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주전 저녁, 틴틴이 회사에서 돌아와서 거실에 들어오자마자 charity raffle에 담청되었다며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charity란 영국의 비영리 자선단체들을 말하고, raffle은 말그대로 뽑기인데, 회사에서 자선단체 모금을 장려하며 그 행사의 일환으로 모금에 참여한 직원들에게 뽑기를 통해 선물을 주는 행사이다. 직원들이 기부한 1파운드당 1장의 뽑기권을 나눠주는데, 작년에도 틴틴은 10파운드, 올해도 10파운드를 기부했다.
틴틴은 작년에는 30분 마사지권을 담청받아왔는데, 이번에는 자그마치 3개나 당첨이 되었다. 내가 틴틴에게 은근히 이런 운이 있는 거 같다고, 나는 이런 행운은 한번도 가져본 적도 없고 심지어 길에 떨어진 돈조차 주워본 적이 없다고 하니, 틴틴은 회사에서 기부를 장려하기 위해 상당히 많은 선물을 뿌려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언가에는 당첨되게 되어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 뽑기의 행운은 더더욱 놀라운 것이 틴틴이 당첨된 3개의 행운의 뽑기 가운데, 틴틴이 자그마치 회사 내 단 1명에게만 주는 1등 뽑기에 뽑힌 것이다!!!! 그건 다름아닌 1일 휴가권!!!!
이 중 바로 가운데 봉투가 틴틴이 당첨된 1일 휴가권이다. 3번 번호가 당첨번호인데, 그게 틴틴이 갖고 있던 번호였던 것!!!
작년 이맘때 틴틴이 마사지권을 받아왔을 때, 그땐 이미 내가 출산을 2개월 앞둔 임신부였던지라 마사지를 받을 생각도 못하고 마사지권을 들고 있다가 틴틴의 친한 동료에게 부인에게 주라고 선물로 건네줬다. 마사지를 받은 틴틴 동료 메인키스는 고맙다며 답례로 육아용품 전문샵의 바우처를 선물해줘서, 우리는 행운으로 받은 마사지권을 건네고 괜히 선물 부담을 준 것 같아 되려 미안했었다.
그때, 틴틴에게 다른 선물들은 뭐가 있냐고 물었더니 1일 휴가권이 있다고, 단 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행운이라고, 그 당첨자는 사내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아이 출산을 앞두고 휴가 하루하루가 귀했던 우리는 그 행운이 왜 우리에게는 오지 않았냐며, 1등 당첨된 사람 너무너무 좋겠다고 부러워했었다.
바로 그랬던 그 행운의 1일 추가 휴가권에 올해는 우리 틴틴이 담청되다니!!!! 틴틴은 다른 선물들은 몰라도 회사에서 1일 휴가권 당첨자는 대대적으로 발표를 한다고 했다. 덕분에 행사장에서 틴틴은 사내 전체에 울려퍼지도록 1등 당첨자로 발표되었고, 이후 경품 추첨 공지 이메일에서도 틴틴의 이름이 1등으로 거론되며 그날 하루 유명세를 제대로 치른 모양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알게 되어, 다들 시기와 질투가 장난이 아니라고 했다. 니가 1일 휴가가 당첨되었으니 나에게 반차 정도는 나눠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농담을 걸어오는 동료들도 하나 둘이 아니며, 회사에서 서로 인사한 적도 없는 사람들조차 틴틴에게 다가와 말을 걸며 부러움을 표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틴틴의 상상은 괜한 데까지 이어졌다.
“몽실, 생각해봐! 하루 휴가에 담청되었다고 이 정도로 주위에서 난리가 나는데, 로또 1등에 당첨되면 회사를 어떻게 다니겠어?!!!”
마치 로또에 당첨되지 않아 참 다행이라는 것처럼. 로또를 생전 사본적도 없는 사람이.
“그건 일단 로또 당첨되면 그 때 걱정해~”
틴틴의 호들갑에 나는 정신차리고 일상으로 돌아오라고 재촉했다.
첫째 아들에 이어 둘째도 아들인 것을 알게 되면서 틴틴은 로또만 되면 우리 셋째도 갖가는 이야기를 하곤 했던 틴틴은 경품 1등에 담청되고는 계속해서 로또 1등 당첨까지 종종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 일이 있은 며칠 후 둘이 함께 병원에 가면서 나에게 또 물었다.
“몽실, 몽실은 우리 로또 1등 되면 뭐하고 싶어? 밀리언 파운드, 그러니까 백만 파운드쯤 당첨됐다! 그럼 그 돈으로 뭐할꺼야?”
“글쎄.. 틴틴은 뭐하고 싶어?”
틴틴은 내가 뭘 하고 싶은지보다 본인이 뭘 하고 싶은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는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야기를 풀어갔다.
“응, 일단 우리집 대출금부터 다 갚고, 남은 돈으로는 뭘 할까? 일단, 몽실도 만파운드 정도 몽실 쓰고 싶은 데 써.”
“만파운드? 겨우 1500만원? 15억이 당첨되었는데 내 맘대로 쓰는 돈이 1500만원이야? 1억5천도 아니고!! 10프로도 안 줘?”
“응? 그런가..? 하하하! 그래, 그럼 1억5천 해! 우리 각자 1억5천씩 쓰자!! 당첨되지도 않은 로또 가지고 그 정도도 못하나!”
상상의 나래를 펴는 그 순간마저도 소심하게 현실을 계산하고 있는 본인의 모습에 틴틴도 웃음을 지었다. 상상으로만 하는건데 뭔들 못하랴. 백만파운드 당첨되면 우리 각자 10%씩 쓰고 싶은데 쓰고, 집 대출금도 다 갚고, 애들 대학학비도 저축해두고, 애들 집 살때 보증금이라도 조금씩 보탤 수 있게 해주자고 이야기하며 즐거운 상상을 했다.
병원 출입문쯤에 다다랐을 즈음, 틴틴은 이쁜 딸을 갖고 싶은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지, 정말로 로또를 사야겠다며, 일주일에 5파운드씩이라도 로또를 사서, 로또가 되면 우리 바로 셋째를 가지자고 한다.
딸이 그렇게 갖고 싶으냐고 되물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직 사지도 않은 로또에, 당첨되지도 않은. 행운이 와야만 실행하기로 한 일에 대해 뭘 그리 묻고 따졌나 싶어 웃음이 난다.
어쨌거나 틴틴이 당첨된 1일 휴가권은 휴가가 부족해서 일주일간의 무급휴가까지 써야했던 우리에게는 단비같은 존재이므로 우리는 그 휴가를 꼭 필요한 날 요긴하게 쓰며 나와 틴틴의 육아체력 보충에 힘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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