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삶/육아일기 in 2021

영국에서 아이 키우기: 고됨과 초록초록함

옥포동 몽실언니 2021. 9. 6. 09:05

요즘 블로그를 다시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만큼, 자기 전에 뭐라고 글로 남기고 싶어서 글 창을 띄었다.

카테고리를 골라야 하는데, 육아글 카테고리로 내가 만들어둔 "영국에서 아이 키우기"라는 제목을 보자 바로 떠오르는 생각은 "힘들다", 그리고 "초록초록하다"는 것이다.

어느 육아가 힘들지 않겠냐만은 해외에서의 육아는 주변에 도움 받을 곳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해외 육아는 더 고될 수 밖에 없다.  한국에서도 양가 부모님이나 가족, 친지, 친구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환경에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해외에서는 언어도 다르고 환경도 다른 곳에서 아이를 키워내야 한다는 것 그 자체가 주는 부담이 따로 있는 편이다. 

거기에 우리 부부는 나이가 많다 보니 체력적으로도 힘들다.  나이가 젊고 체력이 짱짱해도 고된 게 육아이건만!  거기에 아이들은 어쩜 이리도 에너지가 넘치는지.  그래서 우린 늘 우리 아이들을 "에너지 덩어리", "근육 덩어리"라고 부른다. 

이런 근육덩어리가 잠시 차분하게 있을 때가 있는데, 어제도 잠시 그런 시간이 있었다.  소파에 기대어 앉아 빨래를 개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아이가 자동차를 곡선 모양으로 예쁘게 줄을 세워둔 것이다.  혼자 자동차를 나열하느라 조용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잠시 나는 친구와 통화를 하는데, 그게 싫었던 잭이 자꾸만 통화를 방해했다.  그래서 난 잭에게 지령을 내렸다.  다른 차도 모두 줄 세우면 전화를 끊겠노라고.   그랬더니 아이가 다른 차들을 줄을 세웠다.  그게 바로 다음 사진.

순간 너무 멋있어서 할 말을 잃었다.  잭, 너 뭐니?  어떻게 이렇게 멋진 걸 만들어내니?  

멋지다고 사진을 찍겠노라 하니 아이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그러더니, 장난감 소방차에서 부서져 나온 사다리를 들어올리며 자기가 저 사다리를 올라가겠단다.  결국 저걸 바닥에 놓고 그 위를 걷는 시늉을 하긴 했다. 


영국에서의 고된 육아가 견딜만한 이유는 육아 환경이 참으로 자연친화적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초록초록하다.  어딜 가나 초록초록. 

우리가 런던이나 대도시에 살고 있지 않아서 더 그렇겠지만 영국에서는 대도시에서도 초록초록한 곳을 상대적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편이다.  워낙 자연과 어울어져서 사는 걸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라 더 그런 것 같다.  초록초록한 자연으로부터 위안을 받는 종족같다고나 할까.  예전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제2차 대전으로 영국이 폐허가 되었을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한 작업은 공원을 복구하는 작업이었다고 하던 말이 기억난다. 

그런 자연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우리 아이들도 자연에 접근하는 태도나 방식이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와는 참 다른 편이다.  뚱이야.  넌 왜 거기 그렇게 기대어 눕는거니?  

왜 굳이 미끄럼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두고, 걸어가는 방법도 두고, 그렇게 온 몸으로 기어올라가려는건지..  경사면에 몸을 붙이고 기대는 게 재미있나보다. 

이렇게 자연친화적이고, 이렇게 크고 좋은 놀이터가 동네 놀이터라니!  늘 이용해서 지겨우면서도 갈 때마다 감탄하게 되는 우리 동네 놀이터.

잭도 피곤했는지, 더 높이 올라가지 않고 적당한 곳에서 멈추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러더니 돌아와서 올해들어 첫 낮잠을 잤다.  에너지 덩어리, 그래봤자 아직 아이구나, 우리 잭!


에너지 덩어리, 근육 덩어리 외에도 내가 우리 아이들을 부르는 말이 있다.

바로 "바깥 귀신". 바깥 귀신이 붙은 아이들. 

저렇게 온종일 놀이터에서 놀고 와서도 집에 들어오면 손씻고 옷 벗은 후... 곧장 또 가든 행.  올 여름에는 자두 수확이 제법 괜찮았다!  Damson 자두.  커다란 자두가 열렸다! 

항상 맛나게 익기 무섭게 벌레가 죄다 먹어버려서 우리가 먹을 건 두 세개가 채 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자두 풍년일세! (열댓개 정도를 따 먹은 것 같다)

가든 없는 집에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난 어릴 때 집에 마당이 있어도 마당에 나가 노는 걸 그리 즐기지 않았는데.  이 아이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바깥을 좋아하는 걸까.  

내 아이들이지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참 많다.  내 아이라고 내가 다 알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참 당연하긴 하다.  어쨌든,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절대 알기 힘든 영역이 많다는 것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나와 아이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므로.


아이들 노는 사진과 비디오를 한국 가족들에게 잔뜩 보냈다.  시부모님, 엄마, 아버지.  시부모님은 언제나처럼 아이들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 봐서 좋다는 답장을 해주셨고,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읽씹. ㅋㅋ 엄마는 뜻밖의 답장으로 내게 웃음을 주셨다.

"좁은 공간 집안에서 노느라 고생이 많다 ㅎㅎㅎ"

푸하하하.  우리 엄마.  의외의 포인트를 짚으셔서 웃음이 터졌다.  엄마, 우리집 영국 기준으로는 좁은 거 아니예요~ 게다가, 좁지만 가든도 있잖아요!

이번 주말도 고생이 많았다, 우리 남편과 나 모두.  주말을 잘 보낸 만큼, 다시 한 주 잘 보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