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in 2021

영국 어린이집 생활 7개월, 아이들의 영어 습득 과정

옥포동 몽실언니 2021. 11. 10. 23:45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닌지 7개월이 됐다.  이제쯤 되니 다음달이면 만 4세가 되는 우리 첫째 잭이 영어로 자기 의사를 조금씩 표현하기 시작한다.  둘째는 14개월부터 어린이집을 다녀서인지 집에서는 한국어를 잘 쓰는데, 영어 표현도 곧잘 따라하는 모양새다.

 

외국어 통달의 어려움

 

사실 이중언어 사용자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외국에서 태어나고, 거기서 자란다고 그냥 되는 일이 아니다.  관련한 전공을 한 선배의 말에 따르면 완벽한 이중언어사용자가 되려면 본인 스스로 엄청난 노력을 하거나, 부모가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해야만 가능하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의 언어, 집에서 가족들이 사용하는 모국어와 상관없이 아이들이 학교생활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그 아이의 제 1언어로 자리잡고,  부모의 언어가 제 2언어가 되어 버린다고.

 

실제로 주변에서 어떻게 이렇게 한국말과 영어를 둘 다 잘 할 수 있는지 놀랍게 하는 이들은 한국어가 이미 제대로 고착되고 난 이후 장기간의 외국생활을 통해 영어를 통달한 경우이거나, 외국에 살면서 영어가 고착된 이후 한국에서도 학창시절을 장기간 보내면서 한국어가 추가된 경우일 때를 많이 본다.   양 언어의 말을 자유롭게 하는 이들은 많이 있을지라도 독서를 언어에 대한 선호 없이 양 언어를 오가며 하는 경우는 대부분 그렇게 한 언어가 미리 고착된 경우인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이는 지극히 내 개인적인 경험에 한정된 이야기일 뿐이다. 

 

언제나 예외적인 경우는 있다.  언어 자체에 놀라운 재능이 있어서 오롯이 본인의 흥미와 노력으로 외국 경험 없이도 외국어를 매우 유창하게 구사하는 이들, 외국인이면서 한국에 가 본 적 없이도 한국어를 굉장한 수준으로 구사하는 외국인을 보기도 한다.

 

일반적인 경우는 외국에서 대부분의 생애를 보낸 경우, 이들의 한국어는 소위 말하는 '교포 한국어'인 경우가 많고, 한국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외국에서 학업을 한 경우라도 영어가 원어민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나처럼 아예 성인이 되어 외국생활을 시작한 경우에는 벌써 영국 생활이 십수년이지만 내 영어는 유학 초기 시절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한 이후 정체되었다가 최근 들어서는 오히려 지속적으로 후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나처럼 성인이 되어 외국생활을 시작했다고 해서 다들 영어가 나 같지는 않을 것이다.  훨씬 더 유창하고, 바이링구얼같은 수준의 영어를 통달하고 그렇게 사시는 분들도 많다. 

 

나의 경우에는 성인이 되어서 외국에 나와서 영어가 더 제한적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어린 시절에 유학을 한다고 해도 본인의 굉장한 노력 없이는 영어를 통달하는 게 자연스럽게 되는 일은 아니다.  실제로 대학 시절에 알게 된 한 동생이 내게 생뚱맞은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누나는 외국에 나가서 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영어를 잘 해요?" 라고. 

 

당시 내 영어는 일반적인 대학생 수준에서는 잘 하는 편이긴 했지만, 그 친구가 그렇게 이야기할만큼 대단히 잘 하는 수준은 아니었는데도 그 친구는 내게 그렇게 물었다. 

 

사실 나는 우리 과에서도 보통이지, 영어를 잘하는 편까지는 아니었다.  영어회화 수업에서 받았던 학점도 B+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런 내 영어이건만 어찌 네가 보기에 내가 영어를 잘 하는 것 같냐고 물었더니,  자기 주변에 자기처럼 중고등학교 시절을 외국에서 보낸 친구들이 매우 많은데(이 친구는 외교관 자녀라서 학창 시절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낸 친구였다), 나보다 영어를 못하는 친구들이 매우 많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의외의 이야기처럼 들렸는데, 시간이 지나서 나도 외국에 나와 살아보니 외국어를 통달한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인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고, 나 또한 그것을 증명하는 산증인이 되어버렸다.

 

어린 시절에 외국어 배우기

 

외국어를 배운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우리 아이들이 집에서는 한국말만 쓰다가 영어를 쓰는 어린이집에 다녀야 했을 때 받게 될 스트레스에 대한 걱정이 컸다.

 

물론 외국어를 성인이 되어서 배우는 것보다 어릴 때, 특히 'critical period'라고 부르는 사춘기 즈음하는 시기 이전에, 머리가 말랑말랑할 때 배울 때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우리 아이들처럼 어린 시기에는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흡수하고 받아들인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연령대에 외국어에 노출되어 외국어를 학습하는 일이 스트레스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우리 잭은 어린이집 생활 초창기였던 지난 4월 말, 과도한 스트레스로 자기도 모르게 반복적으로 눈을 깜빡이는 틱 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아이의 틱 현상이 단지 언어차이 때문은 아닐 수 있다.  모든 환경이 새롭고, 그 모든 새로운 자극이 아이가 감당하기에 너무 큰 변화였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언어라도 친숙하고 자신이 이미 구사하는 언어가 사용되는 환경이었더라면 적응이 훨씬 쉬웠을 것있다.  한국말을 활발히 구사하며 자기 의사표현을 적극적으로 하기 시작한 시기에 갑작스럽게 외국어만 쓰는 환경에 노출되는 것은 분명 아이에게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어느 연구에서도 어린 시절 부모의 해외 파견으로 해외에서 어린이집 생활을 하게 된 어린 아이들이 언어차이로 인해 어린이집 생활에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는 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현재 우리 아이들의 영어 습득 정도

 

영국에서 어린이집 생활이 7개월을 넘어서고 있는 지금, 우리 아이들의 영어 실력은 어떤 수준일까?

 

먼저, 이미 한국말을 또래 한국 아이들 수준으로 구사하는 우리 첫째 잭의 경우, 쉽고 단순한 수준의 자기 표현은 영어로 할 줄 아는 것 같다.  어린이집에서 음식을 먹을 때 뭘 더 달라, 뭐는 빼달라, 이런 이야기는 이미 잘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그 외에도 제법 많은 표현들을 익히고 사용하는 것 같았다. 

 

아이의 영어 구사 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은 얼마전 아이의 코비드 양성 판정으로 인해 집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일은 매일 어린이집에서 영어로 생활하던 버릇 때문인지, 아이가 집에서 놀면서도 놀이활동 중에 자기도 모르게 자꾸 영어로 말을 하고, 영어로 대답을 했다. 

 

다음달에 만 4세가 되는 잭이 가장 많이 쓴 말은, "I can do it.", "I will do it.", "I can mix it." 등 주로 자기가 뭘 하겠다고 자청하는 말들이었다.  집에서 자주 쓰는 "내가 할래", "내가 할 거야." 같은 말.

 

그리고 내가 자기에게 하는 말에 대해 자꾸만 "Yeah." 하고 영어식으로 대답했다.

 

그 외에는 동생에게 뭘 못 하게 하는 말을 제일 많이 했다.

 

"Don't touch the battery."

"Don't touch."

"You can't come."

 

뭐든 못하게 하는 말만 많이 해서 웃기면서도 둘째 뚱이가 안쓰러웠다.

 

그러나 우리의 둘째 뚱이.  형아가 못하게 한다고 쉬이 물러나지 않는 아이.

 

형아가 "Don't touch the batery." 라고 하자 "Yes, it is." 라고 영어를 대답하는 게 아닌가!

 

사실 문법적으로는 전혀 맞지 않는 말이지만, 아이가 하고 싶었던 말은 Yes, I can 뭐 이런 식의 대답이었을 것이다.  "아니, 나는 (배터리) 만질 거야." 라는 의미에서 한 대답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둘째의 영어 수준은 파악하기가 힘들다. 집에서는 한국말은 아주 잘 하는데, 영어로는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어로 말을 하는 경우는 형아가 뭐든 자기에게 영어로 말하게 되면 그 때마다 무조건 "No!", "No!" 라고 소리치는 정도. 이건... 뭐랄까... 전형적인 반대를 위한 반대이다.

형제가 유일하게 마음이 맞을 때.  바로 둘이 함께 티비를 시청(watch)할 때!

대신, 영어로 된 영국 유아 동요를 부르면 곧잘 따라부르고, 영어로 숫자 말하는 것을 랜덤하게 말하기도 한다. 아마 어린이집에서 쓰는 지시어들은 대부분 이해하고 있을 것 같다. 아직 발화가 안 되는 중.

 

이중언어 발달에 흥미로운 점

 

현재 우리 아이들은, 특히 한국어가 제법 되는 잭의 경우 새 언어를 습득해서 새 언어도 노출된 기간을 고려할 때(7개월) 상당수준(?) 구사 중인 상황에서 아이의 언어 발달을 보면 흥미로운 점들이 발견된다.

 

발음 구사: 한국어는 교포식, 영어는 콩글리쉬

 

먼저, 영어를 구사하기도 전에 한국어 발음은 교포식(?) 발음이었다. 이건 아마 아이가 17개월쯤부터 파트타임으로 어린이집을 주2-3회 가량 4개월쯤 다니고, 그 이후부터 6개월 가량 차일드마인더에 가서 지내며 영어 환경에 노출되었던 영향이 아닌가 한다.

 

한국어가 트이자 아이의 한국어가 혀꼬인 소리로 트였는데, 가령 수를 센다면 "하나, Dool(두울), Set(셋)" 하는 식이었다. 그러니까, '둘'에서 'ㄹ' 발음은 한국어 리을 발음보다 영어 L 발음에 더 가까웠고, '셋' 할 때 시옷 받침에 대한 발음을 't'로 끝나는 소리처럼 발음했다.  

 

그 외에도, 뭐뭐 하'고'를 말할 때 그 '고'는 항상 'go'처럼 발음을 했다.

 

"엄마, 사과하go, 딸기하go 먹고 싶어."

 

이런 식의 발음이었던 것이다.

 

그 바람에 우리가 지난 겨울 한국에 갔을 때, 엄마는 우리 잭의 한국어 발음을 못 알아들어서 힘들어하셨다. 내가 자는 사이, 아이가 간식 먹고 싶다고 할머니에게 몇번을 말하는데도 할머니가 못 알아들어서 결국 아이가 자기 손으로 부엌에 가서 뭔가 먹을 것을 집어와서 할머니에게 보여주며 간식을 달라고 말했는데, 엄마는 아이가 그 음식을 엄마에게 먹여주는 걸로만 생각하고 그걸 맛있게 받아드신 후 아이에게는 간식을 주지 않으신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러다 한국 생활이 3개월이 넘어가자 아이의 한국어 발음이 많이 선명해졌다. 엄마도 그제야 잭의 말을 좀 알아듣겠다고 하셨다.

 

그러기 무섭게 우리는 영국으로 돌아와서 아이들을 영국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아이의 한국어 발음은 좀 더 뭉개지면서 영어 발음도 한국 악센트가 많이 들어간 영어를 구사하는 듯하다.

 

물론 아직 아이가 어리기 때문에 영어든 한국어든 혀짧은 소리가 많이 들어가 있을 수도 있다. 점점 자라다 보면 영어든, 한국어든 발음이 더 나아지긴 할 거다.

 

아직 수를 셀 때, "원, 투, 뜨리, 뽀" 로 넷을 four 라 하지 않고, 한국어 '뽀'에 가깝게 발음한다.

 

그러나 아주 놀랍게도 아이들은 들리는대로 발음해서 Rachael 이라는 친구를 "레이철"이라고 발음하는 등 원어민에 가까운 발음을 구사할 때도 많다.

 

영어식 한국어 표현

 

그 외에, 최근 발견한 것은 아이의 한국어가 영어식 표현의 한국어 번역 같은 표현일 때가 있다는 것이다.

 

얼마전 잭이 내 방에서 놀고 있는데 그 때 동생 뚱이도 내 방으로 들어오려고 하자, 잭이 동생을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려 했다.

 

"안돼. 선재 못 와."

 

이런 표현이 한국어만 쓰는 아이들도 어릴 때 쓰게 되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인 내가 듣기에는 저 표현은 어색한 한국어 표현이었다. 오히려 영어로 할 때, "Sunjae can't come."은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말그대로 "선재 들어올 수 없어."라고 아이를 못 들어오게 막는 표현으로 적절한 표현이다.

 

다른 층위에서 영어를 쌓아가다

 

이건 며칠전에 발견한 특징이다. 아이가 한국어로는 하나의 단어가 여러 용도로 쓰이는 개념에 대해 영어로는 각 개념에 따라 서로 다른 단어로 세분화하여 구분하여 사용하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 예가 바로 "보다"라는 단어의 활용법이었다.

 

한국어에서는 지나가는 사람을 보는 행위, 내가 어떤 특정한 것을 가리키며 보는 행위, 티비를 보는 행위, 모든 것이 '보다'라는 한 단어로 사용된다. 그러나 영어에서는 '보다'라는 단어가 see, look, watch 와 같이 여러 단어가 있으며, 이들의 쓰임은 각각이 다르다. see는 일어나는 일을 눈으로 그냥 보는 거, 혹은 인지하거나 눈치채는 것, look은 뭘 보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할 때, watch는 주의를 기울여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는 것으로 영어에서는 각각이 다른 개념, 다른 단어로 존재한다.

 

그 외, '말하다'라는 단어도 영어로는 talk, say, speak 등이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니고, '듣다'라는 단어도 한국어로는 라디오를 듣다, 바람 소리를 듣다, 누구의 말을 듣다 등에서 모두 '듣다'로 쓰이지만 영어에서는 listen 과 hear는 엄연히 다른 단어다.

 

이런 것들이 외국어로서 영어를 배우는 나 같은 이들에게는 일일이 암기하고 반복하여 익혀야 하는 것들인데, 잭은 이것들을 정확하게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구체적으로 있었던 일은 아이와 함께 잔디깎이를 하던 중 잔디깎이의 잔디받이 통에 잔디가 가득 차서 그걸 비우던 중이었다. 엄마 아빠가 하는 일이면 뭐든 해보고싶어 하는 우리 잭은 그 잔디받이 통을 들어서 가든 쓰레기통에 넣는 일을 자기가 하려고 했다.

 

그러나 잔디가 가득찬 통은 제법 무거웠고, 그걸 들고 가든 쓰레기통이 있는 가라지까지 가는 건 힘든 일이었다. 아이가 힘에 버거워하는 것을 발견한 나는 차고 가라지 입구에서 아이에게 여기서부터는 엄마가 하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아이가 이렇게 대답한 것이다.

 

"엄마가 해. I will watch."

 

여기서 내가 깜짝 놀란 것이다. 아이가 see 나 look 을 쓰지 않고 정확하게 watch 라는 단어를 쓴 것에!

 

이걸 보며 아이가 영어를 제2외국어로 학습한 나같은 경우처럼 각각의 언어에 다른 언어를 매칭하며 배우는 게 아니라, 하나의 단어에 대해 세 개의 서로 다른 단어로 세분화하여 구분하는 것을 보며 영어를 완전히 하나의 새 언어 체계로 학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한 언어학습의 세계!

 

결론

 

아무리 외국에서 살아도, 나이가 많든 어리든,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새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새 문화도 익힌다는 것이고, 낯선 사람들의 낯선 문화에 적응하고, 그것을 체화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은 현재 영어라는 새 언어를 추가해가는 과정에 있는데, 내년에 첫째 잭이 학교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학교에서 사용하는 영어가 잭의 한국어를 잠식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지라 한국어 교육에 대한 노력을 좀 더 기울여야 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외국에서 아이를 키울 의도나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닌데 어쩌다보니 외국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되도록이면 아이들이 영어도, 한국어도 잘 했으면 좋겠지만 거저 얻어지는 일은 아닐터이니 그 일은 우리 부부의 오랜 숙제로 남을 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