이 늘 바빠서 아침 시간에 샤워를 잘 하지 못한다) 드디어 출산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이제 아이가 매일 어린이집을 가기 시작하니.. 언제 일어날 지 모르는 출산이지만 그 전까지 내 주변도 좀 정리하고, 아이에게도 좀 더 차분하게, 좀 더 집중하여 아이와의 시간을 보내줘야겠다.
주변정리의 시작은 그간의 여러 일들을 블로그에 남기는 것을 포함. 그간 지난 많은 일들과, 나의 생각들과 감정들을 그냥 흘려보내면 기억에서도 사라질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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