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생활

바야흐로 수확의 계절! 우리 가족의 소확행.

옥포동 몽실언니 2020. 7. 13. 07:54

안녕하세요.  몽실언니입니다.

저희는 저희 집에 전에 살던 분들이 가든에 심어둔 과실수와 덤불 덕분에 여름이면 가든에서 열리는 여러 열매로 풍성한 한 때를 보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열매를 맺어 주는 나무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게다가 종류별로 열매가 익는 시기가 달라 시차를 두고 과일을 따먹는 재미까지 있으니, 요즘 같이 코로나로 인해 집에만 머누는 시기에는 더더욱 고마운 가든입니다. 

그 가든에 저희는 토마토와 당근까지 심고, 작년에 얻어 키운 고추나무는 해가 지나도 죽지 않고 사시사철 열매를 맺어줘서 심심할 틈이 없습니다. 

먼저 올 여름 가장 먼저 따 먹은 것은 당근입니다.  사실 당근은 3개월은 키워서 먹어야 하는데, 마음 급한 저희 잭은 기다릴 여력이 없습니다.  땅 위로 올라온 줄기를 보면서 오매불망 당근이 자라기를 기다리다 지쳐 당근이 아직 아기 당근일 때 모두 뽑아 먹어버렸어요. 

그나마 이 당근은 좀 키워서 먹은 건데 이 정도 크기입니다.  정말 작죠?

아래 틴틴의 왼손 바로 옆에 있는 잎들이 당근잎이에요. 

당근을 키우게 된 건 작년에 사둔 당근씨앗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작년에 당근씨앗을 산 건은 아이가 성당언니네 놀러가서 그 집 가든에 있는 당근을 오독오독 잘 씹어먹는 걸 보았기 때문이지요.  그 전까지는 당근을 쳐다도 보지 않던 아이가 집에서 키워 직접 따낸 당근은 생으로도 어찌나 잘 먹던지요.  그래서 저희도 직접 키워 아이를 먹이고자 당근 씨앗을 샀더랬습니다.  

당시 아이가 당근을 잘 먹은 것은 당근이 아기 당근일 때 뽑아 먹었던 이유도 있었어요.  놀러갔던 성당언니네에서 따 먹은 당근이 죄다 아기 당근이었거든요.  성당언니네 아들은 저희 잭보다 5개월이 빠른데, 그 친구도 성미가 급해 당근이 자라도록 기다리지 못하고 모두 뽑아 먹는 아이였어요.  잭이 놀러간 날 둘이서 당근을 열개도 넘게 먹어치운 것 같아요.  그 후로 마트에 파는 아기당근을 잭에게 사 주곤 했는데, 마트에서는 아기당근 예닐곱개에 2-3파운드 (4-5천원) 로 제법 비쌉니다.  일반 어른 당근은 유기농 당근도 600g에 1파운드 (1500원) 밖에 하지 않는데, 아기 당근 예닐곱개가 저 값이면 정말 비싼 거지요.  아기당근 한 포 살 돈이면 당근씨앗 1500개짜리 한 포를 살 수 있어요.  그래서 저희도 당근씨앗을 사서 당근을 키워보게 되었습니다. 

묵은 씨앗이라 그런지, 아님 틴틴의 첫 농사라 농사경험이 부족해서 그런지, 안타깝게도 저희가 뿌린 씨앗 중 싹을 틔우는데 성공한 당근이 얼마 되지 않았어요.  그 당근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저희 잭이 다 먹어치워버렸고, 그 바람에 저희는 당근씨앗 3포를 더 사서 (총 4500개의 씨앗!!!) 당근을 뽑아 먹은 자리에 다시 당근을 심어둔 상태입니다.  7월 중순까지는 씨앗을 심어도 키워 먹을 수 있다고 나와 있었는데, 과연 이번 당근들도 싹 틔우기에 성공할지 지켜보고 있는 중입니다. 

당근을 먹던 시기에 당근과 함께 자란 것은 딸기!  저희가 이사왔던 당시 작은 딸기밭이 있었어요.  그런데 잭 낳고 처음으로 저희 잭을 만나러 영국으로 오셨던 저희 엄마가 당시 딸기밭에 벌레만 많이 꼬이고 지저분하기만 하다며 딸기를 거의 다 없애 버리셨어요.  전 별 생각 없이 엄마가 하고 싶으신대로 하라고 했다가 죄다 뽑힌 딸기를 보니 마음이 아파서 남은 딸기 뿌리들은 그냥 두자고, 조금이라도 키워보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그 덕에 아주 조그만한 딸기밭만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그렇게 조금밖에 되지 않는 딸기밭임에도 초여름만 되면 맛난 딸기 서른개 정도는 수확하는 것 같아요.  열리는 열매는 더 많은데, 딸기는 조금이라도 익기 무섭게 벌레들이 죄다 먹어버려서, 벌레 먹지 않은 딸기만 그 때 그 때 따 먹어서 얼마나 되는 딸기를 먹는지 정확히 세기가 어렵습니다. 

아래 사진을 찍은 날은 잘 익은 딸기가 딱 세 개 뿐이었던 날이었어요.  제법 많은 딸기가 나오는 날도 그 딸기는 모두 잭의 몫이라 저희는 딸기 맛을 볼 틈도 없습니다. 

집에서 키운 딸기를 먹을 때는 주의해야 합니다.  딸기 안에 벌레가 있나 없나 잘 살펴봐야 하거든요.  그래서 딸기를 깨끗이 씻은 후 항상 벌레 먹은 구멍이 있나 없나 잘 살펴야 합니다. 

오늘은 마당에 내어 놓은 고추화분의 고추도 수확했어요.  한동안 따지 않고 방치해뒀더니 초록 고추가 잘 익어서 빨간 고추로 변했어요. 

작은 고추 화분 두 개인데, 제법 되는 양의 고추가 나왔습니다.  사실 고추는 많이 열리는데, 애들 때문에 매운 음식을 잘 못 해먹다 보니 저희 집에서 고추나무는 관상용입니다.  매운 음식을 자주 안 해먹다 보니 잘 못 먹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제 막 익기 시작한 블랙베리!  매일 조금씩 익고 있어서 매일 따 먹을 수 있는 양이 얼마 되지 않아요.  그리고 그마저도 모두 잭의 몫.  저희는 아직 맛도 못 봤답니다. 

가든에서 과일을 따먹으며 놀다 보면 달팽이도 잡구요.  

잡초 뜯는 엄마 옆에서 보란듯이 잔디를 뽑기도 합니다. 요즘 저희 잭이 청개구리 병에 걸렸거든요. 

그렇게 저희 가족은 집 뒷편의 작은 가든 덕분에 수확의 재미를 솔솔히 보고 있습니다.  

구스베리와 블랙커런트도 있는데, 무슨 일인지 올 해에는 열매를 맺지 않았어요.

블랙베리를 다 따먹을 때 즈음이면 사과와 자두가 익었을텐데, 사과도 자두도 잘 익은 것들은 이미 벌레들이 시식을 마친 뒤라 저희가 먹을 수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집에서 키운 과일을 따 먹는 재미가 솔솔하니, 그 재미를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나무들입니다. 

집에서 키운 것들을 먹다 보면 밖에서 쉽게 사먹는 농산물들에 얼마나 많은 농부들의 품이 들어가 있는지 알게 됩니다.  또한, 땅과 물과 햇볕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도 깨닫게 되지요.  

여름이면 집에서 열리는 과일들을 따 먹는 재미, 그것이 저희 가족의 '소확행'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